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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HQ!!

[리에야쿠] Invisible Sweetie





Invisible Sweetie

비누꽃

 

 






네코마 고등학교에 유령이 나온다.


봄의 끝자락이었다. 처음 소문을 들은 학생들은 그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었다. 흔하디흔한, 학교마다 적어도 하나씩은 있다는 전설 시리즈에 새로운 에피소드가 또 하나 추가된 것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우리 학교 부지가 예전에는 공동묘지였대. 전쟁 났을 때 시체들을 묻었대. 밤 열 두 시가 되면 뒤뜰에 있는 책 읽는 소녀 동상이 눈물을 흘린대……. 그런 종류의 이야기처럼.


그러나 4층 도서관에 나타난다는 그 학생 유령을 보았다는 사람이 자꾸만 늘어나자, 학교에는 조금씩 공포심으로부터 생겨난 스산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문제의 유령은 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암막 커튼이 쳐진 열람실의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며, 책을 찾는 학생들을 놀래 주고 사라진다고 했다.

그 즈음 한 무리의 3학년들이 1학년의 하이바 리에프를 찾았다.


너지? 귀신 본다는 애가.”

…….”


범상치 않은 잿빛 머리카락에 더 심상치 않은 큰 키의 소년은 보고 있던 책을 덮으며 고개를 들었다. 귀신·요괴·이물의 비교문화론.

……역시 보통 녀석이 아니었다.


너도 도서관 귀신 얘기 들었지? 부탁 하나만 하자.”


다짜고짜 본론부터 꺼내는 태도가 달갑지 않았는지 하이바 리에프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그는 다시 책표지로 시선을 주며 냉정하게 대답했다.


전 재미나 호기심으로 귀신 보는 거 안 해요. 그런 거, 해서 좋을 일 하나 없으니까 선배들도 관심 갖지 마세요.”

, 우리가 진짜 급해서 그래!”


싸가지 없다고 욕이나 하며 물러갈 줄 알았던 아이들은 오히려 리에프의 책상에 매달리다시피 쭈그려 앉았다.


그 귀신이 우리 친구인 것 같아서 그렇다고……!”


리에프의 눈썹 사이가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좁아졌다.

 





나 딱 한 번 봤어, 도서관에서. 틀림없이 우리 반의 야쿠 모리스케였다고. 말을 걸고 싶어도 너무 무서워서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어. 그러는 사이 사라져 버렸어. 무슨 환상처럼 눈앞에서 흐느적대다가 없어졌다니까?’

그런데 그 선배가 왜 귀신으로 나타나는 건데요?’

, 넌 모를 수도 있겠다. 우리 학년 애들은 다 아는 건데, 야쿠 지금 병원에 누워 있어. 부활동 끝나고 가다가 학교 앞에서 차에 치였거든. 세 달 째야걔가 의식 없는 거.’

죽은 것도 아닌데 귀신이 되어 돌아다닌다니, 이상하긴 하네요.’

그 교통사고, 뺑소니였잖아. 범인 아직도 못 잡았대. 내 생각엔 원한 때문인 것 같아.’

원한이요?’

내 생각도 그래, 야쿠 성격에…… , 아니다. 넌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야쿠를 만나면 대화 좀 해 줘! 왜 그러고 있는 건지 말이야. 그리고우리가 걱정하고 있으니 돌아와 달라고 해 줘…….’


리에프는 혼자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에 조금 전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원혼인가? 원혼을 돌려보내는 일은 해 본 적 없는데.


하이바 리에프는 귀신을 봤다.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귀신도 봤고, 대화도 할 수 있었다. 때로는 요괴를 쫓듯 누군가에게 붙은 귀신을 떨쳐내는 일을 할 수도 있었다. 대대로 그런 집안이었고, 굳이 숨긴 적도 없어 이 지역에서는 유명했다. 귀신은 두려워할수록 신이 나서 찾아온다. 감출 수 없으니 생긴 대로 내놓고 살자는 것이 하이바가()의 지론이었다.


어쨌든 사정을 듣고 나니 조금 측은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리에프는 꽤 조심스럽게 열람실의 책장 사이를 걸어 다니며 귀신을 찾았다. 그리고 열람실의 맨 끝, 검은 커튼이 두껍게 쳐진 크고 높은 창문 위를 둥둥 떠다니는 그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귀신은 덤덤한 눈길로 리에프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재보는 것처럼. , 나를 보는 거 맞지. 내가 보이나?


야쿠 모리스케 선배?”

-……?!

맞죠? 잠깐 내려와 보세요, 할 이야기가 있어요.”

-내가 보여?

보이니까 말을 걸죠.”


리에프는 그러면서 야쿠를 슬쩍 관찰했다. 원한을 품은 영혼까지는 아니고, 그냥 유체이탈 정도인가. 나이를 알고 있지 않았다면 중학생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같은 교복에, 키가 작고, 크고 동그란 눈과 짧은 갈색의 곱슬머리. 3학년 선배들의 묘사 그대로였다. 귀신이 당황한 듯 몸을 팔랑이자 감춰져 있던 머리 안쪽과 다리의 상처가 언뜻언뜻 비쳤다. 사고 당시의 모습인 듯했다. 짧게 생각하는 동안 야쿠가 리에프를 소리쳐 불렀다.


-.

듣고 있어요.”

-잘 됐다. , 가서 빵 좀 사와.

…….”


귀신을 화나게 해 굳이 화를 불러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육신이 이승에 매여 있어도 귀신은 귀신이었다. 리에프는 얌전히 선배들이 가방에 챙겨 주었던 빵을 꺼내들었다. 필요할지도 모른다더니, 정말 친한 친구들인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리에프는 뭔가 말려든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 내가 좋아하는 거네!


야쿠 모리스케라는 귀신은 순식간에 단단한 육체로 몸을 바꾸어 도서관 바닥에 스르르 주저앉았다. 단단한 몸이라고는 해도 한계가 있어 몸의 바깥 부분이 반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런 것도 할 수 있어요?”

해 보니까 되더라고. 근데 정말 잠깐밖에 안 돼, 그리고 누가 보지도 못하나 봐. 소리치고 걷어찼는데도 그냥 갔어. ……아 맛있다! 세 달 동안 입으로 음식 씹어 본 거 처음이야!”

선배 친구들이 저 보냈어요. 근데 뭘 도와드리면 돼요?”

……. 있지, 몸으로 돌아가는 건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난 정말 너무 열 받아서 그만 몸에서 분리돼 버렸거든. 내가 원하는 건, 네가 날 여기서 데리고 나가 주는 거야.”

데리고나가요?”

병원에서 나와서 학교를 떠올리자마자 난 여기로 오게 됐어. 아마 살아 있을 때, 아니, 이렇게 말하니까 좀 이상하네. 아마 원래 내가 제일 싫어했던 곳이어서 그런가봐. 진짜 짜증나게. 여기 발이 매인 것처럼 빠져나갈 수가 없었어. 날 좀 데리고 나가줘.”

데리고 나가면요?”


야쿠는 손에 묻은 빵부스러기를 탁탁 털고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그리고 잠시 리에프를 응시했다. 리에프는 이번에도 야쿠가 자신을 재보는 것 같다고 느꼈다. 찰나가 지난 뒤 야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를 친 놈이 학교에 있어. 너는다 모르는 척 하면 돼.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말투가 너무 믿음직해서 리에프는 풋, 웃으려다 말고 얼굴을 굳혔다. 야쿠의 얼굴은 진지했다. 리에프는 새삼스레 야쿠의 얼굴을 훑었다. 야무지게 다물린 입술이 강단 있음에도 꽤 귀엽게 느껴졌다.


……뺑소니 친 사람이 누군데요?”

넌 알 거 없어! 알면 다쳐!”

그런 짓 하는 사람이면, 위험할 수도 있잖아요. 내가


뒷말을 하기 전 리에프는 짧게 망설였다. 스스로도 왜 귀찮은 일에 나서려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도와줄게요. 그 사람이 선배한테 해코지 못하게.”


그럼에도 생각나는 말을 삼키지 않고 해 버린 건, 귀신에 홀려서였나? 잠시 자조하는 듯한 웃음이 리에프의 얼굴에 스쳐갔다. 야쿠는 말없이 앉아 있다 곧 고개를 쳐들었다.


이름이 뭐야?”

리에프요. 하이바 리에프.”

그럼 가자, 리에프.”


야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리에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과 야쿠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리에프가 곧 야쿠의 손을 턱 붙잡자, 야쿠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잡을 수 있을 줄 알았어.”

 

 






도서관에서 나오자 복도는 한창 하교하는 학생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야쿠는 별 어려움 없이 학생들의 머리 위로 떠오르려다, 자신의 손을 아직도 꽉 붙잡고 인파를 헤치는 리에프의 등을 보고는 가만히 그를 따라 걸었다. 리에프가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으려 애쓰며 야쿠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 왔다.


야쿠 선배, 어디로 가면 돼요?”

2체육관.”


현관을 나와 화단으로 들어서자 순식간에 주변이 고요해졌다. 리에프는 그때까지 붙잡고 있던 손을 내려다보다 문득 야쿠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왜 떨어요.”

생각해 보니까, 내가 이 꼴로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너한테 너무 큰 신세를 지는 것 같아.”

나중에 깨어나면 갚으면 되죠. 근데 왜 체육관이에요?”

나를 친 사람이 배구부 코치거든.”


리에프는 짧게 탄식했다. 어느새 아까보다 형체가 옅어진 야쿠가 흘러가듯 체육관으로 먼저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리에프가 뒤따라 무거운 철문을 열며 한 발을 딛자마자, 눈앞으로 배구공이 날아들었다.


!”


야쿠는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려다 말고 돌아본 채로 멈춰 섰다. 리에프는 제 눈 앞으로 날아온 배구공을 한 손으로 잡아채며 짧게 신음을 뱉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달려왔다.


미안! 근데 배구부에는 어쩐 일이야?”

. 견학을 좀 할 수 있을까요?”

, 키도 크고, 팔다리도 길고, 방금 공 잡는 거 보니 운동신경도 좋아 보이고. 부원 모집은 끝났지만, 특별히 허락해 준다!”


코치는 별다른 의심도 없이 리에프를 위아래로 훑고는 명쾌하게 허락을 내렸다. 그가 돌아서서 다시 코트로 걸어가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리에프는 옆의 의자에 걸려 있던 코치의 것으로 보이는 점퍼 주머니에서 차키를 훔쳐냈다.


그 다음부터는 놀라울 정도로 쉽게 일이 진행되었다. 차 문을 열고 들어가 블랙박스에서 메모리 카드를 분리하고, 꽤 비싼 돈을 주고 데이터 복원을 맡긴다. 그리고 찾아낸 교통사고 당일의 영상을 경찰서에 제출하는 것으로 마무리. 코치가 잡혀가던 날, 학교는 그 이야기로 온통 뒤집어졌다. 야쿠의 친구들이 리에프의 반으로 찾아와 자초지종을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리에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사자는 그 옆에서 친구들을 바라보며 감동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바로 어제, 혼자서만 도시락을 먹는다고 야쿠에게 걷어차인 종아리가 아직도 욱신거리고 있었다.

 

 






여름에 다다른 계절에 학교 운동장은 늦은 오후의 햇살로 뜨거웠다. 시끄러운 건물을 벗어나 그늘지고 시원한 수돗가에 걸터앉아 리에프는 야쿠에게 말을 걸었다.


근데 그 코치가 왜 선배를 친 거예요?”

연습 끝나고 집 가는 길에, 어두운 데서 속력 내다가 실수로 친 거야. 그러고는 무서워서 도망친 거지. 아무리 그래도, 삼 년째 보는 사인데. 너무했어.”


그 이야기를 하는 야쿠의 옆얼굴은 나무그늘이 져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삼 년이요?”

나 배구 했어. ……. 과거형으로 말하니까 진짜 이상하다. 인터하이는 물 건너갔고. 여름 합숙도 해야 하고, 봄고 예선도 나가야 하는데! 나 주전이었다고!”

……그랬구나. 그래도, 이제 돌아갈 거잖아요.”

……내 자리 채워졌겠지. , 어쩔 수 없지만.”


야쿠는 단단하게 만들었던 육체가 손끝에서부터 조금씩 옅어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리에프는 순간 그의 형체가 완전히 사라질까 놀라 심장이 덜컹했다. 그러다 저를 부르는 소리에 화드득 고개를 쳐들었다.


, 리에프.”

, ?”

, 오늘 내 몸으로 돌아갈 거야.”

…….”

정말 고마웠어. 진짜로. 어제 걷어찬 것도 미안해. 왠지 네가 너무 편해서.”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걸까? 마지막을 말하듯 인사를 건네는 야쿠의 앞에서 리에프의 마음이 찌릿하게 아파왔다.


야쿠 선배, 저기

그래서 말인데! 나 깨어난 뒤에도 만나러 와 줄래?”

…….”


야쿠가 고개를 들자 그의 얼굴에 져 있던 나무 그림자가 걷혔다. 차가운 물이 한바탕 흘렀던 수돗가에서는 비릿한 수돗물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리에프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3학년의 야쿠 모리스케가 깨어난 것은 한 달이 더 흐른 여름방학의 끝 무렵 이었다. 병원의 모두들 기적이라고 했다. 의사는 환자의 깨어나고자 하는 의지에 감탄했다며 바쁜 와중에도 몇 번씩이나 병실에 들러 이것저것 체크하고 주의사항을 일러 주곤 했다. 많은 이들의 감사의 눈물과 축하 속에서 야쿠는 곧 일어나 앉을 만큼 기운을 회복할 수 있었다.


……선배.”

! 너 이제야 나타나는 거냐?”


리에프는 야쿠에게로 다가가며 굳이 몸을 움츠리지 않았다. 야쿠가 그의 종아리를 걷어찰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며 리에프는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 깨어난 거 축하해요. 나 기억할까, 좀 확신 없었는데.”

당연히 기억하지! , 꽃도 사온 거야? 진짜 고맙다. 이렇게 멀쩡한 몸으로 만나니까 또 신기하네. 난 지금 괜찮으니까 슬픈 표정 하지 마!”


귀신일 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야쿠를 보며 리에프는 그만 긴장을 풀고 헤헤 웃었다. 세상에서 제일 센 것처럼 말하는 야쿠를 보고 있으면 얼굴 근육이 자꾸만 마음대로 풀어져 버린다. 그 얼굴을 빤히 보던 야쿠는 살짝 뺨을 붉히며 꽃다발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 , , 잘 생겼다, …….”


너무 진심이 담긴 그 말을 듣고, 한바탕 웃을 줄 알았던 리에프의 얼굴도 그만 같이 빨개지고 말았다. 둘은 야쿠의 어머니가 병실로 들어올 때까지 한참을 그러고 앉아 있었다.


재활 병동으로 내려가야 하는 야쿠를 번쩍 들어 휠체어에 앉힌 것도 리에프였다. 야쿠의 어머니는 연신 감탄을 내뱉으며 리에프를 칭찬하기에 바빴다. 키가 크네, 얼굴이 잘 생겼네, 목소리가 좋네. 야쿠는 입술을 삐죽였다. 그러면서도 치료실로 들어가기 전 리에프를 붙잡고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나 재활 끝나면 부에 복귀할 거야.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반드시, .”

, 응원할게요!”


옷소매를 붙잡힌 채 리에프가 말을 더듬었다. 오랫동안 누워 있었던 통에 야쿠는 아직 제대로 걷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기에 눌리는 기분이 들어 리에프는 허리를 더 숙이고 야쿠의 말에 귀 기울였다.


리에프, 너 배구부에 들어와라!”

?”

너 체육관에서 배구공 잡을 때, 보통이 아니었어. 그 센스랑 키를 썩히긴 아까워! 대체 왜 부활동도 안 하는 거야? 귀신 본다고? 그게 뭐 대수라고! 아니, 내 원한 풀어 줬으니까 대단하긴 하지만.”


야쿠는 말을 하면서 열이 오르는지 점점 더 횡설수설했다. 리에프는 진정하라는 뜻에서 제 옷자락을 움켜쥔 야쿠의 손을 붙들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야쿠의 말이 멈추었다.


선배가, 선배가 배구부에 복귀하면요. 약속할게요, 저도 배구부에 간다고.”

? .”

그러니까 꼭 다 나아서 학교로 돌아와요.”

…….”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요. 그럼 같이 있을 시간이 별로 없잖아요.”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야쿠를 확인하고 리에프는 붙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떼어냈다. 둘 다, 떨어지는 게 아쉽고 싫었다.

 

 






가을이 절반이 지난 후에야 야쿠는 학교로 돌아왔다. 그래도 상태는 아주 좋았다. 본래 건강한 신체였고, 교통사고로 입었던 부상도 말끔히 나아 있었다. 곧바로 배구부로 복귀한 야쿠는 날마다 조금씩 훈련량을 늘려 가고 있었다.


여느 날과 같은 연습이 끝난 어느 가을밤, 차갑고 맑은 밤공기를 마시며 야쿠는 제 옆에서 터벅터벅 걷는 리에프에게 말을 걸었다.


어때? 배구, 할 만 해?”

재미있어요. 배구할 때는 사람들이 저 신기하거나 이상하게 안 쳐다보니까요.”

, 진짜 그렇겠다.”


리에프는 오늘도 습관적으로 야쿠의 가방을 낚아채 제가 둘러메고 있었다. 야쿠의 친구들은 자주 나타나 가방 셔틀이냐며 놀렸지만. 그래도 아직은 몸을 조심했으면 싶었다. 건강하게 운동을 하고 있는데도, 자꾸만 첫 만남의 파르스름하게 펄럭이던 몸과 그렇게 흔들릴 때마다 드러났던 상처가 떠올랐다. 야쿠는 말려도 소용없다는 걸 안 뒤로 그냥 내버려 두었다. 대신 오늘은 꽤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말을 꺼내기로 했다.


리에프. 처음 너와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었던 거, 그거 정말 나한테는 기적이었어.”

……야쿠 선배.”

내 친구들이 시켜서 온 거였지만, 너는. 그래도, 그렇게라도 널 만나지 못했으면 난 아직도 억울해서 거길 떠나지 못하고 있었을 거야. 그것도 내가 제일 싫어했던 도서관에서.”


은행잎이 잔뜩 떨어져 쌓인 나무 밑 벤치에 다다르자 야쿠는 먼저 그곳에 앉아 리에프에게 손짓했다. 아주 살짝 간격을 두고 그 옆에 앉으며 리에프는 줄곧 멍한 기분이었다.


너만 날 제대로 봐줬으니까. 내 얘길 들어 줬잖아. 내 손도 잡아 줬고. 그리고 그게 너여서 너무 다행이었어.”

무슨 뜻이에요?”

, 네가 좋아!”

…….”

너도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니야?”


흔들림 없이 눈을 응시하는 야쿠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리에프는 무심코 그 뺨을 가볍게 쓸었다. 리에프의 입술 사이로 잠시 망설이는 듯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러나 곧 짧게 긍정의 말을 뱉음과 동시에 리에프가 야쿠를 끌어당겨 껴안았다. 그의 한쪽 어깨에 걸려 있던 야쿠의 가방이 발치로 툭 떨어졌다.


저도 좋아해요.”


확신만이 담겨 있던 야쿠의 눈이 예쁘게 감겼다.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리자 리에프의 목 뒤로 설렘 같은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빵 사오라고 했을 때 선배한테 반했어요. 그때부터 말려들었거든요.”


붙이고 있던 몸을 뗀 리에프는 잠시 야쿠의 어깨부터 팔, 그 아래 손까지 천천히, 부드럽게 쓸며 붙잡았다. 큭큭, 웃던 야쿠의 얼굴이 어느 순간부터 진지해졌다. 자연스레 입술이 맞닿을 시간이었다.


, 짧게 겹쳐졌다 떨어진 두 입술 사이로 떨리는 숨이 섞였다. 미소가 완연한 그 틈새로 시리도록 맑은 가을바람이 스쳐나간다.

 

 


 

 

Invisible Sweetie,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