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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HQ!!

[쿠로야쿠] BURST 02



*오메가버스AU

*이전에 업로드했던 오메가버스 프롤로그와 이어집니다.

=1편 링크 : http://hotfreshlove.tistory.com/43





BURST

쿠로오 테츠로 X 야쿠 모리스케



w.비누꽃










일학년의 겨울방학이 흘러가는 동안 쿠로오는 야쿠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야쿠는 옆집에 사는 쿠로오를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하는 게 너무 이상해 현관문에 귀를 대고 기다렸던 적도 있었다. 저녁을 먹으며 쿠로오가 방학 동안 할머니 댁에 갔다는 소식을 엄마로부터 전해 듣고 야쿠는 아, 하며 낮은 탄성을 내뱉었다. 나랑 같이 가기로 했었는데. 


그 날 쿠로오의 말은 분명 반쯤 고백이었다. 그래서 야쿠는 다시 쿠로오를 마주할 때에는 대답을 돌려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야쿠가 느끼기에 쿠로오가 자신을 전과 다르게 대하게 된 건 그가 알파로 발현한 뒤부터였다. 하지만 자신은 그전부터 속으로 쿠로오를 좋아하고 있었다. 절대 티내지 않으려 했지만 쿠로오는 눈치가 빠르니까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걱정이 되었다. 의심하고 싶지 않고, 너무 미안하지만. 자신이 오메가이길 바라고 있는 듯한 쿠로오. 과연 쿠로오가 발현하지 않았어도 자신을 좋아했을까? 야쿠는 자신없었다. 


겨울의 마지막처럼 느껴지는 눈이 펑펑 내려 쌓이던 날, 야쿠는 간신히 한 문장을 쿠로오에게 보낼 수 있었다. 



'나 베타여서 다행이야.' 



이미 했던 말이었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 야쿠는 한참 동안 침대에서 몸부림쳤다. 떠보는 게 너무 찌질하게 느껴졌고 미안했지만, 그렇게 빙빙 돌려 말한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길 바라는 게 절반, 알아차리는 게 두려운 마음이 절반이었다. 



베타여서... 너를 좋아하는 내 마음은 확실히 나의 것이라는 거, 그거라도 알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야쿠는 몸에 엉킨 이불을 끌어안으며 베개에 고개를 파묻었다. 청승맞게 눈물이 다 고이려고 했다. 보내지 말걸. 보내지 말걸. 보내지 말걸! 야쿠는 이불을 도로 걷어차며 밖에 들리지 않도록 숨죽인 비명을 질렀다. 그러는 동안 답장이 도착했다.



'난 알파잖아.'



아. 야쿠는 이 상황이 순간 도돌이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알파가 아니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그랬으면... 좋아하는 마음이 없다면 알파가 베타한테 그럴 이유가 있냐는, 그런 말을 듣고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 게다가 앞으로 쿠로오는 수없이 많은 오메가와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래도 과연 아무 이득도 줄 수 없는 나를 선택할까? 이리저리 마음이 꼬이고 엉키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쿠로오에게 직접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랑 뭐라도 엮일까봐 그게 그렇게 싫었냐?'



"그게 아니라고! 으아악!"


핸드폰 액정에 이어서 뜬 메시지를 보고 야쿠는 육성으로 고함을 질러야 했다. 부서질 듯 핸드폰을 움켜쥐고 메시지를 찍었다. 개학날 얘기해. 쿠로오는 답장하지 않았지만 야쿠는 일단 마음을 진정시켰다. 

곧 봄이었다.









그러나 야쿠는 약속한 개학식 날 학교에 가지 못했다.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극심한 고열에 시달리던 야쿠는 삼 일 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부모님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다독였지만 야쿠는 입술을 꾹 깨물고 대꾸하지 않았다. 자신의 방에 들어와 문을 잠그고 나서야 야쿠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릴 수 있었다. 발치로 약봉지가 툭 떨어졌다.



'발현이 늦어진 탓에 이렇게 열이 심하게 올랐던 겁니다.'


'맞습니다. 아예 발현 안 할 수도 있었겠죠. 부모님 외에 주변에 우성알파가 있나요? 아무래도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네요.'


'앞으로 몇 달 간은 힘들 겁니다. 그래도 주기가 안정되고 나면 우성오메가이시니 좀 나아질 거고... 약 잘 챙겨 드시고, 경과를 지켜보죠.'



방바닥에 주저앉은 야쿠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비닐봉지가 짓이겨졌다. 약봉지를 마구 뜯어내 다 찢어발겨 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결국 약에 손대지 못했다. 이렇게 순식간에 발현해 버리다니...... 야쿠는 책상 위로 손을 뻗어 티슈를 잡아 빼냈다. 왜 이제 와서? 왜? 자신이 며칠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발현이 이른 사춘기 시기에 찾아왔더라면 충분히 받아들이고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나 힘들었다. 갑자기 내 몸이 알파를 받아들이도록 변화하고, 페로몬을 느끼고 내뿜게 되고, 히트사이클이란 걸 겪어야 하고, 하. [내가 베타로 살아가는 법]. 그 책이 아직도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꼴도 보기 싫어.



티슈 한 통을 다 뽑아 쓰도록 울어버리고 나서 야쿠는 아까부터 계속해서 울리던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받기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목소리만이니까... 괜찮겠지.



-학교 왜 안 왔냐.


-아, 아팠어. 내일부터 갈 거야.


-오늘 너네 집 가도 돼? 약 같은 거 필요한 거 있음 말해.


-어...?


-얘기하기로 했잖아.



쿠로오의 말을 듣고 야쿠는 잠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신 야쿠는 축축해진 후드티 소매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쿠로오에게는 다르겠지. 야쿠가 말이 없자 핸드폰 너머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미안. 아프다는데 괜히... 쉬어, 내일 아침에 봐.


-...미안.



갑자기 목소리에 울음이 섞이려고 해서 야쿠는 빠르게 사과의 말을 중얼거리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제는 얘기할 수가 없게 됐는데... 알파인 너와 베타였던 내가 했어야 하는 얘기들, 이제 다 소용없어졌어. 야쿠는 끝없이 밑바닥으로 파고들었다. 전처럼 단 둘이 방에서 게임을 하는 평범한 일상도 어려울 것만 같았다. 이전보다 더 서로를 의식할 것 같고, 거기서 끝나지 않고 알파와 오메가의 페로몬이라는 불가항력에 의해 서로 참지도 못할 것 같고. 마냥 비참하게 느껴졌다. 페로몬이 없는 '순수한' 사랑의 감정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야쿠는 자신을 잡아먹을 듯 바라보던 쿠로오의 얼굴을 떠올리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쿠로오와 올해도 같은 반이라는 걸 야쿠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절대 숨길 수 없으리란 것도. 그래도 현관문을 열기 전까지 너무나 망설여졌다. 발이 떨어지지 않고 있는데 저만치 거실에 엄마가 걱정스럽게 자신을 지켜보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괜히 더 민망했다. 야쿠의 어머니는 며칠 동안 쿠로오 이야기를 많이 했다. 아무래도 그와 어떻게든 남다른 관계가 될 거라고 거의 확신하는 듯했다. 야쿠는 팍 짜증이 나 문을 부서져라 열어버렸다. 


그 날 이후로 쿠로오는 도망치듯 할머니 댁에서 시간을 보내며 야쿠를 다시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 지 고민했다. 그날은 화내서 미안하다, 자신이 알파고 야쿠가 베타인 것에 상관 없이 좋아한다, 그런 솔직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잘 꺼내놓을 수 있을지 생각하며 밤을 새곤 했다. 그러다 문자를 받았다. '나 베타여서 다행이야.' 아 씨, 어쩌라고. 그래서 난 알파니까 꺼지라고? 대체 무슨 뜻인건데, 야쿠. 쿠로오는 앞에 펼쳐 놓고 있던 연습장이 걸레가 되도록 샤프로 의미 없이 찍어댔다. 개학날 얘기하자는 건 또 뭐야. 너덜너덜해진 연습장이 이번엔 볼펜으로 까맣게 칠해졌다. 생각에 생각을 곱씹으며 생각 없이 오른손을 움직이는 동안 또 하룻밤이 꼬박 넘어갔다. 아침해가 밝아오는 방에 누워 간신히 잠을 청하는 쿠로오의 머릿속에 남은 생각은 단 하나였다. 어떻게 되든지 그냥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어느덧 따뜻한 봄날씨였다. 쿠로오는 어젯밤 전화 통화를 하면서 느낀 묘한 위화감에 일부러 삼십 분이나 일찍 나와서 야쿠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성알파의 지극히 동물적인 감인지도 몰랐다. 



"야쿠..."



현관문이 열리고 작은 안뜰을 걸어나오는 야쿠를 대문 밖에서 지켜보던 쿠로오는 그만 야쿠를 부르다 말고 멈칫했다. 야쿠는 쿠로오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과 달라져 있었다. 어디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분명히 그랬다. 쿠로오는 코끝으로 훅 끼쳐 오는 낯선 향기를 맡으며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서 있었다. 눈이 크게 뜨이고, 시선이 야쿠의 움직임을 멍하니 따라 움직였다. 그러는 동안 야쿠는 터벅터벅 걸어 대문을 열고 나와 쿠로오의 앞에 섰다.



"안녕."



야쿠의 입 밖으로 목소리가 빠져나오자마자 쿠로오는 자신의 입을 콱 틀어막았다. 그럴 리 없었다. 꿈을 꾸는 걸까. 자신이 바라 마지않던 그런 페로몬의 향기를 풍기는, 어딘지 불안정하고 위험한 얼굴을 한 게 야쿠라니. 


야쿠는 인사를 던져 놓고 조금 초조한 눈길로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얼굴이 이상하게 굳은 쿠로오는 코와 입을 틀어막은 채 자신을 응시하며 아무 말이 없었다.



"뭘 놀라는데."


"너, 너."


"며칠 전에 발현했어. 네가 보기엔 어떤데? 오늘 학교 갈 수 있을 것 같..."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야쿠의 목소리는 쿠로오의 귀로 들어오지 않았다. 성큼 다가선 쿠로오는 한 손으로 야쿠의 뒤통수를 감싼 채 달려들듯 몸을 밀착했다. 야쿠의 뒷머리가 담벼락에 안전하게 닿았다. 그 다음 맞닿은 건 쿠로오의 입술이었다. 순식간에 야쿠를 밀어붙인 채 무언가를 확인하듯 쿠로오가 입술을 헤집는 동안 야쿠는 생전 처음으로 알파의 존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입 안으로 밀려드는 진한 향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쿠로오는 자신의 어깨를 힘없이 밀치는 야쿠의 손을 붙잡아 내리며 깍지를 꼈다. 처음 접한 오메가로서의 야쿠는 아직 불안정한 듯했다. 그에 따라 여과 없이 터져나오는 페로몬에 응답하듯 쿠로오도 자신의 것을 야쿠에게 내보여 주었다. 그토록 옆에서 우성알파의 냄새를 풍겨도 반응 없던 야쿠였다. 어느덧 뒷목으로 내려온 쿠로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에게는 이 순간이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하..."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입술을 떼어 준 것도 쿠로오였다. 딱 이성을 놓을까 말까 하던 찰나 눈에 들어온 야쿠는 자기 자신의 상태와 쿠로오의 기운 전부를 감당하기 벅찬지 눈에 띄게 힘들어하고 있었다. 잠시 입술이 떨어지자 곧바로 야쿠는 등에 멘 가방을 담벼락에 주르륵 긁으며 주저앉았다. 쿠로오는 야쿠의 엉덩이가 바닥에 닿기 전에 그때까지도 붙잡고 있던 손을 끌어당겨 야쿠를 일으켰다. 둘 다 아침 운동이라도 격하게 한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제정신 비슷하게 돌아오자마자 화를 내는 야쿠를 보며 쿠로오는 오히려 자기가 더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야쿠의 어깨에 흘러내린 가방 끈을 붙잡아 똑바로 올려 주었다.



"당연히 할 일을 한 거야."



야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술을 손등으로 닦았다. 당연해? 대체 뭐가. 한 번의 접촉으로도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가슴이 떨리는 건지 페로몬이 솟구쳐서 떨리는 건지, 아무튼 이런 불안정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약을 쏟아 붓고 나왔는데.



"난... 미안. 야쿠 네가 베타로 남고 싶어했던 건 잘 알겠는데."


"......"


"진짜 미안한데 나는 지금 너무 좋아. 미안해."


"왜,"



쿠로오는 우성알파다운 자제력으로 서둘러 페로몬을 전부 정리했다. 그리고는 야쿠를 와락 끌어안았다. 아까의 위협적이기까지 했던 향기는 온데간데 없이 야쿠에게는 쿠로오의 교복 조끼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냄새만이 부드럽게 끼쳐 왔다. 아까보다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쿠로오는 야쿠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너 진정 좀 해."



지금 어떻게 진정하냐고. 야쿠는 쿠로오에게 파묻힌 채로 한숨을 푹 쉬었다. 쿠로오는 야쿠가 품 안에서 자각 없이 내뿜는 페로몬에 몸을 움찔했다. 잠시 심호흡을 한 뒤 쿠로오는 야쿠가 얼굴을 내밀지 못하는 사이 고개를 내려 그의 뒷목을 콱 깨물었다.



"악!"



비명을 내지른 야쿠에게 그대로 정강이를 걷어차인 쿠로오는 신음도 내지 못하고 담벼락을 짚고 고통을 삭혀야 했다. 말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자 쿠로오는 망연자실해 멍하니 서 있는 야쿠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내 흔적을 남기면 네 냄새가 좀 덜해서 그랬어. 그대로 학교 가는건 좀 무리인 것 같길래."


"......"


대답을 기다리며 슬쩍 눈치를 보던 쿠로오가 결국 돌아서서 먼저 걷기 시작하자 야쿠는 집으로 도로 들어가 버리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며 그 뒤를 따랐다. 야쿠는 방금 전 아침 햇살을 맞으며 눈앞에 서 있던 쿠로오의 다정한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그를 끌어안아 버릴 뻔했다는 걸 깨달았다. 빈 주먹이 꾸욱, 세게 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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