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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HQ!!

[쿠로야쿠] 고양이와 고양이 (상)

**하이큐 200화 과거설정 네타 포함!!

**BGM : Pentatonix - Can't sleep love






고양이와 고양이 (상)

쿠로오 테츠로 X 야쿠 모리스케



w.비누꽃









믿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시합에서만큼은 서로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 블로킹에 맞고 튕겨나간 공이 뒤에 버티고 있는 야쿠 모리스케에 의해 깨끗하게 리시브 되리란 것. 야쿠가 코트에 없는 동안은 내가 그의 자리에서 최대한으로 리시브 해 내리라는 것. 

나는 그의 앞을 지키며, 그는 나의 등을 지키며. 하지만 우린 코트에서의 믿음과 전국제패라는 목표 외에는 들어맞는 게 하나도 없는 사이였다.






-1학년, 여름-


"얏쿵은 또 돼지고기 정식이야? 생선 안 먹으면 키가 안 커요~"

"시끄러워 할배 입맛아."


나는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야쿠를 내려다보며 비웃어 주었다. 자리에 앉아 점심이 담긴 쟁반으로 달려들고 있던 야쿠는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정강이를 콱 걷어찼다.


"아윽!"

진짜 너무 아팠다. 난 저 쪼그만 놈을 한 번 쥐어박은 적도 없는데, 야쿠는 말로 안 되면 꼭 분에 못 이겨 날 걷어차고는 했다. 카이에게로 편들어 달라는 간절한 시선을 보내도 그는 언제나처럼 웃으며 밥만 먹었다.


"5반에 머리 긴 여자애 예쁘더라."

"어쩌라고."

"카이한테 말한 건데요."


야쿠는 진짜로 고양이처럼 그르릉거렸다. 그가 짧은 머리가 예쁘다고 한 후로 난 괜히 긴 머리 여자애들을 쳐다보는 척했다. 왜 그러느냐 하면, 그냥. 우리는 배구부에서 처음 보게 된 순간부터 늘 맞질 않아서 으르렁거렸으니까. 그러니까 모든 게 그냥이었다.








-1학년, 가을-


그 날은 분명히 처음엔 평소같았는데.

나는 원래도 큰 키가 더 자라있었다. 그래서 더 효과적으로 야쿠를 약올릴 수 있었다. 그날도 야쿠의 등에 매달려 발을 질질 끌며 그의 집까지 갔다. 셋이서 자주 가곤 했었지만 오늘은 계속 콧물을 흘리던 카이가 병원에 가고 우리 둘 뿐이었다. 가는 내내 야쿠는 무거운 짐처럼 얹힌 나를 떼어내느라 씩씩거렸다. 야쿠의 악력은 꽤 다부졌지만 같은 운동을 해도 우리의 힘 차이는 신장의 차이만큼씩 벌어지고 있었다.


"너 집에 안 가냐?"

"너 새 게임 샀대며. 나도 할래."


야쿠는 숨을 헉헉대며 나를 노려보았다.


"네 동네 친구가 겜덕이라며, 걔랑 해."

"걔가 다 깨기 전까지 난 못해."

"그럼 기다렸다가 해!"

"넌 왜 그렇게 애가 치사하냐?!"


소리를 빽 지르길래 나도 빽 질렀다. 내가 집에 가는 게 그렇게 싫은가? 갑자기 자존심도 상하고 짜증도 났다. 힘을 주는 바람에 한쪽 손에 들고 있던 커피우유 곽이 콱, 일그러지며 우유가 터져나왔다. 순식간에 야쿠의 조끼 등판을 적시는 우유를 몰래 슬쩍 닦아내려 했지만 그의 볼과 셔츠 카라까지 튀어버려서 소용이 없었다. 난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아, 드럽게 진짜!"


말하기도 전에 그렇게 화를 내냐.


"짜증 좀 그만 부려라!"

"오는 내내 네가 열받게 했잖아!"

"미안하다고! 옷 빨아 준다고!"

"안 빨고 가면 죽는다!"


우리는 둘 다 씩씩대며 현관에서 쿵쾅거렸다. 야쿠는 신발을 벗자마자 가방을 내던지고 조끼를 위로 벗어냈다. 내 얼굴에 맞고 떨어진 조끼를 주워들었다. 잠시 가려졌다 드러난 시야에는 셔츠 단추를 풀어내는 야쿠가 있었다. 내 시선을 느낀 그가 비웃음을 지었다.


"너 때문에 찝찝해서 씻을 거니까, 내 옷들 확실하게 세탁기에 넣어라. 손빨래 시키려다 봐주는 거야."


빠직, 하는 내 얼굴을 보니 만족스러운 듯 야쿠는 계속 우월해 미치겠다는 듯이 웃었다.


"뭐해? 세탁실 저쪽이야."

"나도 더운데? 내가 먼저 씻을건데? 넌 손님한테 예의도 없냐?"


나는 야쿠의 옷을 다시 그에게 던져버리고 그보다 더 빠르게 옷을 벗었다. 야쿠가 내게 달려들었다. 옷을 붙든 내 손을 떼어버리려고 용쓰면서 날 세탁기가 있는 쪽으로 밀어댔다. 나도 지지 않고 그 자리에 버텼다. 손이 들러붙을 때마다 떼어내면서 셔츠를 벗어버렸다.


"저리 가, 저리, 저리로 가버리라고!"

"싫은데? 싫은데? 여기 있을건데?"


교복 바지만 입은 채 붙어 싸우는 꼴을 아무도 못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억지로 등을 밀어버리려는 야쿠의 양 팔을 콱 잡아챘다. 


"아!"

"뭐야, 엄살 부리지 마."


반사적으로 지른 것 같은 비명에 놀라 나는 나도 모르게 잡은 팔을 화들짝 놓아 버렸다. 그러고 나니 좀 민망해져서 그를 타박했다. 시선이 야쿠의 팔로 내려갔다.


"팔이 왜 이래?"


야쿠는 금방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서 바지를 벗었다. 옷을 차곡차곡 개는 그 뒤에 서서 나는 계속 닦달했다. 그의 팔이 온통 멍으로 얼룩덜룩했다.


"뭐가. 리시브 연습하면 이 정도는 당연하잖아."

"......"


도대체 얼마나, 어떻게 따로 연습을 하는 걸까. 나도 쉬지 않고 블로킹 연습을 했고 '수비의 네코마'인 만큼 당연히 리시브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난 꼭 주전으로 전국 갈 거야. 네코마에서 리베로로 있으려면 더 열심히 해야 돼."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등 뒤로 다가섰다. 등이 평소보다 더 작아 보였다. 갑자기 그 등의 크기를 가늠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 등을 감싸듯이 서서 내 양손으로 야쿠의 양 팔을 잡았다. 등도 조그맣고, 단단한 팔도 다 한 손에 잡혔다. 진짜 작은 놈.


"그래도 팔이 이래가지곤 아파서 어떻게 더 연습하냐? 바보 같이."

"어따대고 바보래?"


야쿠는 발끈하며 뒤돌았다. 내 손을 확 뿌리치는 통에 체중이 순간 앞으로 쏠렸다. 벽을 지탱했기에 망정이지 하필이면 야쿠를 볼썽사납게 벽에 깔아뭉갤 뻔 했다. 꼭 덮쳐서 껴안는 것처럼.


그 때 갑자기 야쿠의 얼굴이 빨개졌다. 못본 척 하기엔 나도 너무 당황해 버려서 그 자리에 멍청히 서 있었다. 야쿠는 등을 홱 돌려 그대로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잠시 그냥 서 있었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오자 옷을 아무렇게나 주워 입고 집에서 후다닥 뛰쳐나왔다. 내 얼굴도 새빨개져 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이상하게 꽉 끼는 조끼에서 커피우유 냄새가 났다. 야쿠의 옷이었다.


다음날 헐렁한 조끼를 입고 온 야쿠는 왜 빨래를 안 하고 갔냐고 나를 타박하지 않았다.








-1학년, 겨울-


3학년이 빠진 자리에 우리는 주전이 되어 있었다. 사실 주장은 이미 나를 차기 주장으로 점찍어 놓은 상태였다. 일 년도 안 남았다, 네가 네코마를 이끌어야 하는 날까지. 처음 그 말을 주장에게 듣던 날, 부원들은 당연하다는 듯 내 어깨를 치며 격려했다. 난 아주 익숙한 웃음을 지으며 야쿠를 내려다보았다. 부글부글대는 얼굴을 기대하면서. 그러나 곧 그 웃음은 굳어 버렸다. 야쿠는 나를 올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다른 부원들처럼, 믿어, 하는 얼굴로. 야쿠가 등을 퍽 치는데도 아픔도 느끼지 못했다. 난 너무 놀란 채였다. 그런 얼굴로 나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카이와 헤어지고 지하철을 타러 가기까지는 야쿠와 조금 더 같이 걸어야 했다. 나는 뽀득뽀득 눈을 밟으며 생각에 빠져 있었다. 대로로 빠지기까지 걸어가는 좁은 길은 한산하고 가로등 불빛으로 온통 노래져 있었다.


"어! 또 눈 온다!"


키도 160밖에 안 되는 야쿠는 눈을 보며 펄쩍펄쩍 뛰었다. 내년에 후배 들어온다고 근엄한 척 하면 진심으로 때리고 싶을 것 같았다. 나는 큭큭 웃으며 바닥에서 눈을 퍼올렸다. 그리고 야쿠의 정수리에 쏟아 버렸다.


"악!"

"그거 산성눈인데. 너 대머리 되면 후배들이 좀 존경하겠다 그치."


야쿠는 온갖 몸부림을 치며 눈을 털어내면서도 나를 노려보기만 하고 걷어차지는 않았다. 아마 기분이 좋아서 그런 것 같았다.


"대머리 아니어도 난 후배들이 줄줄이 따르겠지."

"네코마는 유치원이 아닌데요. 얏쿵 어린이."


나는 목도리를 다시 둘러매던 야쿠 앞에서 씩 웃었다. 우리의 키 차이는 더 벌어져 있었다.


"......"


웃음을 거두고 보니 가로등 아래 서 있는 야쿠의 얼굴이 온통 노란 빛이었다. 근데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자꾸 키 들먹이지 마!"


소리지르면서 울고 있었다.


"야...... 미안해...... 왜 그래......"


야쿠가 너무 안쓰럽게 씩씩대며 울어서 난 진짜 미안했다. 그 순간 앞으로 절대 키는 건드리지 말아야지, 하고 속으로 맹세했다. 


"키 커서 좋냐? 전봇대 같은 놈아?"


근데 전봇대 같은 놈이라고 하는 게 진짜 너무 웃겼다. 야쿠는 손발을 매섭게 써도 욕은 잘 못했다. 키도 작고, 얼굴도 작고, 눈은 똥그랗고. 그 눈을 치켜뜨고 울컥해 있는데 너무 미안하면서... 추워서 얼굴도 빨개져 있는데 그게 너무 귀여웠다. 아, 추워서 미쳐 버렸나. 덩치만 작지 성격은 더러워서 절대 안 귀여운 놈인데.


"웃어? 웃냐?"


분명히 야쿠는 죽을 때까지 오늘을 후회할거다. 아니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게 너무 쪽팔려서 나를 죽여버릴지도 모른다. 야쿠가 나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바라는 마음에 장갑을 벗어 얼굴을 문질러 주었다. 야쿠는 그 손을 확 뿌리쳤다.


"미안해...... 키 얘기 다시는 안 할게."


하지만 야쿠 모리스케는 내 생각보다 더 계산적인 놈이었다.


"......!"


그의 손이 순식간에 내 목도리를 붙들어 끌어당겼다. 겨울 바람에 얼어버린 입술이 세게 맞닿았다. 일 초, 이 초, 삼 초. 내 손에서 장갑이 툭 떨어졌다. 

야쿠는 나를 밀어버리고 장갑을 주워들었다.


"오늘 일 입밖에 내기만 해봐."


야쿠는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며 멀어져갔다. 쟤도... 어지간히 당황했나보다. 저거 내 장갑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