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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쩜디

[미생][원인터X장그래] 미생 오메가버스 07


미생 오메가버스 07


원인터내셔널X장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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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길티 플레져













누군가와 한 침대에서 아침을 맞는 건 처음이었다. 창으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눈을 뜬 그래는 마음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고,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이 벅차오르고, 두근거리고, 자꾸 웃음이 났다. 눈앞에 앉아있는 벗은 등이 참 다정해 보였다. 이 마음이 뭘까.


"일어났어?"


자신을 돌아보며 짓는 저 눈웃음이 너무 좋다. 입이 아무런 부자연스러움 없이 예쁜 삼각형으로 벌어진다. 평소와 다르게 이마를 덮은 앞머리 아래로 휘어지는 눈을 마주하며, 그래는 눈도 다 뜨지 못한 채로 충동적으로 몸을 일으켜 석율에게 입맞췄다. 잠시 놀라 굳었던 석율이 곧 맞닿은 입술 사이로 푸스스, 웃음을 흘리며 응대한다. 넌 너한테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모르지... 허리를 감싸고 천천히 다시 그래를 침대 위에 눕혔다. 다른 쪽 손은 서로 깍지를 낀 채 시트 위로 떨어졌다. 그래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래그래, 우리 그래, 장그래~"


출근하는 아침, 회사 로비에서 마주친 석율은 다시 그래를 처음 만났을 때 처럼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 지난 며칠간 눈에 띄게 다정하고 짙은 눈빛을 했던 남자를 대했던 터라 그래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편안하게 마주 웃었다.


"석율씨 늦잠 잤다면서요."

"으응. 근데 우리 장그래 보고싶어서 엑셀 막 밟았어."


코를 찡긋찡긋하며 그래의 어깨를 감싼 석율은 목소리도 낮추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둘을 힐끔거렸다. 그래는 몸을 휙 돌려 석율의 팔에서 벗어났다.


"왜그래?"

"...사람들이 봐요."

"보라고 그러는 건데."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를 표정으로 석율은 웃으며 그래를 다시 끌어당겼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얼굴이 빨개진 그래는 엘리베이터를 타서도 자신들을 쳐다보는 시선에 얼굴이 따끔거렸다.








시간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갔다. 그래는 몰랐지만 석율과의 소문은 회사내에 빠르게 퍼져나갔고, 박과장은 그래 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천과장이 출장이 길어져 돌아오지 않는 동안 영업3팀은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해나갔다. 밤은 매일같이 석율의 집에서 함께 보내곤 했다. 석율과 하는 섹스에 점점 익숙해졌고, 아침에 함께 눈뜨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래가 정리한 보고서를 검토하던 오차장은 지나가는 말처럼 그래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눈에 띄는 행동 하지 마라.' 그래는 조금 의아했고 억울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제 자신을 증명할 수 있죠?' '그런 건 바라지 마.'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니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석율과 만난 이후로 수군대거나 자신 앞에서 대놓고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본질적인 그의 처지는 변하지 않았다. 다른 계약직 직원들은 전부 사무직이었고, 오메가가 영업팀 사원으로 뽑힌 선례도 없어서 어떻게 앞으로를 대비해야 할 지를 알 수가 없었다. 페이퍼타올로 얼굴을 닦고 고개를 들자 뒤에 서있는 백기가 보였다.



"아...안녕하세요."

"얼굴 좋아보이네요, 장그래씨."

"그래요? 고맙습니다."



물기가 촉촉이 남은 얼굴로 씨익 미소지었다. 요즘의 행복 넘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짜 웃음이었다. 안경 너머로 백기의 눈빛이 한층 차가워졌다.



"왜 행복해합니까?"

"네?"

"한석율씨가 이렇게 대놓고 나 이친구랑 잤어요, 하고 다니는 건 처음 보는데. 설마 정말로 둘이 연인이라도 돼요?"



평소 조금이라도 냉정을 유지했던 것과 다르게, 백기는 지금 다다다 쏘아붙이고 있었다. 그래는 도무지 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음... 보다뇨? 연인이요?"

"...아니요. 됐습니다."



장그래씨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네요. 잇새로 짓씹듯이 나온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서 있는 그래를 내려다보던 백기는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사로잡혔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백기가 반쯤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이 영이를 붙잡았다. 가볍게 인사만을 하고 지나치던 그들이 거의 보름만에 주고받는 대화였다. 


"...대체 어떻게 날 두고 장그래씨가 배우자로 더 좋다고 할 수 있죠?"

"장백기씨."

"영이씨가 너무... 너무 차이에 둔감한 것 아닙니까? 아니면 반차별주의 사회운동이라도 했어요?"


원인터에 온 것도 그래서예요? 뒷말은 불확신을 안고 공중으로 던져졌다.

영이는 들고 있던 커피 쟁반을 테이블에 올려 놓고 한숨을 쉬었다. 


"...내가 원인터에 입사해서 일하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차별없는 세상을 원하는 평등주의자이기 때문은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했다면 어울리지 않게 순진하네요."

"그럼,"

"당신이 아는 것처럼 난 모든 걸 다 가진 우성알파고, 당신과 장그래씨를 차별하지 않는 이유는 굳이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죠. 미안하지만 나에겐 별다른 차이가 없거든요."



물론 장그래씨 쪽이 나에게 훨씬 매력있는 대상인 건 당연하지만... 영이가 중얼거린 말이 백기의 자존심을 난도질했다.



"그리고, 장백기씨가 열등감을 느끼는 대상은, 당신이 인정하긴 싫지만 태생부터 당신보다 우위에 있는 우성알파 아닌가요? 그 마음을 나를 이용해서 해소한다면 그 다음엔 어떡할건가요."


영이를 말로도 이길 수가 없다. 어려운 여자 정도가 아니라 상대할 수 없는 여자다. 백기는 영이와 자신의 차이를 그 어느 때보다도 뼈저리게 실감했다.

내가 바로 그 우성알파라구요. 내 옆에서 세상 끝날때까지 나를 보며 열등감만 느끼려구요? 극복할 수 없는 차이에 집착하지 말죠.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백기는 영이의 말을 듣고 서 있었다. 말을 마친 영이는 쟁반을 받쳐들고 몸을 돌려 탕비실에서 걸어나갔다. 

탕. 문이 닫히고 백기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업무에 집중이 되지 않아서 그래는 석율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끝나고 같이 가요? 아니, 오늘 선약이 있어. 핸드폰을 뒤집어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장백기씨가 한 말은 무슨 뜻이지... 우리가 그럼 연인이 아니면 뭔데? 다르게 생각할 이유가 있나? ...내가 오메가라서? 그럼 석율씨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지. 생각이 끝없이 자라났다. 


야근을 마치고 발 가는 대로 걷다 보니 그랜드 레지던스호텔 앞이었다. 오늘이 가기 전에 꼭 물어보고 싶어서, 그래는 문을 마주보고 벽에 기대 섰다. 등으로 차가운 벽이 느껴졌다.


"-!"


갑자기 덜컹 열리는 문에 부딪치는 줄 알고 그래는 화들짝 놀라 옆으로 비켜 섰다. 석율의 집에서 나온 사람은 석율이 아니고 여자였다.


"...신다인씨?"

"장그래씨."


철강팀 오메가 직원인 신다인은 멈칫하며 그래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더니 곧 얼굴을 붉히며 엘리베이터로 달려가 버렸다. 그래는 무의식적으로 닫히는 문을 붙잡았다. 신발장에 구두를 벗으며 미친 듯이 뛰는 가슴을 애써 억눌렀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창문을 바라보고 서 있는 석율의 뒷모습이었다. 바지만 입고 선 채로 담배를 피우고 있던 그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그래야?"


석율씨,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그래의 손에 꽉 쥐어져 있던 가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언뜻 보이는 침실은 침구가 잔뜩 흐트러져 있었고, 석율은 누가 봐도 조금 전 정사를 끝낸 모습이었다. 땀에 젖어 이마에 흩어진 머리를 쓸어올리며 석율은 그래에게 다가섰다.


"어떻게 왔어."


응? 그래야. 작은 웃음을 지으며 그래의 볼을 콕콕 찌르는 행동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이게 지금 무슨... 석율씨 신다인씨랑...?"


잠시 눈을 깜박깜박 하며 그래를 보던 석율은 허리를 숙여 테이블 위의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우리 그래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내가 깜박했네.


"신다인씨는 우리 호텔로 옮겨서 일하고 싶어해. 난 그 부탁을 들어 준 거고."


우리 호텔...? 그래는 입 안에서 말을 굴렸다. 


"그래. 그랜드호텔은 우리 아버지 거고. 그 정도 부탁쯤 들어주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야."

"...석율씨,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말을 꺼내기가 망설여졌다. 혼란스러움에 시선이 초점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다녔다.


"그러니까... 신다인씨랑 자는 댓가로 줄을 대준 거네요? 그러면 저는, 저는 뭐예요?"

"응?"

"한석율씨한테 저는 뭐냐구요. 우리가 무슨 사이냐구요."


눈물이 팍 터졌다. 눈을 크게 뜨고 선 채로 눈물만 줄줄 흘리는 그래를 잠시 바라보던 석율은 곧 양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석율씨 저 좋아한 거 아니었어요?"

"뭐?"


여전히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석율의 얼굴에 화가 치밀어올랐다. 아침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끼며 그래는 석율의 손을 뿌리쳤다.


"한석율씨 제가 예쁘다면서요. 그리고 저랑 매일같이 잤잖아요. 저 좋아하는거라고 생각했어요."

"좋지. 예쁘고 볼때마다 불끈불끈하고. 나 장그래 좋아해."

"제 말은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게 아니라, 그럼 저랑 석율씨랑 애인이 아니냐구요. 신다인씨가 부탁하면 저랑은 상관없이 그렇게 다른 사람이랑 잘 수 있는거예요?


"...그래야. 난 애인 안 만들어."

"......"

"정말로 네가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네. 안그래도 그럴까봐 내가 먼저 말해주려고는 했는데."

"......"

"내가 말 했잖아. 나랑 자면 회사에서 어떤 알파도 널 못 건드릴 거라고. 지금 아무도 너한테 감히 해 끼치지 못하잖아."

"......그럼 신다인씨랑 저랑 똑같다는 소리네요. 저도 절 지켜달라고 절 한석율씨한테 판 거네요."


후, 그래야. 석율은 바지 뒷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대 더 꺼내 물었다.


"전, 전 석율씨가 절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닌 줄 알았으면 그날 여기 오지 않았을..."

"그래, 자고 싶다는 뜻이었어. 처음 볼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 물론 좋으니까 계속 만나는 거야. 회사에 티 내고 다닌 것도, 네가 원하는대로 널 지켜주려는 것도 있었지만 내가 선수쳤으니까 넘보지 말라는 경고인게 맞아. 어떤 쪽이든 너한테는 이득이지."

"......"

"그게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래 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겠네."


근데 그래야, 얼마나 순진하면 너와 네가 보통의 연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 말이 비수가 되어 마음을 찌르고 들어왔다. 그래는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울었다. 분하고 속상해서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네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거야. 그냥 가볍게 받아들여. 좋다니까? 하지만 세상 누가 너랑 날 애인사이로 보겠어. 그정돈 짐작 했어야지."




두 번째 꽁초를 비벼 끄고 어깨를 끌어당겨 토닥이려는 석율을 거세게 뿌리치고 그래는 문을 열고 달려나갔다. 그래가 남긴 울음소리가 여운처럼 석율의 귀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