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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쩜디

[미생][원인터X장그래] 미생 오메가버스 09



미생 오메가버스 09


원인터내셔널X장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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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길티 플레져














"...제가 장백기씨랑 뭐를 했으면 어쩌시게요."


최대한 눈을 치뜨며, 말끝을 비비 꼬며 말을 마치자마자 석율은 상황 파악을 마치고 그래를 차 안으로 집어던지듯 태웠다. 그래가 문을 열려고 할 때마다 석율은 밖에서 문을 걷어찼다. 그래가 포기하는 기색이 보이자 운전석에 올라탄 석율은 벨트 매, 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씹어뱉었다. 


"내릴래요."


석율은 말없이 그래를 한 번 노려보았다. 레지던스까지 엑셀을 밟는 동안 기에 눌린 그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시트에 처박혀 앉아있었다.







석율은 손 안에 들어찬 약 케이스를 구겼다 폈다를 반복했다.


"너 히트싸이클이었지. 장백기랑 뒹구니까 좋았어?"

"척 보면 척이네요 석율씨는. 대단하세요. 저한테 다른 할 말은 없어요?"

"얘 봐라. 내가 우리집으로 오라고 했는데. 그새를 못 참고 딴 놈이랑 뒹굴어?"


석율이 드레스룸에서 정장 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푸는 동안 그래는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손톱만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무슨 상관이에요. 한석율씨한테 보고 배운 건데요."

"나 지금 진짜 열받거든? 너 말 예쁘게 안 할래?"

"내가 길에 나가서 누구랑 뒹굴든 상관 마세요. 애인도 아닌데 왜 따져요?"


석율은 셔츠에 바지 차림으로 그래 앞으로 휘적휘적 걸어왔다. 담배 냄새와 향수 냄새가 묻어나는 손이 그래의 볼을 톡톡 건드렸다.


"나는 이쁜 니가 내 옆에만 있으면 좋겠거든? 아 그래, 네가 말하는 거랑은 다르겠지만 나도 너 좋아. 그러니까 그냥 받아들이고 나랑만 만나. 그러면 둘 다 좋잖아."

"싫어요."

"야,"

"진지하게 생각할 줄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요. 내가 석율씨만 만나면 석율씨는 다른 오메가들 안 만날거예요?"

"너랑 나랑 같아?"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한쪽은 무덤덤해서, 한쪽은 말문이 막혀서 서로를 무표정으로 마주했다.


"......그래요. 내가 생각이 짧았어요. 이제 기대 안 하니까 그거 줘요."

"그래야, 거짓말 하지 마. 너 나 좋아하잖아. 진심으로."

"...한석율씨가 진심이 뭔지는 알아요?"

"......"


그래는 퉁퉁 부은 입술을 하고는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였다. 석율과의 이야기보다는 약이 더 급했다. 히트사이클은 한 차례의 섹스로 인해 지나갔지만, 아까는 옅어져 잘 느껴지지도 않았던 향기가 몸을 들썩일 때마다 올라왔다. 석율의 코가 씰룩였다.


"다른 말 하지 말고 그거 달라구요!"

"...장그래. 아까는 잠깐 냄새가 지워져서 내가, 화만 났었거든."


근데 지금은 못 참겠거든. 

석율은 그대로 치고 들어가 그래의 입술을 물었다. 혀로 삽입이라도 하듯 깊게 쑤시며 입안을 헤집었다. 뒷목을 틀어잡지 않은 손이 익숙하게 셔츠 단추를 풀었다.

백기가 잘 못 해줬니? 걔랑 한 번 한 걸로는 부족하다는데. 네 몸이.







"하지마, 하지말라고!"

"아, 가만히 좀 있어."


그래는 석율의 양 팔 아래 눕혀진 채로 몸부림을 쳤다. 양 다리가 석율의 다리에 단단하게 압박되어 있었다. 볼과 목을 따라 내려오는 입술을 애써 피하던 그래는 이 상황이 참을 수 없이 짜증나고 싫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그래의 셔츠를 팔 뒤로 완전히 벗겨내려는 틈을 타 압박에서 벗어난 손이 석율의 뺨을 올려쳤다.


"아,"

"비, 비켜요. 집에 갈 거니까."


석율은 잠시 눈을 감고 화를 참았다. 다른 놈과 피임할 정신도 없이 히트싸이클을 보내고 나타난 것도 모자라, 말도 듣지 않는 오메가에게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었다. 그래의 손에는 힘이 실려있지 않았지만 예쁘고 순진한 장그래가 자꾸만 싫은 소리를 하고 보채는 것도 싫었다. 그래는 이미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평소 참 예쁘게 휘어진다고 생각했던 촉촉한 눈이 다시 뜨이자 그 안에 담긴 것은 언제나 그를 무력하게 만드는 우성알파의 분노였다.


"곱게 안아줄 때 가만히 있어야지."


석율은 눈을 피하는 그래의 시선을 따라가 끝까지 눈을 맞췄다. 몸부림이 수그러들고, 석율의 몸 아래 웅크린 채 작게 떨었다. 석율은 천천히, 강하게 자신의 페로몬을 내보냈다. 그래의 몸도 천천히 풀어졌다. 애초에 결정된 승패였다.











"나 자신이 싫어요. 한석율씨도 싫고요."

"......그게 다 니가 너무 깊게 어렵게 생각해서 그렇다니까..."


그래와 등을 맞대고 누운 채로 석율은 담배를 태웠다. 맨 등을 이불로 덮을 기운도 없이 늘어진 그래는 눈꼬리를 타고 시트를 축축하게 적시는 눈물을 내버려두며 한숨을 쉬었다. 오늘 하루 지극히 본능대로 두 사람과 몸을 섞었다. 자신이 오메가로 태어났음을 몸으로 실감하는 날이었다. 백기와 회사 회의실의 차가운 유리에서, 석율이 다른 오메가들과 뒹굴었을 침대에서 그의 밑에 깔려, 태어난 본능대로 충실하게 반응했던 순간이 생생하면서도 어쩐지 아득하게 느껴졌다. 

두 번의 격한 정사를 마치고 나서야 석율은 그래의 손에 약을 쥐어주었다. 협탁 위에 굴러다니는 빈 약 케이스와 콘돔 껍질들은 석율의 손에 구겨져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코가 참을 수 없이 시큰거려서 그래는 석율이 볼 수 없는 틈을 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조용한 울음 뒤에 따라오는 눈물을 죽 빼내고 생각나는 대로 말을 뱉었다.


"진짜 오메가같은 거랑은 애인 안 해요?"

"...야."

"왜요. 연애하면 호텔 안 물려준대요? 결혼하자고 하는것도 아닌데 왜요."

"너 되게 말 잘한다... 몰랐는데."

"...알파들은 다 날 보면 못 잡아먹어 안달하면서, 꼭 나같은 건 진지하게 만날 꺼리도 못 되는 인간 취급하잖아요."

"너 약 잘 삼켰어? 타이레놀도 줄까?"


담배를 비벼 끈 석율이 몸을 돌려 그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래는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또 쉬었다.


"지금 안 들어주면, 한석율씨는 이제 내 진심 다시는 못 들어요..."

"그래야."

"좋아해요. 살면서 처음으로요. 그러니까 나 잠깐만이라도 좋으니까 진짜로 좋아해주면 안돼요?"


등 뒤에서 숨결과 함께 담배 냄새가 실려왔다. 마음이 담뱃불로 지져져 다 타버린 것처럼 씁쓸했다.


"한 번 마음을 터놔버려서... 너무 좋고 기대고 싶어서... 줘버린 걸 다시 찾아가는 법을 모르겠어요. 아니면 차라리 버려버리던가요... 왜 놔주지도 않냐구요."


마지막 말은 울음과 섞여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버렸다. 잘 들리지도 않는 울먹임을 귀에 담으며 석율은 그저 그래의 뒷목만 쓰다듬었다. 


"...제가 진심 좀 달라고 한 게, 어려울 것 없는 한석율씨가 들어주지도 않을 만큼 말도 안 되는 이야긴가봐요."


그래는 몸에 남은 힘을 다 끌어모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통 축축한 몸이 참을 수 없이 찝찝했고 허리는 시큰거렸다. 움직임을 따라 허리에 팔을 감아오는 석율의 팔을 밀어내며 욕실로 발을 옮겼다. 콧물을 훌쩍대는 소리가 욕실을 울렸다.
















탕비실 문을 열자마자 그래와 딱 마주친 백기는 놀란 표정을 숨기는 데 실패하고 시선만 이리저리 피했다. 어젯밤 침대에 누워서도 온통 회의실에서의 정사만 떠올라 한잠도 이루질 못했다. 장그래가 몸을 기대온 건 맞지만 먼저 충동적으로 키스한 건 자신이었다. 바람 한 점 안 들어오는 사무실을 벗어나 풀밭에서 뒹군 것처럼 풀내를 풍기는 몸을 끊임없이 탐하고 안았다. 회사에서건 어디서건 오메가를 없는 듯 무시하며 철저하게 냉철한 모습을 지켜왔던 자신의 신념이 무너졌던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신념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그래와의 섹스가 좋았다는 거였다. 차에서 상처 받은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던지고 내리던 뒷모습도 떠올랐다. 

백기는 그래의 안색을 슬쩍 살피며 겨우겨우 무덤덤한 척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네..."


한숨을 푹 쉬며 다시 고개를 돌리는 동그란 뒷통수가 애처로워 보였다. 백기는 자신도 모르게 그래의 등 뒤에서 불쑥 물었다.


"몸은 괜찮아요?"

"..."


돌아보지도 않고 고개만 끄덕끄덕 하는 통에 백기의 얼굴에도 그늘이 졌다. 등 뒤에서 머뭇머뭇 하는 새 탕비실 문이 다시 열렸다. 무슨 얘기를 하며 함께 들어서던 영이와 석율이 두 사람을 보고 말을 멈췄다. 문이 닫힌 좁은 공간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깬 것은 석율이었다. 눈웃음을 치며 백기를 지나 그래에게 다가가 그대로 양 볼을 잡고 입술을 부딪혔다. 같은 공간의 모두가 보라는 듯 의도적으로 과하게 퍼붓는 입맞춤이었다. 입술을 떼며 석율은 잔뜩 얼굴이 벌개져서 씩씩거리는 그래의 볼을 그대로 붙든 채로 씨익 웃었다.


"우리 장그래, 왜 그래? 내 꺼한테 뽀뽀도 못해?"


영이와 백기는 둘의 뒤에서 시선을 교환했다. 영이는 한쪽 눈썹만 치켜올리며 팔짱을 낀 채로 어깨만 으쓱했고, 백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회사에서 뭐 하시는 겁니까."

"우리 백기씨는 회사에서 뭘 했을까."


잠시 말문이 막혀 서 있던 백기는 파쇄하려고 들고 있던 종이뭉치를 그대로 든 채 탕비실을 나갔다. 손등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던 그래도 석율을 밀쳐내고 뛰쳐나갔다. 영이는 고개를 돌려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했다.


"야, 고귀한 쓰레기."

"...야, 여기 회사야."

"시끄러워. 니들이야말로 여기 회산데 회사에서 뭐 하니?"

"나는 키스만 했는데 글쎄 장그래랑 장백기는 섹스도 했더라고."


영이는 긴 머리를 쓸어넘기며 석율을 발로 툭툭 밀어내고 정수기에서 찬물을 가득 받았다. 아무도 없는 자리라 해도 회사에서 두 사람이 말을 놓으며 아는 티를 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영이와 석율은 대부분이 우성알파로 이루어진 사회 고위층들의 각종 모임에서 지겹게 마주친 사이였다.


"네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장백기씨는 이미 완벽한 자기 모습이 깨진게 못참게 싫을걸."

"백기씨한테만 하는 말 아닌데."


안영이. 너도. 내가 내 거 건드리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알지.

영이를 내려다보며 속삭인 석율은 콧노래를 부르며 탕비실을 빠져나갔다. 영이는 한 컵 가득 따른 냉수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는 옥상에서 얼굴에 오른 열을 식혔다. 그는 자신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예쁜 인형처럼 취급했다. 정말 자신을 아낀다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런 짓은 하지 않았을 거다. 다시 실감하는 그와의 마음의 온도 차이에 서글펐다. 그의 스킨십은 다정했지만 공허했다. 손길이 따뜻해도 마음이 비어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자꾸만 장백기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항상 잘 해주는 영이씨를 당황하게 한 것도 다 수치스러웠다. 백기의 품에서 히트싸이클을 시작했던 것도, 더 해달라고 매달렸던 것도 다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요즘처럼 자기 자신이 싫고 하찮아보였던 적이 없었다.


큼, 큼. 뒤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 그래는 재빠르게 난간을 향했던 몸을 돌렸다. 늘씬한 몸매에 어울리는 세로줄이 들어간 바지 정장을 위아래로 차려입은 영이는 언제나처럼 눈을 크게 뜨고 웃고 있었다.


"그래씨. 요즘 한석율씨땜에, 회사 사람들 땜에 힘들죠?"


눈이 마주치자마자 본론으로 치고 들어오는 영이에 잠시 그래는 얼떨떨해했다.


"에?"

"제가 그래씨를 지켜보면서 해주고 싶었던 말은, 하고 싶은 대로 밀어붙여 보라는 거예요."

"영이씨..."


찬바람에 코를 훌쩍이는 그래를 보는 영이의 표정은 변함 없이 친절했다. 가까이 오지도, 무시하지도 않으면서 다정한 말을 건네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묘하게 불편해하는 베타들과도, 확실한 욕망을 눈빛에 담고 다가오는 알파들과도 달랐다. 그래의 머릿속에 평면적으로 입력된, 세상 사람들의 뻔한 프레임에서 벗어나 안영이는 안영이 그 자체로 그래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돌려 말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래씨는 애초에 더 잃을 게 없잖아요?"


그러니 그래씨가 되길 바라는 대로 행동해 봐요.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영이가 그래에게 어느 순간 다가와 작게 어깨를 토닥였다. 그녀는 어느 때보다 더 그래의 눈에 키크고 당당해 보였다. 다른 베타 여자들에게서 느껴본 적 없는, 따르고 싶은 카리스마가 그녀에게는 있었다.


"혹시 알아요? 그래씨가 용기를 내면 모든 일이 다 좋게 풀릴지."


말을 마친 영이는 어정쩡하게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그래에게서 곧바로 등을 돌려 옥상을 빠져나갔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옅은 장미꽃 향기가 묘하게 코를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