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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결혼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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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결혼

하이바 리에프 X 야쿠 모리스케

w.비누꽃






야쿠 모리스케의 그 날은 평소와 똑같았다.


그는 막 2년차에 접어든 고등학교 수학 선생으로, 언제나처럼 왕왕 몰려드는 학생들에게 붙들려 두 시간 동안이나 교무실에서 공부를 봐주다가 퇴근하는 길이었다.


학생들은 모두 야쿠를 좋아했다. 그 나이대의 햇병아리 선생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는 순수한 열정, 자연히 아이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웃음 짓는 얼굴, 모든 조건이 완벽했다. 남학생들은 점심시간마다 야쿠와 축구를 하고 아이스크림을 얻어먹으며 나름대로의 우정 비슷한 것을 쌓았고, 여학생들은 그의 옷매무새나 간식 같은 이것저것을 챙기고 참견하며 따라다니곤 했다. 다정한 선생님으로서의 의무를 즐겁게 해나가고 있다고 여겨지는 나날들이었다.


야쿠는 하이바 리에프와의 첫 만남 이후로 몇 번이나 그 날을 회상하며 그 때 다른 결정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했다. 그럴 때면 리에프는 옆에 가만히 앉아 그 얼굴을 들여다보며, 다 알겠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캔과 도시락을 사서 나오던 야쿠는 골목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아직 고양이들이 울어댈 시간도 아닌데, 한두 마리가 아닌 듯 울음소리는 미약하지만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고양이 새끼들이 어미라도 잃은 건가? 귀여운 동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야쿠는 자연스레 어두운 골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고양이들은 천에 싸인 뭉치를 둘러싸고 야옹거리고 있었다. 야쿠는 순간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위화감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뒷걸음쳐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두운 골목은 몇 걸음 뒤의 밝은 세상과 차단된 것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야쿠는 잠시 고개 뒤를 넘겨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을 돌려 발 앞에 놓인 천 뭉치로 시선을 내렸다.


…….”


비명을 지르지 않은 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할 만큼 놀라서였다.


천에 싸인 갓난아기가 기묘한 눈을 크게 뜬 채 야쿠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 야쿠는 처음 보는 초록빛 눈동자에 온통 시선을 빼앗겼다.

간신히 아기의 녹안에서 시선을 떼자 눈에 들어온 것은 희다 못해 어둠속에서도 밝게 빛날 만큼 푸른빛이 도는 도자기 같은 피부였다. 어린아이라면 으레 건강한 혈색을 띠고 있어야 할 텐데, 아기는 핏줄도 하나 비치지 않는 얼굴을 인형처럼 가만히 기울여 두고 있을 뿐이었다. 손을 대면 차가울 것 같은 말끔한 이마 위로 은회색의 머리카락이 가지런히 덮여 있었다. 아기는 야쿠가 숨도 쉬지 못하고 저를 관찰하는 동안 눈동자를 거의 움직이지도 않으며 야쿠를 빤히 바라보았다. 분명히, 또렷한 시선이었다.


아기의 작은 입술이 웃음 같은 것을 짓는다고 느껴지는 순간, 야쿠는 자기도 모르게 아기를 집어 들어 품에 안았다.





(....)




분유를 먹듯 피를 빨아 마시는 아기를 내려다보며 야쿠는 문득 조금 착잡한 마음이 되었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사람의 피를 마시는 존재라면 야쿠는 딱 하나를 알고 있었다. 판타지 소설에나 등장하는, 야쿠 나이의 청년이 진지하게 입 밖으로 꺼내기는 어쩐지 부끄러운 그 존재. 뱀파이어, 혹은 흡혈귀.


넌 누구야.”


밤이 깊어 어느덧 초록빛으로 빛나는 예쁜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야쿠는 대답을 바라지 않는 질문을 던졌다. 아기는 야쿠의 목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기도,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한 고요한 눈동자. 야쿠는 손가락으로 아기의 통통하고 하얀 뺨을 의미 없이 매만졌다.


재미있어?”


언제부턴가, 아마도 야쿠가 욕실에 들어갔다 나온 사이에 열려 있었을 창문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온 것은 그때였다. 야쿠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남자가 손을 방 안으로 뻗어 블라인드의 손잡이를 붙잡아 죽 당기자, 가려져 있던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당연한 것처럼 창틀을 밟고 허리를 숙여 방 안으로 들어서는 그들을 보고 야쿠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굳어 서 있었다.


아기 보는 거 좋아하나봐. 사흘 전부터 지켜봤는데.”


계속 말을 하는 쪽은 키가 컸고, 이리저리 뻗친 검은 머리에 검정 라이더 재킷을 입고 있었다. 몸을 감싼 옷들이 모델처럼 기막히게 착 붙어 어울렸다. 그의 뒤를 따라 조금 구부정한 자세로 몸을 일으킨 다른 남자는, 사실은 소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검정색이 섞인 독특한 금발머리가 턱 밑까지 짧은 단발머리처럼 자라 있었다. 소년이 눈을 들자 고양이와 같은 빼쪽한 아몬드 모양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저 사람, 너 때문에 놀란 거야.”

. 너무 앞뒤가 없었나?”


소년이 입을 열자 덤덤하고 살짝 허스키한 중간 톤의 목소리가 빠져나왔다. 키가 큰 남자는 야쿠에게 장난치듯 미안한 표정을 해 보이며 팔짱을 끼고 섰다.


3층 빌라의, 그것도 바깥으로 난 창문으로 남자 둘이 아무렇지 않게 들어왔다는 사실보다 더 야쿠를 그 자리에 못 박히게 한 이유는 그들이 주는 느낌이 놀랍도록 아기의 그것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공간의 균형마저 깨뜨리는 듯한 이질감. 실핏줄도 보이지 않는 매끄러운 도자기 같은 피부. 그리고 한순간도 야쿠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시선. 야쿠는 그것이 그들이 눈을 한 번도 깜박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난 쿠로오, 이쪽은 켄마. 네가 데려온 그 아기에 대해 설명하고 싶은데, 시간 좀 내 줄래?”


처음에 했어야 하는 말을 마침내 꺼내놓으며 쿠로오라는 남자는 씩 웃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식탁 의자를 하나 빼 걸터앉았다.





(.....)





피를 주기 싫으면 다른 거 해요.”


흡혈이야말로 리에프의 기본 욕구였지만 그는 그걸 핑계 삼아 야쿠의 목에 입술을 들이밀었다.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끊임없이 야쿠를 흔드는 것. 한 번 거절당해도 뻔뻔하게 밀어붙이면, 이 불쌍하리만치 마음 약한 인간은 끝까지 자신을 거부하지 못하리란 걸 안다.


리에프는 야쿠의 볼에 기습처럼 입을 맞췄다. 다가가는 동작은 재빨랐지만 입술은 오래도록 야쿠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야쿠는 리에프를 밀어내려 몸부림을 쳤다. 그러면 리에프는 야쿠의 반항 때문에 방향이 엇나간 것처럼, 모르는 척 입술을 이리저리 옮겼다. 자주 있는 패턴이었다. 한 손이 야쿠의 손을 놓고는 위로 올라와 야쿠의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훔치고 들어왔다. 그러나 리에프의 입술이 야쿠의 입술에 닿기 직전, 야쿠는 리에프의 하얗고 차가운 손가락을 세게 깨물었다.


…….”


리에프는 별다른 비명이나 신음도 없이 손가락을 떼고 물러섰다. 순간적으로 반항기를 담고 야쿠를 응시하던 눈빛이 곧 풀어졌다.


고통을 못 느끼는 건 아닌데. 항상 너무 죄책감 없이 깨무네요.”

……말로 해선 안 듣잖아.”


야쿠만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그는 무심코 손등으로 입술을 비벼 닦으며 리에프의 팔 밑에서 빠져나왔다. 리에프는 야쿠의 동작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며 조금 어두운 낯빛을 했다. 낯빛이라고 해도 인간에 비해선 변화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그래도 리에프는 야쿠가 자신의 변화를 금방 알아차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연기하지 마, 안속아.”


예상 그대로의 말을 하며 돌아서는 야쿠를 뒤에서 껴안으며 리에프는 뾰족하게 돋은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럼 진심으로. 이제 정말로 배고파요. 먹을래요.”


일부러 주어가 없는 말을 하는 동안 리에프의 긴 손가락은 야쿠의 가슴팍을 타고 올라와 흰 셔츠의 단추를 하나, 둘 풀어내고 있었다. 그는 가볍고 재빠른 동작으로 야쿠의 셔츠를 목덜미와 어깨가 보이도록 젖혔다. 그가 당황해봤자 할 수 있는 게 없도록, 리에프의 팔이 야쿠의 팔과 가슴팍을 뒤에서 단단히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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