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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쩜디

[미생][원인터X장그래] 미생 오메가버스 10



미생 오메가버스 10


원인터내셔널X장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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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길티 플레져













내가 되길 바라는대로...?

석율에게 바랐던 건 내 말을 들어주는 거였다. 그리고 마음을 알아주고 자신도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길 바랐었다. 아니라고 해도 사실은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라면 다른 한 가지 자신이 바라는 것은 회사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정받는 것. 하지만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었다. 누구도 내가 해낼 수 있다고 빈말로라도 말해주지 않았고, 가슴아프지만 현실이었다.


그래는 며칠째 계속해서 생각에 잠겼다. 


한석율이 밉고 원망스러워 죽을 것 같았지만 마음에서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나쁘게 굴면 굴수록 그의 마음이 더 욕심이 났다. 최대한 상처받지 않도록 마음을 비우고 그의 옆에서 때를 기다리면 진심이 통하지 않을까?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진심을 기다리며 곁에 있더라도 그에게 다른 오메가들과 똑같은 존재가 되기는 싫었다. 자신이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집착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석율은 그에게 많은 것을 해 줄 수 있는 남자였고 쉽게 생각하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지만 정말로 석율과의 만남에서 그에게 대가를 바라는 순간 그들의 관계는 그저 조건 만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못박아질 것이었다. 그래가 갖고 싶은 것은 그의 마음이었다.


동시에 회사에서 살아남을 방법 역시 찾아야 했다. 당장 정직원 채용은 바라지 못하더라도 비정규직으로서의 계약 연장이라도 필요했다. 원인터는 그가 대학생활 내내 배운 것을, 자신의 머리를 사용할 수 있을 회사였다. 누구나 다 하는 기본 업무 외에, 상사들에게 잘 보이고 좋은 점수를 따서 계약 연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알파들이 그에게 바라는 것은 일을 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마지막에 그들이 원하는 것은 똑같았다. 지금껏 오메가인 자신의 몸에 관한 일이라면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껴왔던 그가 과연 손쉬운 관계에 자신을 내줄 수 있을까?


"내가 용기를 내면 일이 좋게 풀릴 수도 있다..."


입안에서 굴려 본 영이의 말은 꼭 면죄부 같았다. 그녀의 말을 해석하는 것은 온전히 그래의 몫이었다. 친절한 그녀가 에둘러서 말해 준 것일지도 몰랐다. 너무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낄 필요 없다. 원하는 걸 갖고 싶으면 가질 수 있는 방법을 따라라. 장그래 당신은 애초에 잃을 것이 없다.

석율에게서 연락이 끊기지 않고 오는 핸드폰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날 탕비실에서 뛰쳐나간 이후 석율은 그래에게 거칠게 굴거나 강제로 굴복시키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것처럼 여유롭게 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진정으로 안달나 했으면 좋겠다. 장그래라는 먹이를 온전히 자신만이 소유하고 싶어하는 욕심이 자신에 대한 진심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진심을 부딪혀서 얻을 수 없다면 그럼 어떡해야 하는가? 


그의 마음도 얻고 회사에서 목숨도 부지하는 법. 그래는 어리숙한 생각들로 가득찬 머릿속을 비워내고 한 가지 답만을 남겼다.







자리에 앉아 아침 일찍 탄 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을 털어넣듯 마신 그래는 차가워진 종이컵을 내려놓으며 문득 눈앞에 서 있는 키 큰 남자를 발견했다. 코끝으로 커피향과 섞여 익숙한 단 냄새가 풍겼다.


"장그래, 오랜만이네. 잘 있었나?"


중동의 강한 햇빛에 얼굴이 부쩍 탄 천과장이 시원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의 얼굴이 붉어졌다.





힐끔힐끔. 그래는 뒤쪽 책상에 앉아 일하고 있는 팀원들을 어깨 너머로 계속 넘겨다보았다.


"장그래. 이리 와 봐."


그런 그를 주시하던 오차장이 그래에게 손짓했다. 화들짝 놀라 쭈뼛쭈뼛 다가가자 그래에게 가까이 오라고 다시 손짓한다. 허리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하자 꿀밤이 날아왔다.


"아!"

"왜 일 안하고 도둑고양이처럼 흘깃대고 있어?"

"아...차장님..."

"왜 불러."

"저... 저기요.

"

말을 망설였다.


"장그래도 행복한 세상이 있을까요?"

"일하다 말고 뭔 뜬구름 잡는 소리야."


그게 아니라... 말끝이 흐려졌다. 우울함에 잔뜩 절여진 말간 얼굴을 바라보던 오차장은 한숨을 푹 쉬었다.


"있겠지. 있을 거다. 기대하지 않고 적당히 순응한다면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니지."

"정말요?"

"그럼 쓸데없는 생각 하지말고 가서 일이나 해! 확 짤라버린다."

"네에..."


터덜터덜 자리로 돌아오던 그래는 입에 펜을 물고 자신을 쳐다보는 관웅과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곧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돌렸다.

강대리와 어깨동무를 하고 사무실을 떠난 동식을 마지막으로 영업3팀에는 자판을 두드리는 관웅과 그의 눈치를 슬슬 보는 그래만이 남았다. 


"천과장님."

"응."


고개를 돌려 그래를 잠시 보던 그는 곧 다시 모니터로 눈길을 돌렸다. 언젠가 이 사무실에서 석율이 나타나 경고하듯 기싸움을 벌였던 일이 떠올랐다. 관웅도 같은 생각을 하는 듯 했다. 우성알파의 것이라고 말하다시피 했으니 그래에게 애써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천과장님. 저기요."

"장그래."

"에?"

"나 없는 사이 회사에 소문 많이 났더라. 섬유팀 한석율이랑 붙어다닌다고."


아...아니에요. 그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나한테 뭐 바라는 게 있는 눈친데. 한석율이 잘 안 들어줘?"

"...과장님."


뭘 해주실 수 있으신데요? 하고 묻자 대답은 잠시 후에 돌아왔다. 그 말을 들은 그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자."


속삭인 관웅은 곧바로 일어나 겉옷을 걸쳤다. 주변의 눈을 의식한 둘은 조금 떨어져 서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지하주차장까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걸어가 관웅의 차에 둘 다 올라탔다.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깔끔한 모텔의 객실로 올라갈 때까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문이 닫히자마자 입술이 맞붙었다. 키 차이가 많이 나서 그래는 가슴팍에 거의 매달린 채였다. 관웅의 넓은 어깨가 그래의 몸을 전부 감쌌다. 따뜻한 손등이 그래의 얼굴을 잠깐 쓸고 지나간 뒤부터는 서로의 체향에 취해 정신 없이 달려들었다. 뜨거운 입술이 그래의 귓불을 물고 늘어졌다. 턱선을 타고 혓바닥이 쓸어내려와 다시 입 안으로 들어오자 온통 헤집어졌다. 천과장은 자신의 재킷을 급하게 벗어 던지고 그래의 넥타이를 끌러내고 셔츠 단추를 풀었다. 정장 바지가 발목으로 떨어지고, 그래가 양말을 발가락 끝으로 벗어냄과 동시에 몸이 들렸다. 가뿐하게 그래를 안아들고 몇 걸음을 걸어 침대 위로 두 사람의 몸이 파묻히듯 뒹굴었다. 관웅은 그래의 몸 위로 완전히 밀착해 체중을 실었다. 빈틈없이 맞닿은 하체를 느리게 비비자 열이 몰리고 턱이 간질간질해졌다. 큰 손이 맨가슴을 비비고, 입술이 따라 내려왔다. 질척하게 물고 빠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래는 목을 젖히고 자신을 잠식한 본능을 따라 반응했다. 입을 벌리고 가쁜 숨을 내쉬며 간간히 작은 신음을 참지 않고 내뱉자 손가락이 입 안으로 들어왔다. 한참을 입 안을 훑던 것이 빠져나가고 몸이 뒤집혔다. 젖은 손가락이 질척해진 아래로 거침없이 밀고 들어왔다. 

천과장은 같은 이십대 사원인 백기나 석율과는 또 달랐다. 그는 그래에게 진짜 어른으로 느껴졌다. 완전히 잡아먹히는 것 같은 느낌에 무서웠다.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의외로 안 우네."


말간 얼굴에 지친 기색을 띠고 똑바로 누운 그래의 옆에, 턱에 팔을 괴고 그를 내려다보는 관웅이 있었다. 긴 손가락이 그래의 뺨을 쿡 찌르고, 그래가 돌아보자 그대로 끌어당겨 가슴팍에 안았다. 그저 가만히 안겨있었다. 어떤 깊은 의미도 없는 행동이겠지만 어른 같은 자상함이 느껴졌다. 


"...먼저 씻고 가세요. 과장님."

"끝나자마자 쫓아내는거야?"

"......"


아니요. 더 있으면 제가 착각할까봐요. 뒷말은 속으로만 삼켰다. 


"안 그래도 들어가 봐야지.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건데 늦게 들어가면 와이프가 속상하잖아."


관웅은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오메가와의 가벼운 관계 정도는 알파들의 세계에서 그저 본능에 의한 별 의미 없는 일로 치부된다는 것을 그래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죄책감이 들었다. 동시에 자책하는 것은 자기 혼자뿐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또 슬쩍 비참한 마음이 올라왔다. 나는 진짜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래도... 그래 너는 좀 달라."

"에..."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거든. 생각나게 만들고."


다른 알파들도 똑같이 느낄거야. 관웅의 손이 그래의 머리칼을 움켜쥐듯 쓸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애처로운 표정 하지 마라."


욕실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그래는 멍하니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에 대한 연민에 빠져 있었는데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웃음짓는 자신이 짜증나 확 정색한 채로 몸을 일으켜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메모장 어플에는 회사 내에서 자주 마주치는 알파 사원들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입으로 이름들을 중얼거려 보다 머리칼을 헤집었다. 계산대로 움직이는 게 싫었다. 될 대로 되어 버려라. 베개에 얼굴을 묻고 푹 엎드리자 늘어진 팔에서 떨어진 핸드폰이 바닥에 널린 옷 위로 소리 없이 떨어졌다. 베개가 조금 젖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