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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HQ!!

[리에야쿠] My fair king


계간리에야쿠 12월호






My fair king

w.비누꽃









하아, …….”


거친 숨소리가 차가운 겨울 공기를 갈랐다. 하이바 리에프는 무릎을 꿇지 않으려 버티며 저를 둘러싼 검은 정장의 사내들을 훑어보았다. 저 각목에 팔을 정통으로 맞은 게 세 번, 저 쇠파이프로 등짝이 후려쳐진 게 방금이었다. 칼바람에 건조해진 입술은 빗겨나간 주먹 한 번에도 잔뜩 터져버렸다. 찝찔한 쇠맛을 혓바닥으로 느끼며 리에프는 천천히 눈을 내리감았다. 모히칸 헤어의 험상궂은 사내가 그를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제때제때 돈을 갚아야 할 거 아니야. 너희 집 넘어간 지 오래고, 늬 아부지 날른 지 오래고. 누나고, 엄마고 하나씩 싹 다 튀었네?”


리에프의 뒤에 서 있던 사내가 그의 무릎을 뒤에서 걷어찼다. 마침내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은 그의 앞에 모히칸 헤어가 짐짓 안타까운 척 정장을 걷어붙이며 쪼그려 앉아 눈을 맞추었다. 어지러워. 리에프는 자꾸만 감기려는 눈에 애써 힘을 주었다. 그 위로 진득한 핏물이 흘러내렸다.


조금만 더 봐줬다간 아주 너도 튀겠어. 이자 이제 겨우 다 갚았고, 원금까지는 아직도 까마득해요, 꼬마야.”


꼬마. 그 꼬마한테 호스트바 나가게 시키면서 잘도 입을 놀리네. 리에프가 이미 터진 입술을 다시 짓씹었다. 가물가물한 시야로 공사중, 표지가 둘러쳐진 열린 맨홀이 들어왔다. 맨홀 뚜껑은 깍두기 중 하나가 깔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중이었다.


오늘 학교 끝나고 튀려고 했어요? 아주 가방에 필요한 건 다 챙겼네.”


흐하하. 사내들에게서 비웃음이 터졌다. 모히칸 헤어가 리에프에게서 빼앗은 가방을 뒤엎으며 발로 그의 물건 하나하나를 짓이겼다. 뭐가 들었는지 구경하느라 사내들의 시선이 그에게서 빗겨갔다. 리에프는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죽기, 아니면 살기.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는 제 안에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다 짜내었다.


……, ! !”


저 새끼 튄다! 예상치 못했던 리에프의 몸놀림에 사내들은 당황하면서도 그를 열심히 쫓지는 않았다. 어차피 막다른 골목이었다. 도망갈 길도 없는데 멍청하게…… ?


……!”


리에프는 눈앞의 표지에 칭칭 감긴 공사중노란 테이프를 뛰어넘어, 망설임 없이 맨홀 속으로 뛰어들었다. 다리 하나가 부러지건, 하수구 물에 처박혀 헤엄쳐야 하건 상관없었다. 저를 버리고 간 아버지, 엄마, 누나처럼 자신도 달아나고 싶었다.


, 아아악-!”


그런데, 맨홀이란 게 이렇게 깊었던 건가.

지구 반대편으로 떨어지듯 끝없이 추락하는 동안, 리에프는 정신을 잃었다.

 

 





그게 저것이냐.”

그렇사옵니다, 폐하.”


흐음. 호기심에 찬 탄식에 왕좌 앞에 늘어선 신하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값비싼 옥과 구슬로 만들어진 주렴이 흔들릴 때마다 그 너머에 앉은 남자의 인영이 언뜻언뜻 비쳤다. 톡톡, 작지만 꽤 다부진 남자의 손가락이 옥좌의 팔걸이를 두드렸다. 짧은 고민을 끝낸 그는 몸을 일으켜 길게 늘어진 황금빛 옷자락을 끌며 왕좌의 계단 아래로 걸음을 내디뎠다. 신하들이 납작 몸을 엎드렸다.


넓디넓은 폐현실에 깔린 동양자수 카펫에 놓여 있는 그것, 비단끈에 몸이 칭칭 묶인 리에프였다.

 

 





…….”


약 두세 시간 전쯤 정신을 차린 리에프는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수십 개의 눈동자와 마주했다.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온몸이 쑤셔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고전문학 책에나 나올 법한 비단천으로 만든 궁중의복을 입은 그들은 놀랍게도 리에프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수군거렸다. 중앙 호수에서 떠올랐다, 상처투성이 인간, 상서로운 기운, 불길한 암시, 어쩌구저쩌구.


리에프가 탈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누워있는 동안 그들은 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며 물에 젖은 옷을 벗겨내고 상처를 치료하며 그를 구석구석 살폈다. 이게 뭐지나 꿈꾸는 건가앨리스도 아니고 무슨 맨홀 밑바닥이 난생 처음 보는 나라야. 리에프는 제 몸에 와 닿는 비단의 감촉을 느끼며 눈을 꿈뻑였다. 그러는 사이 제 몸을 돌보던 궁녀들이 물러가고 내시로 보이는 신하들이 넷이나 달려들어 그의 몸을 비단끈으로 묶고 들어올렸다. 세게 결박한 것은 아니었지만 리에프는 순간 불안한 마음에 정신이 확 돌아와 소리질렀다.


, 놔줘요!”

굵고 낮은 목소리입니다. 아직 어린 것 같지만, 역시.”


역시는 뭐가? 리에프가 버둥거리는 사이 수군거리던 신하들이 다시 그를 들어 메고 종종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했다. 리에프는 눈과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제가 어디로 붙잡혀가는 것인지 살피려 애썼다. 그러면서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궁중은 아름다웠다. 이곳은 봄인 듯 연한 분홍빛 꽃잎이 바람을 타고 흩날렸고 향긋한 꽃향기와 풀냄새가 풍기는 것이 제가 마지막으로 얻어맞고 있던 뒷골목이나 뛰어들기 직전 하수구 냄새가 풍겨오던 맨홀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고풍스러운 전각들과 긴 비단옷자락을 끌며 걸음을 옮기는 선녀와 같은 궁녀들. 리에프의 버둥거림이 멎었다. 대신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곳은 그가 처음 보는 천국과도 같았다.

 





 

황제폐하께 고해주십시오.”


정중한 언사에 고개를 작게 끄덕인 내관이 여러 겹의 장지문을 지나 폐현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허락이 떨어졌다.

궁궐의 중앙, 황제궁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중앙 호수에 인간이 떠올랐다. 바다에서 흘러들어온 것도 아닌, 그저 바닥에서 솟아오른 소년은 상서롭다고만 하기에는 여기저기 깨지고 멍든 모양새였으나 또 불길하다고 여기기엔 그 미모가 너무나 빼어났다. 산책을 하던 중 가장 먼저 리에프를 발견한 사람이 바로 황제였다. 그는 건져져 쓰러져 있는 리에프의 얼굴을 가린 젖은 머리카락을 손수 치워냈다. 그리고 잠시 그 얼굴을 들여다본 뒤, 제게 데려올 것을 명령했다.


황제가 한 걸음 제게 다가올 때마다 카펫에 묶인 채로 누워 있는 리에프의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쳤다. 황제의 눈부신 옷자락이 바닥에 쓸리며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리에프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과연, 내 눈이 틀리지 않았구나.”


둘의 눈이 마주쳤다. 황제, 야쿠 모리스케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반면 리에프는 어리벙벙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야기 속 황제라면 좀 더 수염이 무성하고, 늙고, 배가 나오고, 아니면 엄청 덩치가 크거나그런데 복슬복슬해 보이는 짧은 머리카락에 가벼운 왕관을 쓰고 있는 눈앞의 남자는 그런 묘사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꼬마?”


자신이 있던 세계에서 꼬마라는 소리에 울컥했던 리에프는 머릿속에 남아 있던 그 말을 그만 그대로 입 밖으로 뱉고 말았다. 황제의 한쪽 눈썹이 삐죽, 올라가고 순식간에 호위들이 달려들어 그를 무릎 꿇렸다.


무엄하다! 감히 대 제국에서 가장 키가 작고 용맹한 황제폐하께 꼬마라니!”

키가 크고 뼈대가 굵은 것이 마치 물 위에서 떠오른 황후와 같은 자태라 곱게 데려왔더니 무슨 언사냐!”


, ? 리에프는 시키는 대로 무릎을 꿇으며 잠시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했다. 자신은 190이 넘는 장신 중의 장신이었다. 그만큼 어깨도 넓고 덩치도 컸다. 황후의 자태?


놔두어라. 아마도 네가 있던 곳은 여기와는 정 반대의 세상이었던 모양이니.”


역시 두 번 들어도 알맞게 낮은 소년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신하들은 세상에서 가장 용맹한 맹수의 울음이라도 들은 듯 일제히 몸을 낮추었다.


앞서 들은 것처럼 나는 이 제국에서 가장 강인한 장군이자 황제이다. 내 나라에서는 키가 작을수록 다부지고 용맹하다고 여기며 키가 크고 뼈대가 굵을수록 미인으로 치지. 넌 우리 제국에 역사가 없었던 미인이다.”

, , 예에…….”

그러니 내 신부로 손색이 없을 것 같구나.”

?”


리에프가 예의도 잊고 되물었지만 야쿠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그를 압박하던 호위들을 물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옷자락을 휘날리며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황후궁으로 데려가라. 이레 뒤 혼사를 치르자.”

 

 






웅장하고 화려하며 고아한 기품이 넘치는 황후궁에 갇히다시피 한 리에프는 그 중 그나마 만만해 보이는 방을 골라잡아 이불에 몸을 파묻고 누워있었다. 하룻밤을 자고 일어났지만 그가 있는 세계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대제국이었다. 그리고 폐하께서 밤에 오실 것이옵니다, 이 한 마디만 고하고 나간 궁녀의 뒤로 상궁과 교육관이 줄줄이 들어왔다. 그들은 아직 몸이 성치 않은 리에프의 입에 한 숟갈씩 죽과 약을 번갈아 밀어 넣으며 옆에 꿇어앉아 궁중의 법도와 예절과 언어를 끝없이 줄줄 외워댔다. 그러는 와중에 얇은 창호지를 바른 창문의 열린 틈새로 어제의 그 봄바람이 불어들었다. 따뜻한 향기. 리에프는 어느새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그가 처박힐 뻔했던 시궁창보단 이곳이 나았으니까. 그렇게 마음먹고 베개에 등을 기대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저녁나절이 되자 궁녀가 들어 방 안 곳곳에 초를 밝혔다. 상궁과 내관들은 물러나고 저녁 수라가 차려졌다.


그리고 황제, 야쿠가 들어섰다.


그는 전날 보았을 때보다 가벼운 자줏빛 복식에 머리에는 아름다운 보석 관을 쓰고 있었다. 야쿠는 성큼성큼 걸어와 리에프의 턱을 가볍게 잡았다.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하던 그는 법도에 따라 침상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은 리에프를 손수 잡아 일으켰다. 그가 일어서자 야쿠가 자연스럽게 리에프를 올려다보는 그림이 되었다.


그럼에도 역시 참으로 거침없고 당당한 사람이었다. 작은 키에 갓 스물은 되었을까 싶은 얼굴은 새침해 보일 만큼 빼쪽한 눈이 귀여운 외모였지만 그에게서는 무시할 수 없는 위엄과 기품이 넘쳐흘렀다. 과연 제국의 제일가는 용맹함이라는 말이 납득될 만큼.


음식이 입에 맞느냐.”


그러면서도 그는 고압적이지도, 제멋대로이지도 않았다. 식사를 하면서도 아직 몸이 좋지 않은 리에프가 편하게 앉아있는지, 음식을 잘 먹고 있는지 끊임없이 살폈다. 그의 말 한 마디가 떨어질 때마다 궁녀들이 움찔움찔했다. 리에프는 지금까지 별 생각 없이 퍼먹고 있던 밥그릇을 내려다보았다.


내 앞이라고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다.”

…….”

그만 상을 물려,”

따뜻한 밥은 오랜만에 먹어봅니다.”


궁녀를 부르던 야쿠의 손짓이 멎었다.


저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너무나 오랜만이옵니다.”


리에프는 밥그릇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황제는 잠시 말이 없었다.


……고개를 들어라.”


리에프는 멍하니 중얼거리다 그제야 고개를 쳐들었다. 야쿠는 어느새 탁자에 턱을 괴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앞으로 매일 너와 석반을 함께할 것이다. 약조하마.”

 

 






혼례 전날까지도 야쿠는 그와 매일 밤 저녁을 함께 먹었다. 상궁의 귀띔에 따르면 야쿠는 원래도 정무를 처리하느라 식사를 간단히 하는데, 리에프를 만나러 오기 위해 며칠간 훨씬 더 바쁘게 일하고 있다고 했다.


석반을 마치고 상을 물린 뒤 야쿠는 리에프를 침대에 눕게 했다. 그리고 침대 가에 앉아 리에프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의 단단한 손가락 끝이 이마에 난 상처를 건드렸다.


물에서 건져 올렸을 때보단 상처가 나아졌구나.”

폐하의 돌봄 덕분입니다.”


사극 드라마를 생각하며 줄줄 찬사를 주워섬기자 뒤에서 상궁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사실은 진심이었다. 따뜻한 방에 좋은 옷을 입고 누워, 걱정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자꾸만 몸과 마음이 풀어졌다. 그런데 야쿠의 목소리가 갑자기 차갑고 낮아졌다.


누구냐. 말해라.”

?”

이곳으로 오기 전, 너를 이리 해한 자가 누구냐고 물은 것이다.”


강단 있게 말을 끝맺은 야쿠의 주먹이 세게 쥐어지는 것이 보였다.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밤의 미풍에 야쿠가 쓴 관에 달린 주렴이 흔들렸다. 잠시 리에프는 시간이 멈춘 듯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앉아 있었다.


무엄하구나.”


하지만 뭐, 나의 신부니까 괜찮다. 말을 이으며 야쿠가 가볍게 리에프의 뺨을 어루만졌다. 시립해 있던 궁녀와 내관들이 허리를 조아리며 물러났다. 닿아오는 손이 단단하고 따뜻했다. 받아본 적 없어 낯설기만 한 그의 다정함에 그만 리에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폐하.”


그는 덩치만 컸지 어쩔 수 없는 열일곱 소년이었다. 버리고 갔어도 부모가 그리웠고, 가족이 그리웠다. 돈에 쫓기고 바에서 술을 따르며 살아가는 동안 덤덤하고 무뎌졌다고 생각했었는데. 맨홀로 뛰어내릴 때 사실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은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따뜻한 사람의 구원으로.


리에프의 눈물을 본 야쿠가 팔을 벌려 그를 끌어안았다. 야쿠의 어깨에 고개를 묻으며 리에프는 그에게 제 마음을 전부 주었다. 신랑이건, 신부건 그런 건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저를 해한 자는 저 너머의 세상에 있나이다.”

그래, 알고 있다. 그래도 화가 나니까,”

폐하의 마음이면 충분해요.”


애처럼 말을 끝맺고 리에프는 야쿠의 품에서 잠시 빠져나와 제 큰 품에 다시 야쿠를 끌어안았다. 화려한 구슬주렴이 달린 관이 야쿠의 머리에서 벗겨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허리를 끌어안긴 채로 가만히 있던 야쿠는 곧 리에프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리에프가 대제국의 호수에서 솟아오르고 정확히 이레 뒤, 호화로운 혼례와 황후 즉위식이 치러졌다. 야쿠와 리에프는 붉은 천에 금사로 화려한 무늬가 수놓인 혼례복을 입고 제단에 향을 피웠다. 리에프는 혼례주를 나눠 마시는 순간에 야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쿠는 그에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돌려주었다.


나의 신부는 너뿐이다.”

저에게도 폐하뿐입니다.”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말을 속삭이며 입맞춤을 나누는 두 입술 사이로 향긋한 혼례주의 향이 퍼져나갔다.



오늘은 황제궁의 침전이 신방으로 꾸며져 있었다. 야쿠는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상궁과 내관을 전부 세 개의 장지문 바깥으로 물려버렸다. 그리고 손수 관을 벗고 돌아섰다. 그는 야쿠의 것과 비슷하게 생긴 관을 막 벗으려는 리에프를 끌고 붉은 휘장이 쳐진 침대로 향했다.


기분 좋으냐.”

.”


어느덧 마주보고 누워 손가락을 깍지 껴 잡은 채로 야쿠가 물어왔다. 같은 베개를 베고 눈을 빛내며 저를 보는 야쿠의 모습에 리에프의 가슴에 작은 불씨가 지펴졌다. 야쿠가 처음으로 조금 안달하듯 물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아라.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지?”


귀엽다.


용맹하십니다.”


깨물어주고 싶어.


헌앙한 풍모에 감히 눈 둘 곳이 없사옵니다.”


리에프는 제 안의 말과 이 나라의 언어를 교환해 내뱉는 법을 완벽히 익혀냈다. 그는 상체를 일으켜 야쿠의 위로 천천히 올라탔다.


뭐하는 것이냐.”

초야를 치르려는 것이옵니다.”

그런데 왜 올라타는 것이냐.”

폐하께오서는 제가 있던 나라처럼 편히 있으라 하셨습니다.”


그래, 그랬었지. 야쿠가 리에프의 밑에서 수긍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 모습이 토끼처럼 귀여워 리에프가 참지 못하고 야쿠의 입술에 쪽,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저의 나라에서는 신부가 신랑의 위로 올라간답니다. 그러니 부디 무엄함을 용서하소서…….”


노란 촛불 아래에서도 야쿠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리에프의 입술이 야쿠의 턱을 지나 목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하문하셨습니다. 폐하께서는 저를 구해주시고 신부로까지 삼아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잊지 않고 평생 제 몸과 마음을 다해 봉사할 것입니다.”

부부의 연을 맺은 사이에 봉사란 말은 가당찮다. 나 역시 평생 너를 아껴줄 것이니. 그보다 내가 위로,”


움직이려는 야쿠의 팔을 리에프가 휙 휘어잡았다. 그리고 진심과 유혹을 반씩 담아 예쁘게 미소 지었다. 귀엽고 용맹한 토끼 고양이같은 황제가 제게 속아주도록.


제 아래에 누워계셔도 용맹함을 잃지 않으시는군요.”

당연하지, 난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무예를 익힌 황제다.”


과연 대단하십니다. 리에프가 대답하며 다시 야쿠에게 입을 맞추었다. 놀리는 것이 아닌 진심이었다. 야쿠는 단단하고 강인한 황제였다. 그러면서 제가 맞아들인 황후에게 다정했고 진심이었다.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던 걱정 어린 얼굴이 떠올랐다. 제게 무슨 말을 하며 위로를 해주었는지도. 리에프는 야쿠의 옷자락을 풀어헤치며 고백했다.


연모합니다.”

나도 그렇다.”


야쿠의 대답은 그의 성정답게 시원시원했다. 야쿠가 손을 뻗어 리에프의 뺨을 쓸었다. 동시에 둘에게서 웃음이 터졌다. 리에프는 웃음을 갈무리하며 한 마디 진심을 다시 던졌다.


사랑해요.”

그건 무슨 말이지?”


같은 말입니다. 야쿠는 더 이상 묻지 못했다.


리에프는 손만 들어 휘장을 잡아당겼다. 붉은 천이 한데 엉킨 그들을 완전히 가려주었다. , 누군가의 가벼운 숨결에 마지막 남은 초마저 꺼졌다. 얇은 창호지를 통해 달빛만이 은은히 신방 안으로 비쳐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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