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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HQ!!

[엔노후타] 지옥에도 별이 뜬다







지옥에도 별이 뜬다

엔노시타 치카라 X 후타쿠치 켄지

w.비누꽃





 


별이 보고 싶은 날에는 늘 손끝에 불꽃을 띄웠다.


차분한 갈색 머리에 검은 가죽으로 만든 가벼운 평상복을 입은 소년은 길을 걷다 말고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밤공기는 싸늘하리만큼 차가웠고, 언제나처럼 제국의 수도부터 변방까지는 밤하늘에 별이라곤 없었다. 잠시 멈춰 선 소년의 손가락 끝에 문득 불꽃이 피어올랐다. 작은 불씨는 그의 의도대로 하늘로 치솟다가 곧 수십 갈래로 부서져 흩어졌다. 꼭 그렇게 사라지고 싶은 것이 소년의 바람이었다. 그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후타쿠치 켄지가 명령을 받은 것은 사흘 전. 제국군 총사령관의 공식 집무실이 아닌, 자신이 머물고 있는 황궁의 가장 은밀하고 가장 어두운 방에서였다. 제국군의 상징인 은으로 된 손잡이가 달린 아름다운 검을 한 손에 쥔 채로 총사령관은 후타쿠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후타쿠치는 그의 말을 들으며 가만히 눈을 내리깔고 그 검을 바라보았다. 거절하면, 저 칼날에 목이 베일 것이다. 제 목 하나만 날아가는 것이라면 어차피 수행하다 죽을지도 모르는 그런 밀정 명령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총사령관이 직접 찾아와 꺼낸 이름은 제 힘없는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이었다.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후타쿠치는 가족들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고 떠날 준비를 했다.


수도 변방의 소도시를 하나 거치면 곧바로 반란군의 진영에 도달하게 된다. 철벽의 제국 다테는 이미 오랜 내전으로 곳곳이 초토화된 지 오래였다. 나라를 어지럽히는 반란군으로부터 국민들을 지키겠다던 제국군도, 더 평화롭고 풍요로울 새 제국을 위해 검을 들었다던 반란군도 처음의 그 명분을 잊은 지 오래였다. 황위 찬탈을 위한 욕심 아래 제국은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었다. 이 소도시도 다르지 않았다.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양측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주민들이 일찌감치 짐을 싸서 떠나간 도시에서 제국군과 반란군은 마음껏 서로를 죽였다. 그리고 남겨진 것은 황량한 폐허와 시체를 태운 잿더미뿐이었다. 후타쿠치는 들개새끼 하나 보이지 않는 공터의 무너진 벽 쪽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그리고 모포를 덮어쓰고 오로지 암흑만이 존재하는 깊고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별이라는 것을 보고 싶었다.

 



*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빛 속에서 잠이 깬 후타쿠치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자해였다. 그는 은으로 만든 제국군의 단검을 뽑아들고 잠시 망설였다. 미련이라는 것 없이 살아온 삶이라곤 해도 역시 고통을 줄이고 싶었다. 어디를 찔러야 할까아랫배와 심장을 비켜 간 애매한 갈비뼈 쪽으로 하자. 검사도 치료사도 아닌 그의 지식은 그 정도였다. 마음을 정하고 후타쿠치는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단번에 몸에 칼을 꽂아 넣었다.


아윽!”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불타는 듯한 상처의 고통을 참았다. 자신의 손짓 한 번이면 상처는 깨끗이 나을 것이었다. 그러나 다 죽어가는 민간인의 꼴로 위장해 반란군의 진영에 들어서려면 이런 수고가 꼭 필요했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몸을 덜덜 떨던 후타쿠치는 그때까지도 한 손에 쥐고 있던 제국군의 단도를 내던져 버렸다. 몸에 두르고 있던 모포도 내버렸다. 다른 짐을 가져갈 수는 없었다. 그는 피가 느리게 쏟아지도록 대충 상처에 마법을 건 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소도시를 벗어났다. 반란군의 막사가 코앞이었다.

 


*

 


…….”


후타쿠치는 밭은 숨을 뱉으며 가까스로 숲을 기어가고 있었다.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고, 반란군의 진영은 기어가기에는 생각보다 너무 멀었다. 점점 눈앞이 아득해지는 걸 느끼며 그는 거칠게 자란 풀을 한 움큼 움켜쥐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핏자국이 길게 이어졌다.


결국 후타쿠치가 엎드린 채로 멈춰 버렸을 때였다. 바스락, 소리가 들리고 풀숲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빠져나왔다. 후타쿠치는 눈만 간신히 들어 검은 전투화를 신고 제 앞에 우뚝 선 두 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다리를 타고 올라가 검은 까마귀 조각이 새겨진 검은 칼집으로 옮겨졌다. 곧 제 앞에 쪼그려 앉은 소년의 얼굴을 확인하고 후타쿠치는 그때까지 가까스로 붙들고 있던 정신을 탁 놓아 버릴 만큼의 안도감을 느꼈다.


만났다.


그는 반란군 수장의 아들이자 전쟁터의 소악마로 불리는, 소년 검사 엔노시타 치카라였다.



 

죽었나.”


엔노시타는 풀밭에 고개를 처박고 쓰러진 후타쿠치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앉은 채로 신중하지만 빠르게 후타쿠치의 몸을 수색했다. 쇠붙이나 무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배에는 자상이 있었다. 출혈 정도를 가늠해 보니 오래된 상처는 아니었다. 엔노시타는 그의 몸을 휙 뒤집었다. 검은 평상복을 입은 소년의 얼굴은 이미 창백했다. 어쩔까. 민간인은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보는 눈도 없으니 버려두고 가도 상관없었다. 고급 귀족이었던 집안의 맏아들답게 귀티 나게 정돈된 검은 머리칼 밑으로 같은 빛깔을 가진 눈동자가 아주 조금 망설이는 빛을 띠었다. 본래 표정의 변화가 많지 않은 편이었다. 엔노시타는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등에는 후타쿠치가 업혀 있었다.


 

*

 


후타쿠치는 말없이 엔노시타가 가져다 준 수프를 떠먹었다. 벗은 상반신에 둘둘 감긴 붕대에는 아직 피가 말라붙지 않고 빨갛게 배어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상처가 욱신거렸다. 탁자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엔노시타의 얼굴이 램프 불빛을 받아 주홍빛으로 빛났다. 그릇 바닥에 숟가락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막사에 울렸다. 마침내 후타쿠치가 그릇을 내려놓자, 엔노시타가 일어나 그에게 걸어왔다.


왜 거기에 쓰러져 있었지?”


소악마라는 별명답지 않게 엔노시타의 눈은 송아지처럼 검은자가 크고 눈꼬리가 선하게 쳐져 있었다. 다만 단호하게 다물린 입술만이 그가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보여 줄 뿐이었다. 후타쿠치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가 받은 명령은 막사에 진입만 하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실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한. 하지만 엔노시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앞에서 보란 듯이 상처를 치료한 다음 임무를 수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마법을 시전하려 하자마자 죽임을 당할 게 뻔했다. 후타쿠치는 이번 고비만 무사히 넘기면 된다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마을에 남아 있다가 강도를 당했어.”

네가 흘린 핏자국을 따라 마을을 수색했어. 그리고, 저걸 발견했지.”


엔노시타는 느릿느릿 말을 이으며 후타쿠치가 차지한 자신의 침대 머리맡 선반을 가리켰다. 은 손잡이가 달린 제국군의 단검을 발견하고 후타쿠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예상했던 바이긴 했다. 엔노시타가 순식간에 허리에 찬 단검을 뽑아 후타쿠치의 목에 들이댔다.


내 마음에 드는 대답을 하는 게 좋을 거야.”

나도 잘 몰라, 그냥 제국군의 졸병 같았다고. 난 수도를 떠나 여행하려던 참이었어. 그 마을을 지나가고 있는데 가진 걸 다 내놓으라고 해서.”


말을 하다 말고 후타쿠치는 심하게 기침을 했다. 뱃속 저 아래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울컥 치솟는 듯했다. 핏덩이인지도 모를 무언가가. 엔노시타는 단검을 꽂아 넣고 그를 도로 침대에 눕혔다.


널 데려온 건 아무도 몰라. 지금은 널 그냥 살려 두지. 이유는 묻지 마.”

…….”

하지만, 내 마음이 변하면 언제고 널 죽일 수 있다는 건 알아 둬.”


엔노시타가 후타쿠치를 내려다보며 처음으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 후타쿠치는 그와 눈을 마주 보며 자신이 매일 밤 지겹도록 올려다보았던 짙은 밤하늘을 떠올렸다. 상처인지 모를 곳이 욱신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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