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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쩜디

[미생][원인터X장그래] 미생 오메가버스 08


미생 오메가버스 08


원인터내셔널X장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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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위 쪼끔!




w.길티 플레져










이렇게 문 밖으로 나서기가 두려운 적이 있었나. 그래는 신발장에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아침은 왔다. 침대에 앉아 밤을 지새는 동안 차가워진 마음 덕에 더이상 눈물은 나지 않았다. 거울에 비치는 얼굴은 파리했다. 컨디션이 바닥을 기는 듯 몸이 무겁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요즘 맘 좀 편하게 산다 싶더니... 몸까지 약해졌나보네."


의미 없는 손동작으로 넥타이를 매만지며 멍하니 거울 속을 들여다보았다. 어차피 시작부터 밑바닥이었지만 석율의 마음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나니 더 밑바닥까지 치닫는 자신의 처지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와 석율을 보며 우성알파와 우성알파에게 몸바쳐 살아보려는 오메가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어차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너무나 태연했던 석율의 태도를 보면 정말로 비일비재한 일이었을 테니까. 그럼에도 그래는 자신이 발가벗겨져 사람들 앞에 내던져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박과장, 오차장, 장백기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이 어젯밤 입증된 것이었다.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고 싶었는데... 결국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사회의 어쩔 수 없는 오메가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핸드폰을 꺼내 혹시 몰라 다가올 히트싸이클의 예정일을 체크했다. 아직 일주일 정도가 남아있었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로 하룻밤 사이 몰골이 말이 아닌 것을 보니 주기도 불규칙해질 수 있을 거라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재킷 안주머니에 약을 챙겨넣고 구두를 신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 한치 앞도 알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출근은 해야 했다.






출근하자마자 동식은 그래의 안색을 걱정했다.


"장그래, 너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닙니다. 잠을 좀 못 잤어요."

"그래? 아무리 일이 많아도 잘 시간은 좀 챙겨,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야지."

"...대리님."


응? 동식은 컴퓨터 스크린을 들여다보며 대꾸했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데?"


천과장도 없고 오차장도 자리를 비운 영업3팀은 조용했다. 그래는 동식을 향해 의자를 돌려 앉았다.


"...대리님은 베타시잖아요. 제가 알파인지 오메가인지 구별... 못하시잖아요."


그래는 뒷말을 잇지 못했고, 동식은 말이 없었다. 그래가 던진 물음에 담긴 의미를 한번에 해석한 듯 했다. '구별도 안 되는데 베타들은 왜 알파들에 동조해서 차별해요?' 동식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최대한 좋게 들릴지 생각하는 듯 했다.




"구별 돼, 장그래씨." 

"네?"

"여긴 알파 오메가 당신들만의 세계가 아니니까. 우리 베타들 역시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자리를 최대한 좋은 곳으로 차지하고, 지키기 위해 아둥바둥하고 있잖아. 알파들이 당신같은 오메가들을 차별하면 우리는 당신들을 구별할 수밖에 없어."


그래는 눈을 내리깔았다. 고개를 주억거리고 의자를 다시 돌려앉았다. 등 뒤로 미안한 기색이 느껴지는 동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외근 나가야지. 나가서 일 마무리하고, 오차장님이 시키신 거 들어와서 끝내고 퇴근해. 나도 같이 나갔다가 바로 퇴근할거야."






지끈거리는 머리 때문에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동식과 탄 엘리베이터에는 15층에서 내려온 석율이 타 있었다.


"김대리님, 안녕하십니까. 장그래. 어디 가?"


나랑 얘기 좀 해, 하며 석율이 붙잡은 팔을 그래는 힘없이 뿌리쳤다.


"저 외근 나갑니다. 나중에... 나중에 얘기해요."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1층으로 향했다. 두 사람 뒤에 서서 동식은 눈알만 굴렸다.


"나중에 언제? 이렇게 나 계속 피할 것 같은데?"

"...그럼 왜요. 굳이 저 없어도 되잖아요, 한석율씨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조금 전 동식과의 대화로 이미 마음이 울렁거리던 그래였다. 지난 몇주간 석율과 자신이 연인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를 대하는 것이 조금 편해졌던 그래는 화나고 절망스러운 마음에 툭툭 쏘아붙였다. 


"제가 뭘요."

"......"


석율의 눈이 차가워졌다. 장그래, 나 지금 많이 참고 있는데.

낮아진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석율과 눈을 마주한 그래는 몸이 얼어붙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내가 어디까지 봐줘야 해? 그래는 양손으로 눈을 가리고 몸을 떨며 엘리베이터 구석으로 붙었다. 태생부터 다른 그와의 차이가 다시 한 번 실감났다. 동식은 놀라서 얼른 그래를 부축했다.


"...몇 시에 끝나든 끝나면 우리 집으로 와."


동식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그래에게 내뱉듯이 화를 낸 석율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빠르게 멀어졌다. 그래는 수치심을 느끼며 동식의 손에서 벗어났다. 











여전히 머리가 띵했다. 그래는 김밥 한 줄을 사들고 이미 해가 져 어두워진 사무실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왔다. 사무실에 불을 켜고 안 넘어가는 김밥을 꾸역꾸역 넘기며 타자를 쳤다. 사무실이 조금 덥다고 느끼며 재킷을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치던 그래는 문득 눈에 띈 칫솔을 집어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입에서 상쾌한 치약 냄새가 풍기자 조금 머리가 맑아진 그래는 손을 씻고 화장실에서 나오다 백기를 마주쳤다. 영업1팀 사원들을 제외하고는 14층 사무실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내심 놀랐지만 인사를 건넬 기력도 없었다. 사실, 만날 때마다 안좋은 모습을 보인 것도 그렇고, 마주칠 때마다 자신을 언짢아하는 백기에게 반갑게 인사할 용기도 없었다. 


"...장그래씨."


허리만 꾸벅 굽혀 보이고 자신을 지나치려는 그래의 팔목을 이번에는 백기가 턱 붙잡았다. 영이에게 거절당한 것이 장그래의 잘못으로 인한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 분노를 풀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며칠째 이어진 폭음으로 백기의 얼굴은 눈에 띄게 초췌해져 있었다. 


"장백기씨. 죄송하지만 저 지금은 이야기할 기분이 아니에요. 놔주세요."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리는 그래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백기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치솟는 것을 느꼈다.


"이야기할 기분이 아니라구요?"

"네."

"지금 저 무시합니까?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장그래씨한테 항상 다 알려줬는데, 그렇게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그럴 기분이 아니라구요?"

"......장백기씨."

"제가 베푼 호의는 호의도 아니었나보네요? 한석율씨랑 어울리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닌데요. 붙잡은 손목이 이상하게 뜨겁다고 느끼며 백기는 퇴근 준비로 분주한 영업1팀 쪽을 돌아보았다. 순식간에 목소리를 낮추며 그래를 끌고 회의실로 들어섰다.


"저기, 이게 무슨..."


그래가 당황하는 것을 무시하며 회의실의 블라인드를 전부 내렸다. 


"안영이씨가 잘해주고 한석율씨랑 뒹구니까 내가 우스워보이죠."

"그런 거 아니..."


그래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테이블에 몸을 기댔다.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그 사람들이 진심일 것 같아요? 내가 그만큼 눈치를 줬는데도 몰라요? 한석율씨가 우리 회사에서 손 안 댄 오메가를 찾는게 더 빠를겁니다. 안영이씨는-"

"......"

"...됐어요. 장그래씨 어디가 그렇게 잘나서 다들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백기의 말도 중간에 끊어졌다. 그래를 노려보며 말을 잇던 그에게 문득 눈에 들어온 그래의 입술이 어느 때보다 더 통통하고 유혹적으로 보였다. 자신의 앞에서 울었을 때, 당황했을 때마다 눈에 띄게 빨개지던 것이 생각났다. 


안영이가 곁에 두길 원하는, 한석율이 매일같이 즐겼을 그래의 입술에 홀리듯 다가가 거칠게 입을 맞췄다. 미약하게 반항하는 것조차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부러 양 손목을 세게 틀어쥐었다. 건조하게 부르텄던 그래의 입술이 터지고, 찝찔한 피맛이 느껴지자 백기는 입술을 뗐다. 



"별 거 없잖아."



중얼거린 말에도 그래는 수치심이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머릿속에서 불꽃이 팍 팍 터지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어지러움이 심해지고, 발 끝부터 애벌레가 기어올라오는 것처럼 몸이 간질거렸다. 항상 약을 잘 챙겨먹어 생소한 느낌이었지만 히트 사이클의 전조였다. 사무실 의자에 걸쳐놓은 재킷 안주머니 속의 약을 떠올리며 그래는 잡힌 팔목을 빼내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백기씨, 놔주세요. 놔주세요!"


말로는 별 거 없다고 중얼거렸지만 치약향과 섞여 입 속 가득히 들어찬 그래의 향기에 반쯤 넋이 나갔던 백기는 그래의 비명과 같은 외침에 정신이 들었다.


"...아니, 누가 잡아먹어요?"



놔주기 싫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는 약을 먹어야 한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과연 그 말을 꺼낼 수 있을만큼 백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전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박과장과의 일에서 자신을 도와줬고 아무 짓도 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방금 자신에게 입맞췄다. 그리고... 석율의 얼굴이 떠올라 더더욱 알파를 믿을 수 없었다. 몸이 땅 속으로 꺼지는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숨소리가 거세지고, 온몸이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그래는 절망했다. 힘이 빠진 몸으로 자신에게 기대오는 그래에 백기는 눈에 띄게 움찔했다.


"장, 장그래씨?"


자신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그래의 머리를 조심스레 잡아들어 얼굴을 확인한 백기는 숨이 멎는 것 같은 유혹을 느꼈다. 청초한 얼굴이 붉게 물든 채로, 촉촉한 눈동자에 처음 보는 풀어진 눈빛으로 백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평소보다 배는 짙은 향기의 페로몬이 콧속으로 가득 밀려 들어왔다. 안경 너머로 백기의 눈이 일렁였다. 히트 싸이클의 시작이었다.














회의실 책상 위에 정신없이 뒤엉킨 두 사람의 몸이 함께 들썩였다. 테이블에 올라앉아 다 풀어진 차림새로 백기를 받아들이는 그래의 양 팔은 그의 목에 감겨있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맨살을 정신없이 매만지며 입맞추는 입술을 느끼며 그래의 허리가 뒤로 꺾였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어진 두 사람은 지독하게 본능에 따라 몸을 섞었다. 거칠게 밀어붙여진 그래의 몸이 쿵, 하며 차가운 유리 위로 눕혀지고, 하얀 맨 다리 한쪽을 들어 어깨에 걸친 백기는 인상을 쓰며 쾅, 쾅 허리를 밀어붙였다. 그래의 벌어진 입으로 가감 없는 신음이 터지자 백기는 잡아먹듯이 입맞추며 속도를 높였다.


장그래, 당신한테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알아?

윽, 아... 


그래의 목에 입술을 파묻고 강하게 코를 파고드는 냄새를 모조리 입속으로 넣으려는 것처럼 거칠게 씹었다. 그래를 마주칠 때마다 부정해온 유혹이 히트 싸이클을 만나 주체할 수 없는 욕구로 터져나왔다. 정신 없는 와중에 백기의 잇새로 새어난, 너무나 많이 들어본 그 질문에 그래는 대답하지도 못하고 신음했다.


풀 냄새...

아윽...


백기가 쾅 쾅 찔러넣을 때마다 이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쾌락이 그래를 덮쳤다. 눈앞에서 별이 번쩍이고, 아찔함에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더, 더요 백기씨...

백기의 입술이 지나간 자리마다 열이 몰리듯 키스마스가 새겨졌다. 몇 번 더 쳐올린 뒤 백기는 그래의 안에 그대로 파정했다. 사정의 여운이 두 사람을 감싸고, 몸이 축 늘어졌다. 정신이 들었다.






백기는 큰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몇 번이고 마른세수를 한 뒤 그래에게서 등을 돌린 채로 중얼거렸다. 옷은 다 정리해 입고 안경도 다시 쓴 채였다.


"이 삭막한 사무실에서... 장그래씨가 풍기는 풀내가 얼마나 참기 힘들게 유혹적인지 알아요?"


나한테서 나는 게 풀 냄새였구나. 그래는 더 이상 울지도 않았다. 조용히, 초연한 표정으로 유리 위에 누워 백기의 말을 듣던 그는 자신의 다리 사이로 흐르는 것을 바라보며 한숨쉬었다.


"...장백기씨. 저랑 같이 약국 좀 가 줘요."

"...왜요? 다쳤어요?"


황급히 몸을 돌려 그래를 확인하던 백기가 같은 것을 보고 얼굴을 확 붉혔다.


"그게 아니라. 알파 보호자 없이는 그 약 못 사거든요."

"에?"

"왜... 안에다 했어요."


그래가 말한 '약'이 사후피임약을 뜻하는 것을 알아채고 백기는 탄식했다. 그래는 백기를 탓하면서도 정신을 놓아버리고 하필 히트사이클 때에 큰 실수를 저지른 자신을 마음속으로 책망했다. 백기는 미안해요, 알다시피... 하고 중얼거리며 둘 다 이성을 잃고 짐승처럼 서로를 탐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다가가 몸을 일으키고, 티슈를 뽑아 아래를 수습하고 옷을 입혔다. 후회하기도 싫을 만큼 그래와의 정사는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셔츠 단추를 채워주며 본, 잘게 떠는 어깨를 선뜻 안아줄 수가 없었다.




둘 다 땀과 정액을 잔뜩 흘린 몸을 씻지도 못한 채 급하게 약국에 들러 약을 받았다. 그래는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약을 먹지도 못하고 받아든 채로 도망치듯 약국 문을 빠져나왔다. 서둘러 뒤따라나온 백기가 그래를 붙잡아 차에 다시 태웠다. 


"약, 꼭 챙겨먹어요."


그래의 집 앞에 차를 세우고 백기는 그 어느 날처럼 앞만 바라보며 말을 던졌다.


"오늘 일은... 정말 미안하지만 실수였습니다. 서로 잊죠."

"...네. 데려다줘서 고맙습니다."

"오늘 몸을 섞었다고 해서 장그래씨가 좋아진 거 아닙니다. 오해는 하지 말아줘요."

"장백기씨도, 장백기씨도 절 보고 못 참았으면서 경멸하듯이... 더러운 것 보듯이 말하지 마세요."


자포자기한 사람처럼 중얼거리던 그래는 문득 울컥 치미는 서러운 마음에 울먹이며 쏘아붙였다.


"그게 아니라..."

"내릴게요."




평소와 다르게 눈에 띄게 당황한 백기를 두고 차에서 내린 그래는 문을 쾅 닫았다. 허리도 아프고 속도 쓰렸다. 빨리 들어가서 약을 먹고 눕고 싶었다. 머뭇거리던 백기가 차를 출발시키고, 잠시 차가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그래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가로등 밑에 주차된 익숙한 벤츠를 발견했다.



"장그래."



회색 정장에 화려한 넥타이를 맨, 역시 익숙한 남자가 차에서 내려 그래의 이름을 불렀다. 불쾌한 냄새를 맡는 듯 코를 씰룩이며 다가오는 석율에게서 느껴지는 분노로 주변의 공기가 차가워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휘적휘적 걸어온 그는 그래의 손에 들린 약을 잡아챘다. 오메가용 사후피임약, 직사각형의 케이스에 적힌 약 이름을 확인한 그는 손 안에서 종이케이스를 구겨잡으며 그래를 노려보았다.


"장백기랑 뭐했니,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