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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HQ!!

[카마후타/코가후타] 각자의 봄




각자의 봄

카마사키 야스시X후타쿠치 켄지X코가네가와 칸지




w.비누꽃






1.

누구에게도 굳이 티낸 적은 없었지만, 후타쿠치 켄지 역시 봄을 탈 때가 있었다. 몇 명 안되는 같은 반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벚꽃이네, 꽃놀이네 종알거리는 들뜬 목소리에 그 역시 은근히 기분이 들뜨곤 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들어오는 교실 한 구석, 지정석처럼 항상 차지하고 있는 창가 맨 뒷자리에 앉아 노곤하게 감기는 눈꺼풀을 들어올리면 곧바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  창 밖의 벚나무였다. 후타쿠치는 간지러운 봄바람에도 꽃잎을 우수수 흩날리는 그 벚꽃이 자신과 어울린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턱을 괴고 멍하니 그 봄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쩐지 가슴이 간질간질하고, 울렁울렁하고 가끔은 미어지는 듯 아프기도 했다. 후타쿠치가 배구부 선배 카마사키 야스시에게 예전과는 전혀 다른 감정을 품게 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연습이 끝나고 배구부원들과 돌아가는 길은 이미 해가 져 있었다. 학교의 상징같은 오래된 벚나무는 겨우 가로등 몇 개에 의지한 어둠속에서도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한참 땀을 빼고 조금 차분해진 소년들은 늘어진 꽃가지 아래를 지나가며 저마다의 감성으로 꽃을 구경했다.


"아오네. 안 가?"


우뚝 서서 물끄러미 머리 위를 올려다보는 아오네 때문에 우르르 걸어가던 부원들도 전부 발걸음을 멈췄다. 후타쿠치도 아오네를 따라 흐드러지는 꽃을 올려다보았다.


"예쁘긴 예쁘다."


후타쿠치가 중얼거리기가 무섭게 가지가 탁, 꺾이는 소리가 났다.


"여기 있습니다, 후타쿠치 선배!"


190도 넘는 장신의 후배가 코밑으로 들이대는 꽃을 떨떠름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그의 금발 머리 뒤에서 뻗어나온 누군가의 솥뚜껑같은 손이 그 등을 퍽 후려쳤다.


"임마, 코가네! 꽃을 꺾으면 어떡해!"

"죄송합니다, 카마사키 선배!"

"시끄러워..."


카마사키 앞에 허리를 꾸벅 숙이는 코가네가와와 작게 핀잔을 주는 모니와, 한심하다는 표정의 후타쿠치, 말 없이 서있는 아오네. 익숙한 구도에 부원들은 낄낄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오네의 가방끈을 잡아끌던 후타쿠치의 시선이 문득 앞서가는 카마사키의 등에 머물렀다. 아직 밤은 제법 쌀쌀한데 교복 셔츠 한 장만을 걸치고 있는 게 그다웠다.


"...벚꽃 꺾으면 안 되나봐."

"......"

"처음 알았다. 그치."

"......"

"카마사키 선배가 저런 면도 있네... 꽃 어쩌구..."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후타쿠치를 내려다보며 아오네는 고개를 살살 저었다. 그리고 먼저 앞으로 걸어가 버렸다. 후타쿠치는 코 끝에 남은 땀냄새 뒤섞인 향수 냄새를 느끼며 서 있었다. 이상하게 연습 내내 이 냄새 때문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블로킹을 하면서 카마사키 선배와 몸을 부딪힐 때마다... 카마사키 선배가 실컷 흘린 땀을 수건으로 거칠게 닦아낼 때마다...


"후, 후타쿠치 선배."


후타쿠치는 문득 빠져들었던 생각에서 깨어났다. 이미 다들 앞서 간 줄 알았더니 코가네는 아직 그 앞에 남아 있었다.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멍하니 서 있었다니 한심했다. 코가네는 손에 들려 있던 벚꽃 가지를 다시 한 번 내밀었다.


"야아, 너는 왜 매일 매를 버냐고..."


그러면서도 후타쿠치는 꽃을 받아들었다. 가지를 빙글빙글 돌리며 피식 웃기도 했다. 그 얼굴을 몰래 힐끔거리며 코가네가와는 벌렁벌렁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묘하게 징징 늘어지는 후타쿠치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릴 때마다 참을 수 없이 간지러웠다.


"오늘 셋업도 엉망이던데, 그래서 주전으로 나갈 수는 있겠냐?"


씨익 웃으며 비웃는 것도 좋았다. 코가네가와는 전혀 상처받지 않았다. 차기 주장에 차기 에이스, 하늘같은 선배였고 진심으로 존경하면서도 오히려 후타쿠치의 그런 모습이 그의 눈에는 귀엽게 보이기까지 했다. 입 밖으로 절대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를 혼낼 때에도, 잔뜩 빈정거릴 때에도, 엉망인 셋업에 성질을 낼 때도 그 코맹맹이 목소리에 늘어지는 말투가 이상하게 가슴을 긁어 놓았다. 그러니까, 첫눈에 반하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2.

감성이라고는 절대 없을 것 같고, 땀흘리는 배구 말고는 모르는 딱 공고남. 카마사키에 대한 그동안의 후타쿠치의 평가는 이러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고작 꽃을 함부로 꺾지 말라는 말이 이렇게 며칠 내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 걸 보며, 후타쿠치는 자신 역시 그동안 너무 메말라 있었구나 싶었다.


"아오네, 나 여자친구나 만들까."

"......"


어차피 대답을 바라고 한 말도 아니었다. 둘은 오늘도 부실에 일등으로 도착해 있었다. 후타쿠치는 가방을 아무렇게나 휘휘 벗어 던지고, 옷을 갈아입으려는 아오네를 붙잡아 무릎을 턱 베고 누웠다.


"아, 오늘은 왜 이렇게 몸이 늘어지냐......"


제일 먼저 웜업 해야되는데, 하고 중얼거리자마자 왈칵 문이 열리며 삼학년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아오네가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머리를 바닥에 찧을 뻔한 후타쿠치는 몸을 일으키는 척하며 건성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후타쿠치! 좀 더 선배한테 예의있게 못하냐!"

"예예, 선배님들 안녕하십니까."


삼학년들은 혀를 끌끌 차며 옷을 갈아입었다.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의 바로 옆, 자신의 라커 앞에 서서 옷을 벗었다. 카마사키도 그 옆에서 옷을 갈아입는 게 느껴졌다. 벌써 일 년째 보는 장면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카, 카마사키 선배."

"왜."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맨날 향수를 뿌려요?"

"뭐야?"

"여기 있는 얼마 안되는 여자애들은 다 저 보러 온다구요."


카마사키가 셔츠를 벗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이름을 불러버렸고, 거기에 놀라 아무 말이나 나오는대로 막 해버렸다. 후타쿠치는 평소 말버릇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깨달으며 마음 속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 그러니까 괜히 멋부리지 마시죠!"

"야, 후타쿠치! 너 뭐라고 했어!"


후타쿠치는 길길이 날뛰는 카마사키를 날쌔게 피해 아오네의 등 뒤로 숨어버렸다. 자신의 입을 마구 때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평소처럼 행동한 거니까 오히려 잘 됐다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오네의 운동복 등짝을 자기도 모르게 잔뜩 움켜쥐며 한숨을 푹 쉬었다. 아오네는 등 너머로 고개를 돌려 그런 후타쿠치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카마사키가 닿는 걸 신경쓰느라 블로킹도 제대로 뛰지 못했다. 코치와 모니와에게 잔소리를 한바탕 들은 후 후타쿠치는 곧바로 운동복 상의를 거칠게 벗어던졌다. 스파이크도 시원찮았다. 오늘은 코가네가와보다 더 못한 것 같다는 최악의 생각마저 들었다. 모니와와 카마사키, 사사야가 그를 보며 쑥덕대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다구요, 선배들..."


카마사키와 후타쿠치 둘 다 잘 단련된 몸이었지만 키나 전체적인 몸집은 카마사키가 더 컸다. 후타쿠치는 적당히 늘씬하게 근육이 잡힌 자신의 몸이 좋았지만, 걷어올린 운동복 아래로 드러난 카마사키의 팔 근육이라던가 말처럼 단단한 허벅지를 보면 자신도 더 운동해야 되나 싶기도 했다. 그게 다였다. 그런데 요 며칠은 정말이지...


"야, 아오네......"


그 몸을 만져보고 싶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시선이 일렁이고 마음이 울렁거렸다. 잘 다져진 구릿빛 피부를 타고 땀이 흐르는 게 너무 생생하게 눈앞에 보였다. 넓은 가슴팍에 몸을 맡기면 어떤 느낌일까 싶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후타쿠치는 발을 질질 끌며 아오네에게 향했다. 그는 자신이 옆에서 아무렇게나 징징대도 말없이 들어줄 것이다.


"후타쿠치 선배!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수건이랑 물 여기...!"


그 앞을 코가네가와가 불쑥 튀어나와 가로막았다. 카마사키와 비슷하게 물들어 있는 노란 머리, 그리고 그 밑으로 드러난 얼굴이 이상하게 새빨갰다. 


"어어. 너도 수고했다."


하도 신경을 써서 몸도 더 지치는 느낌이고. 후타쿠치는 수건을 받아들고 그대로 서서 땀을 닦았다. 벗은 상체에 아무렇지 않게 수건을 문지르고 코가네가와의 손에 아직 들려있던 물병도 가져가 단숨에 한 병을 비웠다. 그러는 동안 어쩔 줄 모르는 코가네가와의 시선은 하얀 수건을 따라, 후타쿠치의 상반신을 따라, 물병을 빠는 입술을 따라, 물을 넘기는 목울대를 따라 정신없이 흔들렸다.


"야, 코가네 또 후타쿠치 보고 얼굴 빨개졌다!"

"니로, 걔 머리라도 한 번 쓰다듬어줘!"


주변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부원들이 웃으며 소리쳤다. 후타쿠치는 저만치에 늘어져서 여기까지 들리도록 픽픽 웃고 있는 오나가와를 노려보다 한숨을 쉬었다.


"재미없거든!"

"......"


코가네가와는 그 자리에 서서 말이 없었다.


"아, 왜들 저래 또."

"전, 저는..."


코가네가와가 꼭 큰 강아지처럼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다. 대수롭지 않은 놀림 같아서 후타쿠치는 그를 지나쳐 이번에야말로 아오네에게 가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새 가까이 온 카마사키가 그 앞에서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어이, 코가네가 너 진짜 좋아하나봐, 후타쿠치!"


하하하 웃는 소리에 그만 후타쿠치의 얼굴도 빨개졌다. 코가네가와와는 다른 감정으로 달아오른 채였다. 그냥 장난인데, 늘상 하는 말도 안되는 장난인데 왜 귀까지 빨개지도록 창피하고 화가 나는지 몰랐다. 잔뜩 예민해져 있었다.





3.

후타쿠치와 아오네는 말없이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아오네는 원래 말을 안 했고, 후타쿠치는 머릿속이 복잡해서 말을 못 했다. 그때 또 창 밖으로 후타쿠치의 시선이 갔다. 그리고 연분홍 꽃잎이 아직도 휘날리는 게 이제는 지겹다고 생각했다. 저 벚나무를 볼 때마다 드는 감정들은 저 멀리 밀어냈다. 외면하고 싶었다.

그가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는 동안 아오네는 말없이 후타쿠치의 반찬을 집어 먹었다. 이윽고 고개를 돌려 밥만 남은 자신의 도시락을 내려다보고 후타쿠치는 바람 빠지는 소리 같은 한숨을 쉬었다. 


"뭐야...!"


자신의 도시락으로 꽂혀드는 후타쿠치의 젓가락을 탁 쳐내며 아오네는 무거운 입을 열었다.


"마음이 다른 데 가있지 않나."

"야......"

"카마사키 선배."


후타쿠치는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같은 팀 친구의 입에서 나온 자신의 마음이 거울처럼 그를 비췄다. 인정해야 하나 싶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아오네는 다시 말문을 닫았다. 도시락을 덮고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면서 그는 후타쿠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후타쿠치는 끄응하고 신음을 뱉으며 책상에 엎드려 버렸다.




"선배, 좋아합니다! 진심이에요!"


아, 또 이 나무 밑이냐. 벚나무 밑으로 불려나와 남자 후배에게 고백받는 기분은 정말 너무나 이상했다. 후타쿠치는 흩날리는 꽃잎이 맘에 들지 않는 티를 팍팍 내며 왕벚나무를 째려보았다. 그리고 그 앞에 서서 새빨개진 얼굴로 자신에게 방금 고백한 코가네가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곧바로 눈을 피해버렸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어떨지 모르지만 같은 남자인 카마사키에 대한 마음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의 고백은 너무나 진지하게 후타쿠치에게 와닿았다. 차마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아니 너 말야... 다시 잘 생각해보라고..."


입술 양끝 바로 위에 위치한 깊은 보조개 때문에 코가네가와는 입을 다물고 있어도 진중해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후타쿠치의 말을 들은 순간 싹 바뀌는 코가네가와의 얼굴은 너무 진지해서, 후타쿠치는 그만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코가네가와는 이미 키도 몸도 그보다 컸다. 어린애 같던 표정마저 얼굴에서 사라지자 그는 정말 자신을 원하는 진짜 남자로 보였다. 후타쿠치는 그에게서 너무나 뜨겁게 느껴지는 감정이 두려웠다.


"진심입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반했어요."

"......코가네, 장난인거 알아. 지금 아니라고 말하면 봐줄게."


후타쿠치는 평소처럼 삐딱하게 웃으려고 애쓰며 말을 끝냈다. 그리고 코가네가와가 말문이 막힌 틈을 타 돌아서려고 했다. 그러나 단숨에 팔이 붙잡혀 돌려세워졌다.


"야!"

"선배."


후타쿠치는 그대로 몸이 굳었다. 코가네가와의 화난 얼굴은 상상 이상이었다. 장신인 후타쿠치보다도 훨씬 더 큰 그가 성큼, 한 발짝 다가왔다.


"저는 진심이라구요. 제가 싫으시면 제대로 거절해 주세요."





4.

"아, 젠장! 걔는 진심이라고요!"


일이 꼬이려는 건지, 당번인 아오네를 남겨두고 부실로 향하던 길에서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와 말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원래는 후타쿠치 자신도 유머 감각이 있었고 누군가가 치는 장난을 유들유들하게 받아주는 편이었다. 빈정거리고 틱틱거리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속좁게 구는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카마사키 앞에서는 며칠째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왕벚나무 아래서 고백받은 게 배구부에 소문난 것 같았다. 하긴 그렇게 눈에 띄는 장소에 이상한 분위기로 서 있었으니 배구부원들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놀림받을 줄은 몰랐다. 부원들이 불편해 하는 것도 바라지 않았지만,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입에 올리는 것도 못마땅했다. 사실, 후타쿠치는 다른 누구가 아닌 카마사키가 그러는 게 싫었다.


"코가네는... 진짜 진심이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놀리지 말라구요."


자신의 마음 역시 그에게는 우스운 놀림감으로 여겨질까봐.


"기분 나빴냐? 야, 근데 너 이런거에 화내지 않잖아?"

"같은 남자 좋아한다고 놀리는 것 같으니까 그렇죠! 괜히 미안하잖아요 나까지!"


아, 또 멀리 벚꽃이 보였다. 어느새 가지에 연둣빛 잎들이 빼곡이 돋아나고 있었다. 필 대로 피어난 꽃들도 이제 머지않았을 것이다. 후타쿠치는 부러 먼 곳을 쳐다보던 시야가 뿌얘지는 것을 느꼈다. 시합에서 져도 운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서러웠다. 억울하게 서러웠다. 소리치는 말 끝에 울먹임이 섞였다.


"후, 후타쿠치 너 우냐? 울어?"

"......"


후타쿠치는 너무 어이가 없고 창피해서 고개도 들지 못했다. 그냥 주먹으로 얼굴을 벅벅 훔쳤다. 요즘의 마음고생 때문에 쌓인 것들이 터져나와 버렸다. 이제 선배 얼굴을 어떻게 보나 싶어서 발끝만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발에 툭툭 돌멩이들이 걸렸다. 카마사키는 그 앞에 당황한 듯 한동안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그래도, 널 좋아하는 게 남자인 코가네가와라서 그런 건 아니었어."


후타쿠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카마사키는 머리를 벅벅 헤집더니 넥타이를 끌르며 손부채질을 해댔다. 


"뭐, 좋아하는 게 잘못도 아니고! 아무튼 난 그렇게 생각한다고! 나 먼저 들어간다!"


그 순간 후타쿠치는 또 한번 카마사키에게서 의외의 모습을 보았다.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도 상관없다고? 멋쩍은 듯 돌아서는 카마사키를 바라보는 후타쿠치의 눈은 놀라움으로 크게 뜨여 있었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게 하필 선배인 건지. 

그리고 충동적으로 저 등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 카마사키 선배."


후타쿠치는 뛰어가 그대로 카마사키의 교복 셔츠 허리를 붙들었다. 몸에 손이 닿으면 정말 이상해질까봐, 셔츠 자락만 다급하게 손가락 끝에 감아쥐었다. 카마사키는 좀 당황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그럼, 그럼 선배한테 남자가 고백하면 어쩔 건데요?"

"엉?"

"마음이 생길 것 같아요? 받아줄 수도 있어요?"


늦은 오후의 햇살이 낮게 내리쬐고 있었다. 후타쿠치는 비벼댄 눈가가 붉어진 채로 주홍빛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카마사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5.

"따, 따라오지 마!"


후타쿠치는 그만 말을 더듬고 속으로 욕을 씹었다. 엄청 의식한다고 대놓고 말해버린 거나 다름없었다. 성큼성큼 앞서 걸어가는 그 등 뒤를 코가네가와가 더 큰 보폭으로 따라 걸었다.


"후타쿠치 선배, 저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나요? 네?"

"제에발 목소리 좀 낮춰...!"


선배들이 봤으면 후타쿠치가 쩔쩔매는 꼴이 보기 좋다고 낄낄거렸을 것이다.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후타쿠치는 그 날 코가네가와의 고백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마음도 혼란스러운 와중에 차마 그의 마음을 마주볼 용기도 여유도 없었다. 그동안 심심치 않게 만나오던 여느 여학생들과의 관계와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스스로가 비겁하다고 느껴졌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후타쿠치는 며칠째 코가네가와에게서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자신도 한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카마사키와의 일도 있었으니 이제는 제대로 대답해주어야겠다고 마음 먹기는 했다. 어젯밤 분명히 이렇게 다짐했는데, 막상 그를 또 마주치니 입이 떨어지지를 않는 것이었다.


"선배..."

"나, 나 부실에 두고 온 거 있어서, 얘기는 내일 하자."


집 잃은 개처럼 불쌍하게 축 늘어진 코가네가와의 목소리가 지겹게도 등 뒤로 따라붙었다. 후타쿠치는 자신도 모르게 기계처럼 거짓말을 중얼거리며 집으로 가려던 몸을 틀었다.


"후타쿠치 선배, 제 얼굴 좀 보고 얘기해 주세요!"


후타쿠치는 어깨를 붙잡는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뛰었다. 뛰면서 왕벚나무 밑을 지나쳤고, 무의식적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아, 지겹게 피어 있던 벚꽃은 어느샌가 전부 져 있었다. 발 밑으로 푹신하게 깔린 꽃잎을 밟고 달리며 후타쿠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꽃은 져버렸는데 그는 여전히 두렵고, 혼란스럽고,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품은 그대로였다. 

깜깜한 부실 문을 열고 들어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듯 앉았다. 가슴이 너무 세차게 뛰었다. 코가네가와의 손이 닿았던 자리가 뜨겁게 느껴졌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숨을 고르던 것도 잠시, 어둡던 부실에 깜빡거리며 불이 켜졌다. 후타쿠치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그를 따라온 코가네가와가 서 있었다.


"코가네..."


코가네가와는 비척비척 걸어와 후타쿠치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타쿠치 선배... 저, 너무 힘들어요..."

"......"


간절한 눈이 후타쿠치에게로 향했다. 후타쿠치는 미안해 죽을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장난 같았지만 사실은 코가네가와는 진심이었고, 매몰차게 거절당하거나 혹은 그 이상으로 비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분명 불안하고 초조해했을 것이다. 선배라고 잘난 척은 다 했으면서 훨씬 더 성숙하지 못하게 굴었다고, 후타쿠치는 자조하며 얼굴을 감쌌다.


"아, 미안해. 진짜 미안하다, 코가네."

"선,"

"나, 너 아니야. 미안해. 네 마음은 고맙게 생각해, 근데 우리 그냥... 배구부 선후배 사이로 지내자."

"......"

"나, 나 좋아하지 마라."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말을 끝냈다. 마지막 말은 더듬어버리고 겨우 고개를 들자 입을 다물고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코가네가와와 시선이 닿았다. 


"정말 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신 겁니까? 선배."


후타쿠치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자신은 카마사키에게 마음이 있었다. 그러니 코가네가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그의 마음을 서로가 상처받지 않고 거절할 수 있을지만 생각하며 도망쳐다녔을 뿐이었다.


"미안. 솔직히 모르겠어. 한 번도 너랑...그, 만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데,"


그리고 자신은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코가네가와가 먼저 소리쳤다.


"생각해 보지 않고 어떻게 안다는 겁니까? 전 매일 매일 후타쿠치 선배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야야, 내 말은,"


코가네가와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후타쿠치는 반사적으로 놀라 몸을 빼려고 했지만 그는 후타쿠치의 양 손을 턱 잡았다. 그리고 격앙된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연습할 때마다, 선배를 볼 때마다 미칠 것 같았어요. 처음엔 기분이 이상하고, 그러다 떨리고, 설레고! 이젠 만지고 안아보고 싶었어요. 자제가 안 돼서, 마음이 터질 것 같았다고요! 근데 선배는... 그냥 절 한심하게만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죽을 것 같았어요."

"그런 게 아니라 나는... 그냥..."


코가네가와의 가슴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쿵쿵 뛰었다. 자신의 손에 후타쿠치의 두 손이 꽉 들어차 있었다. 감겨드는 피부의 온기를 느끼며 코가네가와는 주체할 수 없이 충동적으로 나가는 자신을 막지 못했다. 입술이 달달 떨리고, 붉어진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당황한 후타쿠치의 얼굴이 부옇게 흔들렸다. 존경하는 선배의 얼굴. 비웃으며 입술을 삐죽대는 얼굴. 예쁘게 생긴 얼굴. 어느덧 귀엽게 보이기까지 하는 얼굴... 그리고...


"확인해보면 되잖아요! 제가 좋은지 아닌지 확인해보면 되잖아요...!"


코가네가와는 울면서 후타쿠치에게 달려들었다. 양 볼을 거세게 움켜잡고 끌어당겨 입술을 집어삼켰다. 늘 안달나 미치게 하던 선배의 입술이었다. 앞뒤 생각않고 달려드는 힘에 둘 다 중심을 잃고 몸이 넘어갔다. 후타쿠치의 위에 어정쩡하게 올라탄채로 코가네가와는 계속해서 입술을 부볐다. 신음 같은 울먹임이 잇새로 새어나오고, 망설임 없이 혀를 찔러넣자 후타쿠치가 몸을 움찔하는게 느껴졌다. 코가네가와는 좋아하는 선배의 어깨를 부서져라 붙든 채로 깊이 혀를 섞었다. 잔뜩 떨리는 입술을 부딪혀 버렸지만 일단 맛보고 나니 너무 좋아서,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감기는 혀를 느끼고, 입안을 샅샅이 훑었다. 후타쿠치가 입술을 내준 채로 움찔거릴 때마다, 말랑한 입안을 느낄 때마다 턱과 아랫배가 점점 더 간지럽게 조여왔다. 뜨겁고 미끌거리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빨아당기자 후타쿠치의 입에서도 신음이 새어나왔다. 


"으, 흡..."


후타쿠치가 가슴팍을 밀치는 것에도 아랑곳없이 키스가 더 진해졌다. 두 사람뿐인 부실 안에 입술이 쪽쪽거리며 질척하게 맞닿는 소리와 끙끙대는 그들의 신음소리만이 채워졌다. 코가네가와가 흘린 눈물이 후타쿠치의 얼굴로 뚝뚝 떨어졌다. 코가네가와는 자신을 집어삼켜버린 스스로의 감정에, 후타쿠치는 현실 같지 않은 상황의 당황스러움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 비켜, 비켜. 저리 가, 코가네."


말은 그렇게 얄밉게 하면서 전혀 냉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코가네가와는 거친 숨을 쉬며 입술을 떼고 후타쿠치의 볼에 입맞췄다. 곧바로 턱선을 따라 내려가는 입술이 목에 닿았다. 숨을 들이쉬며 체향을 잔뜩 느끼려는 행위에 후타쿠치가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다. 힘없는 목소리가 빠져나오고, 손이 다시 코가네가와를 밀쳐냈다. 


"비켜...!"


목에 정신없이 키스하는 그의 뒷머리를 잡고 확 끌어내자 그제야 코가네가와가 신음을 뱉으며 떨어져 나갔다. 후타쿠치는 황급히 허리를 일으켰지만 여전히 코가네가와는 그의 위에 있었다. 어느새 후타쿠치의 교복 셔츠 안으로 들어와 있던 코가네가와의 손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둘 다 거세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후타쿠치는 숨을 고르고 떨리는 손으로 코가네가와의 얼굴에 남은 눈물 자국을 닦아 주었다. 거칠게 달려들었던 그가 마냥 안쓰러웠다. 코가네가와는 그 손을 탁 붙잡고 입을 열었다. 아직도 추스르지 못한 감정 때문에 목소리가 떨리는 채였다.


"선배, 선배 여자친구도 여러 명 있었잖아요. 저랑 하는 건 왜 그렇게 떨어요. 그렇게 싫었어요?"

"야, 이 자식아..."


이제 후타쿠치도 울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울컥해버려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방금 전까지도 코가네가와의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져 위로해 주려고 했었는데, 어른스러운 척 넘기려고 했었는데, 전부 실패였다. 코가네가와가 붙잡고 있던 손이 더 세게 경련했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우는 후타쿠치를 보자 코가네가와는 순간 정신이 확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너 그렇게 나한테 달려들고서... 그런 식으로 말하면..."


코가네가와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후타쿠치를 당겨 품에 안았다. 그리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병 주고 약 주는 모양새라 우스웠지만 코가네가와는 진지한 얼굴로 후타쿠치에게 사과했다.


"후타쿠치 선배, 제가 진짜 잘못했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코가네가와의 품은 넓고 따뜻했다. 대책 없이 감정만 밀어붙이며 어리게 군 후배였지만 그 품 안에서 후타쿠치는 마구 흘러나오는 서러운 울음을 쏟아내고 곧 자신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꾹꾹 참아왔던 것들이 빠져나가자 가슴이 시원해졌다. 고개를 들고 코가네가와에게서 빠져나온 후타쿠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그래서 다른 생각 할 여유가 없었던거야. 미안하다."


그리고 습관처럼 민망함에 주먹으로 눈을 비비려 했다. 그 얼굴을 내려다보며 가만히 있던 코가네가와가 입고 있던 운동복 소매로 후타쿠치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둘 다 지쳐 있었다. 그래서 각자의 감정이 조금 잦아들 때까지 둘은 그 자리에 널브러져 앉아 있었다.





6.

"내가 깊이 생각해 봤는데."

"네."


텅 빈 점심시간의 부실에는 두 사람만이 서 있었다.


"정말 솔직히 말하는건데 난 네가 나를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고."

"아, 뭐야. 거절할 거면 괜히 말 돌리지 마요."

"하여튼간 너는 그 입이!"


카마사키는 평소처럼 버럭 소리를 지르려다 간신히 자신을 억눌렀다. 코가네가와와 그를 엮어 장난을 쳤다가 뜬금없이 자신이 후타쿠치에게 고백을 받은 지 일주일째였다. 그 후 처음 제대로 마주하는 얼굴은 어쩐지 그때와는 다르게 불안하지 않고 맑고 차분해 보였다. 카마사키는 자신보다 조금 작은 후배를 내려다보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러니까 난 너를... 좀 더 알아갔으면 해."

"어?"

"어?라니, 뭐가. 깊이 생각해 봤다고 했잖냐. 후타쿠치 너랑 만나면 어떨지."


아... 후타쿠치는 살짝 탄성을 내뱉었다. 코가네가와의 마음을 피하기만 했던 자신과는 정반대의 반응이었다. 카마사키 선배가 나를 생각했다니. 나를 만나고, 좋아하게 되면 어떨지 생각해 봤다니. 후타쿠치는 또 한 번 카마사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이미 그가 가져간 마음이었지만 한 번 더 반해버렸다.


"그동안은 전혀 생각해 보질 않았으니까. 뭐, 근데 나쁘지 않더라고. 사실은 얄밉다가도 좀... 귀여워 보이기도 했던 것 같고. 항상 연습도 열심히 했으니까 그것도 좋게 보였고. 무엇보다... 그 날 너한테 고백 받았을 때, 사실 처음엔 놀랐지만 나중에는 좀 기분 좋기도 했다. 처음으로 그때부터 널 다르게 생각해보게 됐어. 그리고 진짜로 점점 다르게 보이게 돼서...... 아무튼 그렇게 된 거다."

"흐음."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카마사키의 얼굴이 처음으로 살짝 붉어졌다. 셔츠 소매를 둘둘 걷어 입고도 그는 더운지 손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카마사키를 지켜보던 후타쿠치는 곧 킥킥 웃으며 허리를 숙여 그의 턱 밑으로 확 고개를 들이밀었다. 언제 걱정을 달고 살았냐는 듯이 후타쿠치는 여유를 되찾은 모습으로 기쁨을 온전히 내비쳤다.


"선배, 나랑 지금 키스할래요?"

"뭐, 뭐?"


그의 얼굴이 새빨개지고, 자신보다 어른스러워 보이던 얼굴의 균형이 흐트러지는 게 무척이나 통쾌했다. 후타쿠치는 기분 좋게 씩 웃으며 혀를 낼름 내밀었다.


"그 말 듣고 난 선배랑 당장 키스하고 싶어졌는데요."

"야, 후타쿠치 넌 진짜...!"

"뭐, 천천히 애틋하게 좋아하게 되면 좋아하는 거고. 지금 나랑 키스해서 그게 좋으면 그것도 좋은 거 아닌가? 선배, 난 그렇게 생각해요. 확인해 보자구요."


그리고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의 넥타이를 잡아당겨 다가온 입술에 그대로 키스했다. 입술 사이로 쿡쿡 웃음이 샜다. 아무래도 당황한 것 같은 카마사키의 얼굴을 감싸고 더 깊이 입을 맞췄다. 쿵, 하고 흔들거리는 락커에 카마사키의 등이 부딪히고, 후타쿠치의 혀가 그의 입 안으로 들어가 뜨겁게 헤집었다. 입술과 혀가 질척이는 소리가 부실에 울려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의 입술을 한번 길게 핥아올리고 여태껏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시야에 다시 그의 얼굴이 들어차는 순간 얼마쯤 두렵기도 했다. 싫어했으면 어떡하지, 하는 답지 않게 소심한 걱정을 깊이 숨기며 입술을 떼고 애써 평소처럼 웃어 보였다. 하지만 카마사키는 마주 웃어주지 않았다. 후타쿠치는 그의 눈을 마주하고 순간 움찔 몸을 떨었다. 아까와는 딴판으로 변한 카마사키의 눈빛이 너무 깊었다. 곧 그의 손이 뻗어와 후타쿠치의 입술을 매만지고 쓸었다. 얕게 몰아쉬는 숨소리만이 오고간 것도 잠시, 카마사키는 후타쿠치의 뒷목과 허리를 붙잡아 세게 끌어당겼다. 그리고 입술이 입술을 덮었다. 


빙글 돌아서 이번에는 후타쿠치의 등이 락커에 쾅 소리가 나도록 부딪혔다. 바싹 다가온 카마사키의 품에서, 그렇게 다가가고 싶고 만져보고 싶던 몸에서 늘 맡던 향수 냄새가 느껴졌다. 그게 묘하게 후타쿠치를 흥분시켰다. 한편 카마사키는 자신의 몸에 온통 갇힌채로 밀착된 후타쿠치를 느끼며 몸이 달아올랐다. 머리통을 예쁘게 덮은 갈색 머리칼이나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눈이나 입술 밖으로 삐져나온 혓바닥이 전에는 느껴본 적 없던 찌르르한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입맞춤 한 번에 그들의 관계는 이전과는 정반대로 순식간에 뒤집혀 버렸다. 늘 함께 옷을 갈아입고 시덥지 않은 얘기를 주고받던 부실에서 둘은 전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을 만끽하고 있었다. 코로 거칠게 숨을 쉬며 둘은 입술을 섞었다. 


한 번 신호탄이 터지자 그 다음부터는 거침없었다. 어느새 후타쿠치의 양 팔은 카마사키의 목을 단단히 두르고 있었다. 얼마쯤 아직 미성숙한 감정이 맞부딪히는 흥분에 둘은 서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잡아먹을 듯이 입을 맞추고 잔뜩 흥분한 신음을 참지 않고 터뜨렸다. 후타쿠치의 허리를 두르고 있던 카마사키의 손이 다급하게 셔츠 안으로 들어와 그의 등허리를 쓸었다. 으응, 하는 신음을 뱉으며 후타쿠치의 몸이 카마사키에게로 더 달라붙었다. 혀가 얽혀들 때마다 가슴이 찌릿찌릿해서, 서로 혀를 놓지 않으려고 더 쪽쪽 빨아들였다. 한동안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입술이 은색 실을 길게 늘이며 떨어져 나가고, 카마사키의 입술이 곧장 목을 타고 아래로 향했다. 후타쿠치의 셔츠를 밀어 올리다 그냥 다급하게 단추를 전부 풀어버렸다. 안에 입은 티셔츠도 끌어올려 벗겨 던지며 카마사키는 그대로 후타쿠치의 가슴팍에 입술을 묻었다. 그의 금발 머리카락이 후타쿠치의 손가락 안에서 이리저리 엉켰다. 


"아흐, 아..."


후타쿠치는 다시 그의 머리를 끌어올려 입을 맞췄다. 둘 다 아래가 참을 수 없이 저릿저릿해졌다. 본능적으로 둘은 간지러운 아래를 서로 맞붙이고 정신없이 허리를 흔들며 하체를 비볐다. 후타쿠치의 손은 카마사키의 셔츠 안으로 들어가 등을 이리저리 매만지며 잔뜩 껴안고 있었다. 카마사키는 그의 얼굴에 쪽 쪽 입을 맞추고 목으로 입술을 내려 깊이 빨아들였다. 그 손은 허리를 타고 내려와 후타쿠치의 바지 안으로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리고 맨 엉덩이를 움켜쥐며 자신의 아래로 더 단단히 맞붙였다. 거센 허릿짓은 멎고 이제 둘은 천천히 허리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서로의 것을 뭉근하게 내리누르고 쓸었다.


"아, 아, 아..."

"아, 기분 좋아..."


후타쿠치는 자신의 다리 사이로 꽉 들어찬 카마사키의 몸을 느끼며 그를 더 꽉 안았다. 카마사키는 다른 한 손으로 후타쿠치의 얼굴을 가득 움켜쥐고 쓸었다. 얼굴을 지나 목 뒤를 주무르는 손길이 좋아서 그는 더 기분 좋은 신음을 흘렸다. 교복 바지 속에서 잔뜩 일어선 서로의 것을 문지르던 움직임이 잦아들고, 곧 둘 다 몸을 부르르 떨며 그대로 절정을 맞았다. 바지 안으로 들어와 있던 카마사키의 손이 빠져나가자 후타쿠치는 지난 몇 주 동안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는 것을 느끼며 바닥으로 스르르 주저앉았다. 카마사키는 곧 휴지를 찾아와 내밀었다. 그리고 조금 어색하게 각자의 처리가 끝나자 바로 후타쿠치의 팔을 잡아 일으켜 주었다. 후타쿠치는 잔뜩 나른해져 카마사키의 어깨에 고개를 푹 파묻었다. 이 한 번으로 둘 사이의 긴장감이나 선후배라는 벽이 무너져 내린 느낌이 들었다. 이게 시작이구나 싶었다. 


"감기 걸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자신의 티셔츠와 교복 와이셔츠를 주워다 입혀 주는 카마사키의 눈빛이 그 전처럼 계속 진지해서, 후타쿠치는 기분 좋은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웃으며 카마사키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키스해 보니까 좋죠."


카마사키도 웃었다. 그의 큰 손이 후타쿠치의 땀에 젖은 앞머리를 가지런히 넘겨주었다.


"어. 좋다."

"거봐."

"너 또 버릇없이 말하지?"

"하하하, 이제 선배라고 안 부를 건데요."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의 넥타이를 장난스럽게 잡아당기며 크게 웃었다. 카마사키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눈썹을 찡그렸다. 이 건방진 후배가 앞으로는 더 말을 안 듣겠지.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그들은 더이상 그냥 배구부 선후배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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