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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HQ!!

[OO스가] 애 아빠가 누구니


스가른 전력 60분, 주제 '의심'





애 아빠가 누구니

오메가버스AU



w.비누꽃









저 녀석이 이상하다.


사와무라 다이치의 신중한 눈이 스가와라 코우시를 샅샅이 훑었다. 평소처럼 웃고 있지만 지나치게 창백한 얼굴. 자신이 사주는 고기만두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방금 전. 무언가를 묻는 듯한 자신의 눈을 어색하게 피해 땅으로 처박히는 시선. 스가와라가 숨기려 해도 언제나 코끝에 느껴지던 잔향조차 없었다. 사와무라는 파악을 끝내고 앞서 걷던 스가와라의 팔을 붙잡았다.


"아 깜짝아!"

"너..."


사와무라는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연습이 끝난 저녁, 다른 부원들은 전부 앞서 걷고 있었다.


"뭐야, 왜."

"너 임신했지?"


스가와라의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소리가 사와무라의 귀에까지 들리는 듯했다. 걸음을 옮기던 자세 그대로 굳어진 스가와라는 간신히 사와무라를 외면하며 웃었다. 기계가 짓는 것 같은 웃음이었다.


"하,하,하! 말도 안되는 소릴 하고 있어!"

"내가 널 몰라? 속이려고 하지 마. 몸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래?"

"......"


멈춰 선 스가와라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가방끈을 잔뜩 붙든 채 발치만 내려다보는 스가와라의 모습이 너무 낯설어 사와무라는 당황한 채로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우, 울어? 미, 미안. 난 걱정돼서... 저기 스가..."


고개를 이리저리 젓는 대로 회색 머리칼이 힘없이 흔들렸다. 사와무라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스가와라의 어깨를 잡았다.


"다이치, 그냥 모른 척 해줘."

"어떻게 그래."


사와무라와 스가와라가 몸을 섞은 건 작년 겨울이 마지막이었다. 사와무라는 그런 가능성을 남기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순간 스가와라의 애 아빠가 차라리 자신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걱정과 질투심이 섞인 마음이었다.


"병원은?"

"어, 갔어..."


증상이 눈에 띌 정도면 벌써 꽤 되었을테니 병원을 간 것은 당연한데도, 사와무라는 그 말에 울컥 올라오는 질문을 그만 충동적으로 던져 버렸다. 


"대체 누구야? 난... 아니잖아."

"...흐어, 흐어엉... 흐어어엉....!!"


그 말을 들은 스가와라는 가방을 발치에 툭 떨어뜨리며 주저앉아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서럽게 엉엉 우는 소리에 앞서 가던 부원들이 전부 돌아보았다.


"스가와라 선배?"

"스가 선배?"

"스가?"


순식간에 스가와라를 둘러싼 부원들은 당황해 어쩌지도 못하고 서 있기만 했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 앞에 쪼그려 앉은 니시노야가 눈물을 닦아 주며 사와무라를 확 째려보았다.


"다이치 선배가 울렸잖아요?"

"아니, 그게..."


스가와라는 이번에도 고개만 절레절레 내저었다. 어느새 다같이 쪼그려 앉은 부원들은 서로 걱정스런 눈길을 주고받았다. 오메가라고 해도 한번도 우는 소리 한 적 없는 든든한 팀의 부주장이어서, 다들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해 있었다. 사와무라도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마른세수를 하며 그 주위를 빙빙 돌았다.


"어윽, 웁..."


스가와라는 순간 속이 뒤집어지는 걸 느끼며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고 앉은 카게야마의 무릎을 붙들었다. 갑자기 주저앉아 기운을 뺀 탓인지 어지럽고 토기가 올라왔다.


"어? 토한다 토한다!"

"등 두드려줘 빨리!"


스가와라의 등으로 날아가려는 아즈마네의 커다란 손을 간신히 막은 건 사와무라였다.


"아, 안돼..."

"뭐?"

"그렇게... 세게 치면... 아, 아무튼 안 돼."


카게야마의 무릎에 스가와라가 토하는 소리만이 들리는 길가에 어정쩡하게 쭈그린 채로, 부원들은 전부 얼음이 되어 있었다. 사와무라의 말에서 무언가를 느낀 니시노야가 큰 눈을 깜박였다. 스가와라가 고개를 들자 조심스럽게 어깨를 토닥이던 카게야마가 물과 손수건을 꺼내 주었다. 

입을 헹구는 모습을 지켜보던 니시노야는 이끌리듯이 다가가 스가와라의 목덜미에 고개를 박았다.


"안 나."


예민한 알파의 코를 씰룩이며 그는 고개를 들었다.


"냄새가 하나도 안 나. 이런 적은 없었는데."

"......"


입을 여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스가 선배, 설마, 임-신-으아아아아!"


모두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쳐간 생각을 고함친 타나카는 벌떡 일어나 주먹을 쥐었다.


"어떤 자식이야! 선배가 울고 있잖아! 쓰레기같은 놈!"

"역시 그 자식이 틀림없어! 웃는 얼굴이 어쩐지 재수없더라니!"


따라 일어난 니시노야도 내던진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며 소리질렀다. 그리고 둘은 순식간에 골목을 내달려 사라졌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엔노시타가 그 뒤를 따라 뛰어가고, 남겨진 사와무라와 아즈마네는 잠시 얼굴을 마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그랬군. 카게야마, 히나타. 스가와라 좀 집에 데려다줘!"


선배들까지 남김없이 사라진 자리에 멍하니 선 히나타는 카게야마를 돌아보았다.


"어, 어떡해?"

"......넌 선배들 따라가서 말려."

"왜, 왜?"


카게야마는 말없이 토사물로 범벅된 자신의 바지를 가리켰다. 히나타는 당황한 채로 스가와라를 부축했다. 일어선 스가와라는 힘겹게 몇 마디를 중얼거렸다.


"저기가 아니야..."


히나타의 큰 눈이 더 커졌다. 아직 더럽혀진 바지를 입고 있는 카게야마와 담벼락에 기댄 스가와라를 번갈아 본 그는 망설이나 싶더니 곧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늦은 연습을 마친 오이카와와 아오바죠사이 배구부원들은 슬슬 쑤셔오는 어깨며 손목을 풀며 교문을 나섰다. 


"라멘 먹고-"


그리고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오이카와는 멀리서 달려온 검은 그림자에 거세게 멱살을 쥐어잡혔다.


"으악!"

"너, 너! 세이죠 주장!"


오이카와가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빛나는 주홍빛 머리가 튀어나와 멱살을 잡은 남자를 뜯어말렸다.


"아이고, 타나카 선배! 안 돼요!"

"비켜, 히나타!"

"뭐야, 뭐야."


주장이 멱살을 잡혔을 때, 익숙하고 흥미로운 광경이라는 표정으로 느긋하게 관찰만 하던 아오바죠사이 부원들은 곧 카라스노 부원들인걸 알고는 놀라 달려왔다.


"아파... 뭐야 너네들?"


이와이즈미와 히나타가 타나카를 겨우 떼어내고, 오이카와는 얼얼한 목을 문지르며 어느새 몰려와 숨을 고르고 있는 카라스노 부원들을 둘러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냐고 막 물으려던 찰나, 진작부터 타나카와 함께 도착해 가만히 서 있던 니시노야가 불쑥 소리를 질렀다.


"오이카와 씨가, 우리 스가 선배 애 아빠잖아요?!"


영원같은 시간이 지나고, 킨다이치가 헉,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무거운 정적을 깨뜨렸다.


"...질러 버렸어."


사와무라가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자, 멍하니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아오바죠사이 3학년들이 정신을 차리고 오이카와에게 달려들었다.


"이 자식, 미쳤냐?"

"임신을 시켜?"

"경기 끝나고 없어진다 싶더니! 아무리 그래도 이럴 줄은 몰랐다!"

"아! 아, 잠깐! 아! 때리지 마! 내 말 좀 들어봐!"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교문 앞에서 다른 이들은 잠시 밤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선배들, 진정하세요. 오이카와 선배가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은데."


집에 가고 싶은 생각뿐인 쿠니미가 끼어들어 말리자 킨다이치도 동참해 오이카와를 떼어놓았다. 오이카와는 흐트러진 머리칼을 만지며 인상을 찡그렸다.


"왜 내 말은 안 들어줘!"

"카라스노에서 얘기 끝났으니까 여기까지 온 거 아냐?"


오이카와는 바닥에 나뒹구는 가방을 집어들어 먼지를 툭툭 털었다. 잠시 망설인 후에 그는 입을 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투였다.


"이 몸은 스가와라네 애 아빠가 아니라구. 물론 나도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지만, 나랑은 임신할 만큼은 안 했네요!"

"뭐? 야, 경기하는 팀은 건드리지 말자고 했지?"


다시 달려드려는 이와이즈미를 피해 킨다이치의 등 뒤로 숨으며 오이카와는 짜증난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나도 참을 만큼 참았었다고! 그리고 너네들은 왜 나도 아는 애아빠가 누군지를 몰라서 나한테 이러는거야?"


오이카와는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이 어리둥절한 카라스노 부원들의 얼굴을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짜증나 죽겠다는 얼굴로 낮게 중얼거렸다.


"아, 토비오. 정말 짜증나..."








어두운 길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카게야마는 재빨리 더러워진 교복 바지를 벗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옷을 비닐에 싸서 가방에 넣자마자 담벼락에 기대 한숨을 쉬던 스가와라가 카게야마에게 풀썩 안겼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스가와라의 등을 감싸며 카게야마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스가와라 선배, 어떡해요..."

"괜찮을 거야."

"앞으로 한동안 이렇게 아플텐데.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저 오늘 부모님께 말씀드릴게요."


스가와라가 작게 한숨을 쉬자 카게야마의 큰 손이 그의 손을 감싸 잡았다. 스가와라의 시선이 그 손을 따라 얼굴까지 올라갔다. 앳되기만 한 카게야마의 얼굴을 올려다보자 더 큰 한숨이 새어나왔다.


"아, 나 이렇게 어린 애랑... 해버린 걸로도 모자라서... 아..."


다시 고개를 파묻고 가슴팍에 머리를 아무렇게나 비비자 카게야마는 조심스럽게 스가와라의 머리를 품에서 떼어냈다.


"어리면 뭐 어때서요. 저도 알파인데요."


스가와라는 눈만 깜박이고 서 있었다. 그러다 곧 집에 가려는 듯 가방을 고쳐 메는 그를 카게야마가 순식간에 안아들었다.


"야, 야. 뭐해. 카게야마, 내려 줘."

"아픈데 집까지 어떻게 걸어가요."


카게야마는 아무렇지 않게 걸음을 옮겼다. 힘들어 보이지도 않는 그의 단단한 팔을 느끼며 스가와라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게. 너도 진짜 알파구나..."

"그러니까 우리 지금 애도 있잖아요."

"철없는 소리 한다..."


카게야마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가로등이 비추는 스가와라의 얼굴은 주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스가와라는 문득 입술에 와 닿는 카게야마의 따뜻한 입술을 느끼고 눈을 떴다.


"카게야마."

"네."

"왜 애 지우자고 한번도 말 안해?"

"놓치기 싫어서요. 스가와라 선배도 그렇고, 우, 우리 애도 그렇고..."


하하하, 스가와라는 그만 웃어버렸다. 그리고 카게야마의 목을 감싸 안았다.


"죄송합니다, 스가와라 선배. 제가 어린 애라서." 

"됐어, 내 잘못이야."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책임지고 싶어요. 안 될까요?"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목에 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간절한 눈을 마주했다. 더이상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없는 순간이었다.


"나, 너무 걱정돼."

"미안해요."

"너도 그렇지?"

"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양 볼을 움켜잡고 웃어 보였다. 어리둥절한 눈빛이 스가와라를 향했다.


"나는 곧 졸업하니까."

"......"

"기다릴게. 빨리 와."


카게야마는 기쁘게 웃었다. 내일이면 선배들에게 뼈도 추리지 못하도록 혼쭐이 나겠지만, 지금은 그런 건 상관없었다. 어리고 철없는 알파와 오메가는 지금부터 그 나름대로의 앞날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스가와라를 안고 걷는 카게야마의 걸음걸이가 나는 듯이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