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4일 '쩜오 어워드'에 내는 데 실패했던...ㅠ_ㅠ 미생 오메가버스AU 신간 '그래도 행복한 세상'의
통판수령 선입금 예약을 받고 있습니다.
이 페이지에서 선입금 안내, 표지 인포 및 샘플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18년 2월 1일 - 2월 16일까지는 선입금 기간입니다.
2월 17일 - 2월 23일까지 책주문, 포장하여 배송해 드립니다! (출력소 사정에 따라 조금 늦춰질 수 있습니다.)
제가 소장본을 갖고 싶어 진행하기 때문에 다섯 분 이상만 참여하신다면 엎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19세미만구독불가 소설로, 성인분들만 구매 부탁드립니다!
선입금 폼 :
표지 및 인포목업 이미지 디자인 : 소해산(@_demande)님
*율래 기반 그래른 : 율래, 백기그래, 관웅그래, 해준그래, 성준그래 등의 총체적 그래른이며 원인터내셔널 회사를 배경으로 오메가버스AU의 클리셰에 충실한 글입니다. 원작방영시기에 쓴 글에 퇴고를 거쳤습니다. 제목과 달리 장그래에게 별로 행복한 세상이 아닙니다(...) 원작 등장인물 대부분이 알파 혹은 베타로 글에 등장합니다. 후회공과 불쌍한 그래를 좋아하는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하여튼 백기씨도 인생 힘들게 산다니까. 끌리면 그대로 끌려가야지 왜 참아?”
”나도 알파다, 장그래.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지 마라.”
”장그래씨처럼 분수를 아는 귀여운 오메가 정도가 좋죠.”
“장백기씨도, 장백기씨도 절 보고 못 참았으면서 경멸하듯이… 더러운 것 보듯이 말하지 마세요.”
“그래야, 거짓말 하지 마. 너 나 좋아하잖아. 진심으로."
샘플
(17페이지 분량이며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영이씨. 오늘 영업3팀에 계약직 신입 온대요. 오차장님이 인원 충당 신청하셨다더니… 계약직이 오네?”
백기는 믹스커피를 탄 종이컵을 손에서 굴리며 영이의 옆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고 있는 영이의 표정은 무심했다. 누구도 자원2팀 신입이기 전에 우성알파인 안영이에게 감히 커피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지만 그녀는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로 신입으로서 응당 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일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석율씨가 좀 보고 온다는 것 같았는데. 소식이 없네. 아 나도 은근 궁금한데요."
백기의 말은 거의 혼잣말 같았다. 말이 많지 않은 그였지만 영이 앞에서는 항상 최대한으로 억누른 조바심이 표출되곤 했다.
“장백기씨는 영업3팀 신입이 왜 궁금한데요?”
아뜨뜨. 대답을 기대하길 포기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던 백기는 갑자기 들려오는 영이의 목소리에 입술을 델 뻔 했다.
“영이씨가 가고 싶어 했던 팀이잖아요, 영업3팀.”
“…….”
“그렇게 가고 싶다고 티를 냈는데도 안 보내줬던 팀에 누구든 새로 들어온다니까 궁금하죠. 뭐 인턴 때부터 정직원 한 달 차인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동기생각 나라생각?”
영이가 피식 미소 지었다.
“동기 사랑이 아니라 생각이라서 고맙네요.”
아, 웃었다. 백기는 만족한 표정으로 넥타이에 튄 커피 방울을 툭툭 닦았다.
“영이씨, 백기씨, 여기 있었어? 아 나 완전 미쳐 오늘. 내가 보고 왔잖아 그 신입!”
앞머리를 정갈하게 반으로 갈라 넘기고 화려한 넥타이에 현란한 양말을 매치한 석율이 탕비실로 뛰어 들어왔다. 경망스럽게 떠들고 있었지만 감출 수 없는 우성알파의 강한 기에 백기는 눌리지 않으려 정신을 다잡았다.
“전 안 궁금하다니까요.”
“안 궁금해도 들어봐. 오메가야 오메가, 그것도 완전 예쁜 오메가.”
종이컵들이 담긴 쟁반을 들고 탕비실을 나가려는 영이의 앞을 가로막은 석율이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회사 계약직 대부분이 오메가인데요 뭐. 근데 예뻐요?”
“어, 역시 백기씨가 나랑 말이 통하려나보네. 완전 예뻐.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사람 미치게 하는 냄새가 나. 나 여기까지 도망쳐 온 거야!”
백기는 큭, 웃고 영이의 쟁반을 뺏어들고 탕비실을 나갔다. 티는 안 냈지만, 백기 역시 좋은 혈통의 알파임에도 우성알파 중의 우성알파인 두 명과 한 공간에 있으려니 묘하게 기가 빨리는 기분이었다. 평소에는 잘 그러지 않는데 이렇게 느껴질 정도라니 석율은 그렇다 치고 영이 역시 조금 흥분했었나 보다. 정곡을 찔러서 그런가…. 중얼거리며 복도를 벗어나 사무실로 들어서자 커피 향과 함께 느껴지는 사무실 특유의 공기만으로도 머리가 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안영이씨가 탄 커피예요.”
자원2팀 사무직 직원에게 쟁반을 건네고 당황하는 얼굴에 무심히 등을 돌렸다. 오메가 향을 억누르는 향수를 뿌려서 별다른 냄새는 나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사회 환원의 일환으로 오메가들을 계약직으로 채용했고 이성적인 근무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오메가 향을 억제하는 고급 향수를 제공했다.
“안녕하십니까, 신입 사원 장그래입니다!”
구석의 영업3팀 사무실에서 들리는 우렁찬 미성에 백기는 걸음을 빨리했다. 까만 머리카락이 감싸고 있는 동그란 뒤통수가 보이자마자 백기는 코를 찌르는 강한 향에 순간 어찔해졌다. 사람 좋은 베타인 김대리는 어색함과 당황스러움이 뒤섞인 미소를 짓고 있었고 알파인 오차장과 천과장은 코를 씰룩이고 있었다.
“어… 뭐야. 남자였어?”
(....)
“네, 원인터 영업3팀 장그랩니다. …네, 지금 전부 출장 나가셨습니다. 네, 그렇게 전해드리겠습니다. 네.”
점심시간 이후로 영업3팀에 혼자 남아 전화만 받고 있다. 괜히 들떠서 식당에 내려갔다가 쏟아지는 시선과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아도 눈초리로 느껴지는 비웃음에 쫓기듯 다시 올라와 벌써 두 시간째였다.
할 일도 없어서 무역용어사전만 뒤적이며 한숨을 쉬던 그래는 푹 내리고 있던 고개를 쳐들다가 책상 파티션 반대편에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악!”
장난스러운 얼굴 위로 씨이익 웃음이 번진다. 남자는 싱글싱글 웃으며 그래의 옆자리로 의자를 당겨 와 앉았다.
“놀랐어요?”
“…아, 아닙니다. 무슨 일이세요?”
“난 섬유팀 한석율이에요. 우리 동기나 다름없으니까 편하게 하자고. 인사하러 온 건데 놀래켜서 미안.”
넉살 좋게 다가와 말을 붙이는 석율의 목소리는 경쾌했다. 그래는 잠시 넋을 잃고 석율을 바라보았다. 현란한 넥타이와 갈라 넘긴 앞머리, 몸에 딱 핏되는 수트가 주는 느낌은 놀랍게도 고급스러움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석율의 붙임성 너머로, 그래가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강한 기운은 알파의 그것이었다. 거기에 강하고 짙은, 독하도록 달콤한 꽃향기. 이 사람은 우성알파다.
그래는 허둥지둥 의자를 뒤로 빼 석율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그래씨 왜 그래? 다른 분들도 안 계신데 우리 편하게 얘기 좀 해 봐요.”
이리와. 이리 오라니까? 석율은 눈웃음을 치며 강아지를 부르듯 그래에게 손을 짤짤 흔들었다.
“아… 저기, 저한테 가까이 안 오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왜? 그래씨가 오메가여서? 향기가 너어무 위험해서?”
“…….”
“안 그래도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래씨는 히트사이클도 아닌데 왜 이렇게 냄새가 진하게 나지? 아, 물어봐도 괜찮죠? 우리끼리니까.”
스스럼없이 말을 꺼내며 석율은 그래에게 더 의자를 당겨 앉았다.
“물론 평소에도 알파 오메가끼리 묘오한 감정이 들 때는 이렇게 향기가 나기도 하고, 알파가 그래씨처럼 예쁜 오메가한테 잘 보이고 싶을 때도 향기를 막, 막 쏠 순 있지만. 반대 케이스는 처음 보는데. 아니면 그래씨가 나한테 막 그래? 보자마자 반한 거예요?”
“…….”
“그래씨가 말 안 해주면 난 마음대로 생각할건데.”
“…아….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원래 그래요.”
그래는 당황해서 말을 뱉고는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사람이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쏟아내는 말에도 주눅이 든다. 그래는 그냥 냄새를 풀풀 흘리는 타입이었다. 다른 오메가들은 성적인 행동을 할 때와 히트사이클을 제외하면 거의 향기가 새지 않았고, 그렇다 해도 특수 제작한 향수를 뿌리면 가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주 평온할 때를 제외하면 숨 쉬듯이 향을 내보내곤 했다. 자신도 몰랐지만 주변 사람들, 그리고 여러 번 찾아간 병원에서 들은 답변이었다. 우성알파들처럼 알파와 오메가를 압박하는 특유의 기와 오메가를 유혹하는 페로몬을 갈무리하며 필요할 때만 내보내는 능력도 없었다. 오래된 습관대로 책상에 놓인 향수로 손을 뻗었다.
“그래씨는 원래 그래? 아 미안. 이름도 너무 귀여워서. 이따가 그래씨의 동기라고 할 수 있는 친구들 소개해줄게요. 이렇게 귀여운데 다들 마음에 들어 하겠지.”
“아니…, 그러지 마세요. 저는 지금이 편하고…. 아마 다른 분들도 불편해 하실 겁니다.”
당황하면 귀와 입술이 빨개진다. 그래가 횡설수설 늘어놓는 말은 한 귀로 흘리며 석율은 그래의 이곳저곳을 훑었다.
“너어무 주눅 들어 있으면 일 못해요. 조만간 한 잔 하자고!”
그래의 얼굴로 손을 뻗어 만지고 싶은 걸 눌러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석율은 그래의 머리를 흩뜨렸다. 긴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지나 귀를 살짝 스치고 떨어져나갔다. 귀에 닿는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래를 보고 석율은 크게 웃으며 영업3팀을 나왔다. 하하하, 왜 그렇게 놀라? 이따 봐!
“백기씨, 백기씨.”
“아, 왜 이럽니까? 귀찮게.”
“어떡하지. 만지고 싶어. 만지고 싶으면 키스하고 싶겠지? 막, 막 이렇게. 그러고 나면? 아 백기씨, 나 어떡해.”
곧바로 철강팀으로 달려온 석율은 백기의 주위를 맴돌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철강팀 강해준 대리가 내준 문장 줄이기 숙제를 하는 백기의 표정은 진지했다. 반 무테 안경 너머의 시선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책상 위의 A4용지에 박혀있었다.
“아으!”
“한석율씨는 일 없어요? 저 바빠요.”
“백기씨는 영이씨한테 하는 반만 나를 좋아해줘. 그럼 나도 그래씨를 예뻐하는 반만큼만 백기씨를 예뻐할게.”
“내가 오메가예요? 저 눈치 보이니까 가요, 좀.”
간다, 간다고. 나한테 이러는 거 후회할거야! 석율은 아까부터 열이 오르는 볼에 차가운 손을 갖다 대며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
“네? 아니 무슨…. 우리 동기도 아니고. 그리고 오메가잖아요.”
“백기씨는 그 예쁜이한테 흥미 안 생겨? 환영회를 빙자해서 같이 술 먹고 싶지 않아?”
“흥미가 생겨도 안 생기게 할 겁니다. 오늘 하루 종일 정신 사나웠어요, 그 냄새 땜에.”
“하여튼 백기씨도 인생 힘들게 산다니까. 끌리면 그대로 끌려가야지 왜 참아?”
대답 없이 어깨만 으쓱하고 종이를 파쇄 하는 백기의 얼굴에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석율은 백기의 옆구리를 몇 번 쿡쿡 찌르다 그래를 찾으러 간다며 종종 뛰어가 버렸다.
코끝으로 오늘 하루 종일 맡아 익숙해진, 시큰거리도록 청량한 그 냄새가 맡아진다. 백기는 본능처럼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인사 한 번 나눈 적 없지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그 오메가다. 오메가가 백기를 마주하고 허리를 꾸벅 숙인다. 집에 가려는지 가방을 메고 재킷도 걸친 차림새다. 한석율씨랑 엇갈렸나 보네.
파쇄 할 종이를 손에 가득 든 그래는 오전에 잠시 눈을 마주쳤던 남자에게 허리를 숙였다. 종이가 한가득인 곳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저 남자가 알파여서 나는 냄새인지. 빳빳한 종이 냄새가 코를 가득 메운다. 코가 간지럽고 힐끔힐끔 남자가 신경 쓰이는 걸 보니 알파다.
그래의 인사를 받은 백기가 무뚝뚝하게 고개를 숙였다. 파쇄기 앞에서 살짝 비켜나자 그래가 손에 든 종이 뭉치를 차례차례 기계에 집어넣는다. 백기의 시선이 그래를 지나치는 짧은 순간 그를 내려 훑었다. 까만 머리칼, 하얀 얼굴에 동글동글 순해 보이는 눈, 빨개져 있는 귀와 입술, 마른 몸에 자신보다 한참 작은 키. 알파 여럿 후리게 생겼네. 그래에게서 완전히 돌아서자 보이는 둥근 뒤통수와 힘없어 보이는 어깨. 순간 백기는 그래의 등을 파쇄기 위로 밀쳐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장, 장그래씨?”
잠시 눈이 휙 돌아가는 것 같은 충동을 느낀 자신에 당황해서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그의 이름이었다. 아… 통성명도 안 했는데 아는 척 했어.
“네?!”
놀란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다.
“어… 그… 한석율씨한테 얘기 들었어요. 전 철강팀 장백깁니다.”
“아! 아… 안녕하세요. 잘, 잘 부탁드립니다.”
“네… 뭐…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백기는 자신의 입을 때리고 싶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종이를 손에 든 채 서 있는 모습이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다. 자로 잰 듯이 살며 마음 속 야망을 위해 한 치의 흐트러짐도 허용하지 않는 백기에게, 가지고 태어난 본능을 일깨우는 존재는 무엇이든 불쾌했다. 섹스가 하고 싶으면 밖에 나가 널리고 널린 오메가 중 하나를 입맛대로 고르면 된다. 베타를 사귈 수도 있다. 그러나 회사에서, 그것도 내가 골라잡는 게 아니라 오메가 따위에게 이 내가 유혹당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백기의 입매가 굳어졌다.
(....)
“그래의 처음은 나랑 하는 거야.”
“네?”
한입 마셔 보라고. 석율은 자신의 잔에 입을 갖다 대며 다른 손으로 그래 앞에 놓인 잔을 가리켰다.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자 뱃속으로 뜨끈한 기운이 확 퍼졌다. 익숙하지 않은 쓴맛에, 입술만 축이는 동안 석율은 자신의 잔을 비웠다. 그리고 지극히 일상적인 말투로 그래에 대해 물었다. 질문은 모두 석율이 하고, 그래는 대답만 했다. 석율이 점점 더 편하게 느껴졌다. 능글맞다고 생각했던 말투는 다정했고, 외롭게 살아왔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자신을 바라보는 걱정 담긴 눈빛은 위로가 되었다. 술은 얼마 마시지도 않았지만 몸이 따뜻해지고 노곤하게 풀어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어느새 캄캄해진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석율은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앉아 있던 팔걸이의자에서 일어났다. 블라인드를 내리고 자신의 의자로 돌아가는 대신 그는 그래가 앉은 소파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난 우리 장그래를 만나서 요즘 참 기분이 좋다.”
“…….”
자연스럽게 석율의 팔은 그래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손으로 어깨를 당겨 자신에게 가까이 안는 행동에도 그래는 평소와 다르게 움츠리거나 빼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신에 대한 호감을 남김없이 표현했던 석율이 좋아졌고, 진한 작약 향기를 맡을수록 더 깊이 들이마시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래는 외로웠다. 외로운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는 사람은 그 한 사람 뿐이었다. 옅은 술기운으로 살짝 붉어진 얼굴로 그래는 석율의 품에 뺨을 기댔다.
“그래야.”
“…네.”
“내가 널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지?”
네에. 한숨 쉬듯 대답했다. 누군가의 품에 마음 편히 안겨 본 기억은 까마득했다. 온기를 더 느끼고 싶었다.
석율의 코가 그래의 정수리에 닿았다. 머리칼에 입술을 묻고 향기를 남김없이 들이마셨다. 이미 한참 전부터 그는 그래의 냄새를 참을 수가 없었다. 코가 알싸해지는 것을 느끼며 석율은 어깨에 두르지 않은 손으로 그래의 턱을 당기고, 따뜻해진 볼을 감쌌다. 그리고 그대로 고개를 내려 입을 맞췄다. 따뜻하고 말랑한 입술 안으로 혀가 미끄러졌다. 언젠가 차 안에서 나누었던 것보다 짙은 키스에 그래는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부드럽게 밀고 들어오던 석율의 숨소리가 조금씩 거세졌다. 코로 격하게 숨을 내쉬며 입술을 밀어붙였다. 그래의 입술 아래로 다 넘어가지 못한 침이 흐르고, 짐승처럼 석율의 혀가 쫓아 내려와 턱을 전부 핥고 빨아 삼켰다. 뺨을 꽉 붙들었던 손이 내려와 뒷목을 가볍게 주물렀다. 숨이 막혀 읍, 읍, 하는 소리를 내며 그래는 몸을 뒤로 뺐다. 석율은 놓치지 않고 익숙하게 그래의 목과 허리를 받치며 몸을 소파 위에 뉘었다. 서로의 코로 서로의 체향이 미친 듯이 파고들었다. 당혹감이 서려 있던 그래의 눈이 풀어지려는 찰나, 석율은 그래의 목으로 입술을 내려 빨아 당겼다. 실낱만큼 남아 있던 그래의 이성이, 사무실에서 있었던 천과장과의 일을 머릿속으로 불러왔다. 무섭게 화를 내던 석율의 모습도 겹쳐졌다. 잠시 눈을 뜬 이성은 곧이어 박과장 앞에 무릎 꿇었던 순간으로 그래를 끌고 갔다. 감겨 가던 눈을 크게 뜬 채 석율의 어깨를 양 손으로 밀어냈다.
“왜 그래….”
(....)
입에서 상쾌한 치약 냄새가 풍기자 조금 머리가 맑아진 그래는 손을 씻고 화장실에서 나오다 백기를 마주쳤다. 영업1팀 사원들을 제외하고는 14층 사무실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내심 놀랐지만 인사를 건넬 기력도 없었다. 사실, 만날 때마다 안좋은 모습을 보인 것도 그렇고, 마주칠 때마다 자신을 언짢아하는 백기에게 반갑게 인사할 용기도 없었다.
“…장그래씨.”
허리만 꾸벅 굽혀 보이고 자신을 지나치려는 그래의 팔목을 이번에는 백기가 턱 붙잡았다. 영이에게 거절당한 것이 장그래의 잘못으로 인한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 분노를 풀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며칠째 이어진 폭음으로 백기의 얼굴은 눈에 띄게 초췌해져 있었다.
“장백기씨. 죄송하지만 저 지금은 이야기할 기분이 아니에요. 놔주세요.”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리는 그래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백기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치솟는 것을 느꼈다.
“이야기할 기분이 아니라고요?”
“네.”
“지금 저 무시합니까?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장그래씨한테 항상 다 알려줬는데, 그렇게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그럴 기분이 아니라고요?”
“……장백기씨.”
“제가 베푼 호의는 호의도 아니었나보네요? 한석율씨랑 어울리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닌데요. 붙잡은 손목이 이상하게 뜨겁다고 느끼며 백기는 퇴근 준비로 분주한 영업1팀 쪽을 돌아보았다. 순식간에 목소리를 낮추며 그래를 끌고 회의실로 들어섰다.
“저기, 이게 무슨….”
그래가 당황하는 것을 무시하며 회의실의 블라인드를 전부 내렸다.
“안영이씨가 잘해주고 한석율씨랑 뒹구니까 내가 우스워 보이죠.”
“그런 거 아니…”
그래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테이블에 몸을 기댔다.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그 사람들이 진심일 것 같아요? 내가 그만큼 눈치를 줬는데도 몰라요? 한석율씨가 우리 회사에서 손 안 댄 오메가를 찾는 게 더 빠를 겁니다. 안영이씨는,”
“…….”
“…됐어요. 장그래씨 어디가 그렇게 잘나서 다들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백기의 말도 중간에 끊어졌다. 그래를 노려보며 말을 잇던 그에게 문득 눈에 들어온 그래의 입술이 어느 때보다 더 통통하고 유혹적으로 보였다. 자신의 앞에서 울었을 때, 당황했을 때마다 눈에 띄게 빨개지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향기. 머리가 핑 돌았다. 백기는 안영이가 곁에 두길 원하는, 한석율이 매일같이 즐겼을 그래의 입술에 홀리듯 다가가 거칠게 입을 맞췄다. 미약하게 반항하는 것조차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부러 양 손목을 세게 틀어쥐었다. 건조하게 부르텄던 그래의 입술이 터지고, 찝찔한 피 맛이 느껴지자 백기는 입술을 뗐다.
“별 거 없잖아.”
거짓으로 중얼거린 말에도 그래는 수치심이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머릿속에서 불꽃이 팍 팍 터지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어지러움이 심해지고, 발끝부터 애벌레가 기어 올라오는 것처럼 몸이 간질거렸다. 항상 약을 잘 챙겨먹어 생소한 느낌이었지만 히트 사이클의 전조였다. 사무실 의자에 걸쳐놓은 재킷 안주머니 속의 약을 떠올리며 그래는 잡힌 팔목을 빼내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백기씨, 놔주세요. 놔주세요!”
말로는 별 거 없다고 중얼거렸지만 치약 향과 섞여 입 속 가득히 들어찬 그래의 향기에 반쯤 넋이 나갔던 백기는 그래의 비명과 같은 외침에 정신이 들었다.
“…아니, 누가 잡아먹어요?”
놔주기 싫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는 약을 먹어야 한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과연 그 말을 꺼낼 수 있을 만큼 백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전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박과장과의 일에서 자신을 도와줬고 아무 짓도 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방금 자신에게 입 맞췄다. 그리고… 석율의 얼굴이 떠올라 더더욱 알파를 믿을 수 없었다. 몸이 땅 속으로 꺼지는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숨소리가 거세지고, 온몸이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그래는 절망했다. 힘이 빠진 몸으로 자신에게 기대오는 그래에 백기는 눈에 띄게 움찔했다.
“장, 장그래씨?”
자신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그래의 머리를 조심스레 잡아들어 얼굴을 확인한 백기는 숨이 멎는 것 같은 유혹을 느꼈다. 청초한 얼굴이 붉게 물든 채로, 촉촉한 눈동자에 처음 보는 풀어진 눈빛으로 백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평소보다 배는 짙은 향기의 페로몬이 콧속으로 가득 밀려 들어왔다. 안경 너머로 백기의 눈이 일렁였다. 히트 사이클의 시작이었다.
(...)
큼, 큼. 뒤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 그래는 재빠르게 난간을 향했던 몸을 돌렸다. 늘씬한 몸매에 어울리는 세로줄이 들어간 바지 정장을 위아래로 차려입은 영이는 언제나처럼 눈을 크게 뜨고 웃고 있었다.
“그래씨. 요즘 한석율씨 땜에, 회사 사람들 땜에 힘들죠?”
눈이 마주치자마자 본론으로 치고 들어오는 영이에 잠시 그래는 얼떨떨해했다.
“에?”
“제가 그래씨를 지켜보면서 해주고 싶었던 말은, 하고 싶은 대로 밀어붙여 보라는 거예요.”
“영이씨….”
찬바람에 코를 훌쩍이는 그래를 보는 영이의 표정은 변함없이 친절했다. 가까이 오지도, 무시하지도 않으면서 다정한 말을 건네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묘하게 불편해하는 베타들과도, 확실한 욕망을 눈빛에 담고 다가오는 알파들과도 달랐다. 그래의 머릿속에 평면적으로 입력된, 세상 사람들의 뻔한 프레임에서 벗어나 안영이는 안영이 그 자체로 그래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돌려 말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래씨는 애초에 더 잃을 게 없잖아요?”
그러니 그래씨가 되길 바라는 대로 행동해 봐요.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영이가 그래에게 어느 순간 다가와 작게 어깨를 토닥였다. 그녀는 어느 때보다 더 그래의 눈에 키 크고 당당해 보였다. 다른 베타 여자들에게서 느껴본 적 없는, 따르고 싶은 카리스마가 그녀에게는 있었다.
"혹시 알아요? 그래씨가 용기를 내면 모든 일이 다 좋게 풀릴지."
말을 마친 영이는 어정쩡하게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그래에게서 곧바로 등을 돌려 옥상을 빠져나갔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옅은 장미꽃 향기가 묘하게 코를 자극했다.
내가 되길 바라는 대로…?
석율에게 바랐던 건 내 말을 들어주는 거였다. 그리고 마음을 알아주고 자신도 내게 마음을 열어주길 바랐었다. 아니라고 해도 사실은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라면 다른 한 가지 자신이 바라는 것은 회사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정받는 것. 하지만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었다. 누구도 내가 해낼 수 있다고 빈말로라도 말해주지 않았고, 가슴 아프지만 현실이었다.
그래는 며칠째 계속해서 생각에 잠겼다.
한석율이 밉고 원망스러워 죽을 것 같았지만 마음에서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나쁘게 굴면 굴수록 그의 마음이 더 욕심이 났다. 최대한 상처받지 않도록 마음을 비우고 그의 옆에서 때를 기다리면 진심이 통하지 않을까?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진심을 기다리며 곁에 있더라도 그에게 다른 오메가들과 똑같은 존재가 되기는 싫었다. 자신이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집착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석율은 그에게 많은 것을 해 줄 수 있는 남자였고 쉽게 생각하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지만 정말로 석율과의 만남에서 그에게 대가를 바라는 순간 그들의 관계는 그저 조건 만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못 박힐 것이었다. 그래가 갖고 싶은 것은 그의 마음이었다.
동시에 회사에서 살아남을 방법 역시 찾아야 했다. 당장 정직원 채용은 바라지 못하더라도 비정규직으로서의 계약 연장이라도 필요했다. 원인터는 그가 대학생활 내내 배운 것을, 자신의 머리를 사용할 수 있을 회사였다. 누구나 다 하는 기본 업무 외에, 상사들에게 잘 보이고 좋은 점수를 따서 계약 연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알파들이 그에게 바라는 것은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마지막에 그들이 원하는 것은 똑같았다. 지금껏 오메가인 자신의 몸에 관한 일이라면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껴왔던 그가 과연 손쉬운 관계에 자신을 내줄 수 있을까?
“내가 용기를 내면 일이 좋게 풀릴 수도 있다….”
입안에서 굴려 본 영이의 말은 꼭 면죄부 같았다. 그녀의 말을 해석하는 것은 온전히 그래의 몫이었다. 친절한 그녀가 에둘러서 말해 준 것일지도 몰랐다. 너무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낄 필요 없다. 원하는 걸 갖고 싶으면 가질 수 있는 방법을 따라라. 장그래 당신은 애초에 잃을 것이 없다.
석율에게서 연락이 끊기지 않고 오는 핸드폰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날 탕비실에서 뛰쳐나간 이후 석율은 그래에게 거칠게 굴거나 강제로 굴복시키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것처럼 여유롭게 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진정으로 안달 나 했으면 좋겠다. 장그래라는 먹이를 온전히 자신만이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자신에 대한 진심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진심을 부딪혀서 얻을 수 없다면 그럼 어떡해야 하는가?
그의 마음도 얻고 회사에서 목숨도 부지하는 법. 그래는 어리숙한 생각들로 가득 찬 머릿속을 비워내고 한 가지 답만을 남겼다.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접 미리보기 (0) | 2018.03.01 |
---|---|
피의 결혼 미리보기 (0) | 2017.04.23 |
Give Love 소장본 미리보기 (0) | 2017.04.23 |
2016 리에야쿠 교류회 후기 (0) | 2016.12.15 |
2016.09.24 네코마 온리전 현장수령&통판 선입금 인포 (0) | 2016.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