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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HQ!!

[쿠로야쿠] You know how I feel




You know how I feel

쿠로오 테츠로 X 야쿠 모리스케


w.비누꽃






 

1.

이상한 일이 생겼다.


처음 그걸 알아챈 건 교실에서였다.


나는 평소처럼 쿠로오의 뒷자리에 앉아 책상서랍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오 분 정도 남은 쉬는 시간을 확인하고 책상 위의 우유를 집어 들어 뜯었다. 편의점에서 챙겨 준 빨대의 비닐을 벗기고 우유팩에 꽂아 한 입을 빨자마자 앞에서 수학 숙제를 하던 쿠로오가 몸을 돌려 나를 마주보고 앉았다.


나는 분명 서랍을 정리하기 전 빵을 두 개나 먹은 상태였다. 그러나 쿠로오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난 갑자기 너무 배가 고파졌다. 아마 그도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쿠로오는 내가 잠시 내려놓은 초코우유를 가져가 말도 없이 쭈욱 빨아 마셨다.


!”

배고파.”

나도.”

너 아까 엄청 먹는 거 다 봤는데.”


그 말을 하며 쿠로오는 그냥 씩 웃었다. 그러면서 다시 눈이 마주쳤다.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간지러워졌다. 난 손가락으로 괜히 가슴팍을 긁었다. 부들부들한 니트 조끼가 내 손가락에 감기는 동안 쿠로오는 다시 빨대로 입술을 가져갔다. 그가 노랗고 가느다란 빨대를 입 안에 넣고 볼이 움푹 파이도록 쭈우욱 우유를 마시며 눈을 치뜨는 순간, 나는 책상을 쾅 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야, 어디 가? 이제 종쳐.”

…….”


말없이 조끼를 벗어 던지는 나를 쿠로오는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아직 여름도 아닌데 교실이 지나치게 덥게 느껴졌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잡아당기면서 나는 처음으로 쿠로오의 얼굴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살짝 놀란 듯했던 눈이 가늘어지고, 그러면서 눈빛이 순간 달라지고, 입맛을 쩝 다시며 나를 쳐다보고, 아무렇지 않은 듯 눈을 돌려 다시 빨대를 빠는 그 얼굴을.


그렇게 바라보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당황스러웠다.

 




2.

축구를 하고 있었다.


패스를 하려는데 상대팀 녀석이 뒤에서 발을 걸었다. , 씨발. 흙바닥에 나뒹굴며 욕을 내뱉었다. 어떤 자식인지도 모르겠고, 심하게 굴러서 입에 모래가 다 들어가 그걸 퉤 뱉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나를 끌어당겨 일으켰다.


드럽게 하지 말라고, 씨발새끼야!”


날 부축한 채로 쿠로오는 등 뒤로 거칠게 소리를 질렀다. 난 다 까진 손바닥이랑 무릎이 먼저였고, 넘어지면서 갑자기 하늘과 땅이 뒤집혀서 어리벙벙한 상태였는데. 쿠로오가 소리 지르는 순간 나도 갑자기 확 열이 받았다. 내 겨드랑이 밑에 손을 넣어 부축하던 쿠로오의 화난 눈과 마주쳐버려서 그런가. 나는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짜증난다는 듯 혀를 쯧, 찬 쿠로오는 허리를 숙여 피가 줄줄 흐르는 내 무릎을 들여다보았다. 그 때 갑자기 나는 무언가가 걱정돼 긴장감으로 미칠 것 같았다. 뭐가? 내 무릎이? 축구를 질까봐? 아직 못 끝낸 영어 숙제가? 그런 거 사서 걱정하는 성격 아닌데.


, , 나 괜찮아.”

다쳤잖아. 저 새끼 퇴장시켜야 돼.”


쿠로오는 무릎을 펴고 일어나며 작게 욕을 씹었다.


웬일이냐, 욕도 안 하면서.”

너 때문인데.”


그 말만 하고 쿠로오는 나를 잡아끌었다. 보건실로 끌려가다시피 하는 내내 나는 어찌할 바 모르고 섞여드는 난잡한 긴장감에 쿵쿵거리는 가슴을 움켜잡아야 했다.

 




3.

그냥 공감이라 생각하기엔 감정 소모가 너무 컸다. 그리고 벌써 며칠 째였다. 쿠로오가 크게 웃거나, 비웃거나, 짜증을 내거나 할 때 눈이 마주치면 나는 곧바로 그 감정을 똑같이 느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몇 번 시험해 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쿠로오가 출석번호를 불려서 칠판 앞에 나가 수학 문제를 푸는 동안, 나는 내 번호가 불리지 않았다는 안도감 대신 재수 없게, 어렵네, 이런 짜증과 긴장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 대출 권수를 채우려고 도서실에서 빌려 본 판타지 소설 때문일지도 몰랐다. 내가 이렇게 미쳐 버린 건. 아니, 내가 미친 게 아니라 이런 미친 현상이 생겨버린 건.





 

야쿠 모리스케가 쿠로오 테츠로의 감정과 욕구의 상태를 공유하게 된 건 이미 일주일째였다. 생각까지 들리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될까.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야쿠는 당황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황스러움은 라커룸에서는 마침내 얼굴까지 붉히게 되는 순간으로 치달았다.


이미 감정 소모는 극에 달해 있었다. 두 사람분의 감정을 혼자 감당해내며 야쿠는 신경과민에 시달렸다. 미친 사람처럼 기분이 들쭉날쭉해지면서 자꾸만 불안해지고 신경이 곤두섰다. 밥을 먹기조차 힘들었다. 어째서 그렇게 된 것인지,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쿠로오의 멱살을 붙잡고 제발 아무것도 느끼지 말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야쿠는 그냥 자신의 감정이라도 어디 내버리고 싶었다.


코트에서의 긴장감을 두 사람분이나 고스란히 느껴야 했던 오늘 연습도 최악이었다. 야쿠는 신경질적으로 라커를 열어젖히고 져지의 지퍼를 죽 내렸다. 땀에 젖은 체육복을 벗어 던지는 동안 쿠로오가 그 옆으로 느릿느릿 다가섰다.


무슨 일 있어?”

…….”


야쿠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제일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쿠로오였으니까. 그 대신 야쿠는 짧은 반바지마저 벗어버렸다. 양쪽 다리를 바지에서 빼내고 아무렇게나 뭉쳐 가방에 쑤셔 박는 동안 쿠로오는 팔짱을 끼고 제 라커에 기대 서 있었다.


뭘 봐.”

내가 물어봤잖아, 무슨 일 있냐고.”


. 티내지 않으려 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누가 믿어 주겠는가. 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나도 물어봤잖아, 뭘 보냐고.”


이런 순간이 너무나 곤란해졌다는 점이었다.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는 지난 며칠 동안, 쿠로오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너 선 거 보는데?”


……미친. 야쿠는 재빨리 팬티 위로 교복 바지를 꿰어 입으며 주위를 살폈다. 쿠로오의 목소리는 낮고 작았고, 주변은 온통 시끄러웠다. 누가 듣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다들 먼저 가! 난 야쿠랑 할 얘기 있어.”


아이들의 머리 위로 쿠로오가 소리치자 웅얼웅얼 대답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야쿠는 입 속으로 할 수 있는 욕은 전부 다 중얼거리며 교복 셔츠를 찾아 걸쳤다. 얼굴이 달아올라 차라리 라커에 고개를 처박고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쿵거렸다. 진정시키려 할수록 아래는 더 단단해졌다. 손을 뻗어 주무르거나 아니면 최소한 어디에 비비고라도 싶었다. 턱 끝이 쥐가 난 것처럼 저려왔다.


쿠로오는 그런 야쿠를 한 번 스윽 훑고는 말없이 상의를 벗었다. 땀 냄새가 훅 끼쳐왔다.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쿠로오는 야쿠와 마찬가지로 운동복 바지를 내렸다. 길게 뻗은 다리를 지나 발치로 툭 떨어진 옷을 허리를 숙여 발끝에서 빼내며 그는 야쿠의 맨발부터 얼굴까지를 죽 훑었다.


, 제발 그러지 좀 말래?”


야쿠는 마침내 라커를 쾅 닫아버리고 문에 머리를 쿵쿵 박기 시작했다.


아악!”


홧병이 날 지경이었다. 가슴이 갑갑해 목에 대충 걸쳐놓은 넥타이를 대신 쥐어뜯으며 야쿠는 쿠로오를 노려보았다. 왜 그래, 당황하며 쿠로오가 야쿠의 어깨를 붙잡아 라커에서 떼어냈다. 야쿠는 그 손을 거칠게 떨쳐내고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지 말라고!”

내가 뭘? 너 얼굴 진짜 빨개.”


쿠로오는 어깨를 으쓱하며 교복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잠그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야쿠는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쿠로오가 살짝 마른 입술을 축이며 조금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어. 넌 어떻게 그렇게 잘 감추냐?”

그러니까 뭘.”

얼굴은 그렇다 치고, 너도 섰잖아.”


. 쿠로오는 잠시 벌어졌던 입술을 딱 다물며 순식간에 무표정하게 얼굴을 정리했다.


운동해서 흥분했나보지. 너도 그런 거 아냐?”

너 때문이잖아!”

그게 왜 내 탓이야, 억울하게.”

……네가 나 보고 꼴려 하잖아.”

…….”


쿠로오가 말문이 막히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야쿠는 제가 제대로 짚었구나 싶었다. 그는 혼자만의 속앓이를 오늘 다 끝내버리고 싶었다. 믿든 안 믿든, 쿠로오의 멱살이라도 잡고 짤짤 흔들면서 다 쏟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먼저 폭탄을 던져 놓고, 숨을 씩씩거리며 쿠로오를 지켜보고 서 있었다.


벌써 며칠 짼지 알아? , 네가 나 볼 때마다 꼴리는 거. , 대체 뭐 때문인 진 모르겠는데 내가 너 어지간히 쌓였구나 하고 넘기려고 했거든?”

그런데?”


뻔뻔한 자식. 야쿠는 욕을 눌러 참고 심호흡을 크게 했다.


너 때문에 내가 힘들다고! 너 미쳤냐? 난 너처럼 잘 숨기지도 못하겠고, 아무튼! 이제 제발 그만하라고!”


쿠로오는 대답 대신 거울을 보며 젖은 머리를 이리저리 털었다. 야쿠는 열이 가시지 않는 얼굴을 양 손에 잠시 파묻고 있다 곧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등을 보인 쿠로오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갈라졌다.


, 나 보면서 느끼지, 지금도.”


대답하지 않아도 야쿠는 곧바로 답을 알았다. 그 말을 끝맺는 순간, , 할 만큼 짜릿하게 통증이 느껴져서.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돌려 야쿠를 쳐다본 쿠로오의 얼굴은 묘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드디어 솔직한 얼굴을 보여주네. 야쿠는 저도 모르게 다리를 딱 붙이고 섰다. 아래쪽엔 이미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피가 몰려 있었다.


그래, 맞아.”


쿠로오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하며 야쿠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그리고 한 손을 뻗어 야쿠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어 콱 움켜잡았다.


!”

그럼 같이 빼자.”


대답을 듣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쿠로오는 야쿠에게 틈을 주지 않고 다른 한 손으로 야쿠의 엉덩이를 붙들어 제 가까이로 확 끌어당겼다.


, .”

나 때문이라며. 내가 도와줄게. 내 탓이니까.”


저 혓바닥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하체가 맞붙는 동안 야쿠는 허리를 이리저리 비틀며 상체를 뒤로 젖히려 애썼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쿵 뛰는 것까지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뭘 더 숨기려고 그래.”


다리 사이에 있던 손이 올라와 야쿠의 가슴 언저리를 어루만졌다. 쿵쿵, 뛰는 심장을 느끼며 쿠로오는 어쩐지 기분 좋은 듯 웃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 손이 움직여 야쿠의 뒷머리를 쓸고 귀를 만지작거렸다. 야쿠는 필사적으로 얼굴을 숨겼다. 그러나 도망칠 곳은 쿠로오의 가슴팍뿐이었다.


내가 존나 이상해졌다고.”

나도 알아. 근데 너 판타지 소설을 너무 많이 보더라.”

, 내가 미친놈인 줄 아냐? 나도 안 믿어지는데 진짜 내가 무슨 감정 공유 같은 걸 하게 됐다니까! 너랑!”


쿠로오는 코웃음을 치며 야쿠의 뒷목을 잡아 품에서 끌어냈다. 빈틈없이 시선을 맞춰오며 쿠로오는 마른 입술을 열었다.


미안한데 그냥 너도 날 좋아해서 그런 거거든.”

……,”


야쿠는 억지로 몸을 틀었다. 쿠로오는 그를 가만히 놔두나 싶더니 곧 그대로 라커로 야쿠의 어깨를 밀어버렸다. 거칠지는 않게 가슴팍을 부딪치며 야쿠는 차가운 라커에 뺨을 대고 섰다. 뒤에서 다가선 쿠로오가 야쿠의 귓가에 대고 비웃었다.


그대로 있어. 숨기고 싶어 했잖아. 그러고서 듣던지.”

, 미친.”

날 지켜보고, 관심 갖고, 그러고 있으니 내가 뭔 생각을 하든 똑같이 느끼는 거지. 근데 그게 무슨 드라마나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난 거라고 생각할 줄은 몰랐다, 멍청아.”


야쿠는 뒤로 손을 뻗어 쿠로오의 가슴팍을 탁 쳐내고 몸을 돌렸다.


집에 갈래.”

날 믿어. 나도 경험자거든. 내가 먼저였어.”


야쿠의 말은 듣지도 않고 말을 끝내는 쿠로오의 얼굴엔 이제 비웃음 대신 약간의 긴장감이 떠올라 있었다. 시선을 떼지 않으며 쿠로오는 슬쩍 손을 뻗어 야쿠의 허리를 감쌌다. 손이 닿아오자마자 야쿠는 그만 눈을 찡그리며 쿠로오를 올려다보았다. 그제야 쿠로오의 얼굴이 완전히 깨어졌다.


나도 네 탓해도 되지?”


아직 인정할 생각은 없었지만, 분명 그렇게 물어오는 얼굴은 야쿠에게 과하게 야했다.


…….”


쿠로오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양 손으로 급하게 야쿠의 바지 벨트를 풀어내며 입술을 겹쳐왔다. , 하는 신음과 함께 라커에 등을 쾅 부딪치며 야쿠는 돌이키기엔 늦었다고 생각해 버리기로 했다. 급하게 입었던 교복 바지가 다시 발치로 툭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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