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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HQ!!

[리에야쿠] HAPPY SAD 上







HAPPY SAD

하이바 리에프 X 야쿠 모리스케




w.비누꽃











야쿠 형?”

?”

형이라고 부르면 돼요?”

아무도 그렇게 안 부르는데. 너 편한 대로 해!”


야쿠의 눈앞에 선 키 큰 애는 그냥 그렇게 빙글 웃었다. 나한테 아무도 존댓말도 안 하는데.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을 듣고 그 웃음이 더 커졌다.


아버지의 해외 지사 발령으로 갑작스레 오른 호주 유학길은 딱 일 년 만에 끝났다. 야쿠는 외국 생활도 싫었고, 영어를 배우고 싶지도 않았으며 거기 뿌리를 내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일본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돌아가면 더 잘 할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품고서. 그러나 일 년 잘 놀았다고 생각해야지 뭐, 하면서 돌아왔을 땐, 학력 인정이 되지 않아 일 년을 유급해야 한다는 소식만이 야쿠에게 빈 집과 함께 남은 것이 되어 있었다.


. 2학년이 되기 전, 한 달쯤 남은 학기를 제 생각엔 유치하고 어린 일학년 후배들과 보내며 야쿠는 습관처럼 자주 한숨을 쉬곤 했다. 그리고 얼굴을 보러 쉬는 시간마다 교실로 내려온 친구들은 그런 야쿠를 보며 낄낄 웃었다. 저 녀석들은 곧 3학년이 되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척, 제일 어른인 척 뻐기면서 보낼 텐데. 자신은 이 애들이랑 2학년으로 올라가야 한다니. 야쿠는 교복에 1학년 배지를 단 것을 놀리느라 정신이 없는 친구들의 등짝을 밀어내고 교실 문을 닫으며 어색하고 갑갑한 마음뿐이었다. 자연히 학교생활이 조금 부담스러워졌다.


순식간에 겨울 방학이 지나고, 2학년이 되었다. 나름대로 야쿠를 받아들인 아이들은 야쿠를 그냥 야쿠라고 불렀다. 선배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고 깍듯이 존대하는 호칭도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 건 간지럽고 싫었고 아무리 그래도, 야쿠도 무리에서 섞이지 못하는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야쿠는 새로운 학년에 조금씩 녹아들어 가고 있었다. 본래 까탈스럽고 곁을 주지 않는 성격도 아니었으니 딱히 겉돌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왜 혼자 앉아 있어요? 우리랑 같이 앉을래요?”


서로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거리. 딱 그 만큼을 유지하고 있던 야쿠를 흔든 건 눈앞에 선 이 장신의 소년이었다. 하이바 리에프, 분명 사복을 입고 있으면 모두 대학생인 줄 알 것이다. 아니, 그러기엔 눈빛과 입매에 아직 어린 티가 남았나? 야쿠는 그 반질반질 잘생긴 얼굴을 앉은 채로 올려다보며 최대한 친절하게 거절할 말을 찾았다. 요즘은 혼자인 게 가장 편했다.


, 고마워. 근데괜찮아.”

에이, 진짜요?”


말도 안 된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미는 게 의외로 귀여워 살짝 웃자 리에프는 빈틈을 캐치했다는 듯 아예 다가와 야쿠를 잡아끌었다.


리에프와 그 친구들이라면 진작 알고 있었다. 질 나쁜 애들도 아니고, 존재감 없는 애들도 아닌, 적당히 재미있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부류. 미성숙한 청소년들만이 가질 수 있는 밝고 거침없으면서 별 악의 없이 순수한 그들의 행동거지를 정확히 정의내릴 수는 없었지만 야쿠는 그게 싫지 않았다. 유학 가기 전의 자신이 그런 타입이기도 했었다. 지금은 뭔가 있어 보이는 유급한 형이미지에 심취해 고독을 즐기고 있지만.


리에프는 그 중에서도 제일 밝고 활기차 보이는 편이었다. 졸리고 의욕 없어 보이지만 핸드폰에는 인근 고등학교 여학생들 번호가 차고 넘친다는 쿠니미 아키라, 밝게 탈색한 머리와 피어싱을 감추느라 늘 아주 일찍 혹은 아주 늦게 등교하는 테루시마 유우지. 그리고 하이바 리에프는 학년에서 가장 키가 컸고, 가장 주위가 떠들썩한 소년이기도 했다. 높게 솟은 콧대만큼 차가울 것 같이 생겨서는 오히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에너지가 강렬했다. 누구든 그에게 다가가고 싶어 했다. 한겨울에 내리쬐는 햇빛인 것처럼. 야쿠는 좋은 듯 싫은 듯 리에프에게 끌려 교실 뒤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쿠? 안녕, 또 같은 반이네.”

안녕, 쿠니미.”


저를 흘끗 보고는 웃는 듯 마는 듯 인사하는 그가 야쿠는 편했다. 작년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같은 반에 있으면서 쿠니미는 오고가며 마주칠 때마다 그 심드렁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야쿠에게 반말로 인사를 던지곤 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지만, 야쿠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오랫동안 봐 온 것처럼 덤덤하게 인사를 건네고 가는 담백한 성격이 꽤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어느 여학생에게, 친구들에게 하는 것과는 다르게 다정함이 넘치는 메시지를 보내는 중이었던지 쿠니미는 곧 핸드폰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야쿠는 별 생각 없이 그 옆의 빈 책상에 앉으려 했다.


, 미안. 거기 테루시마 자리. 걔는 자기 앉고 싶은 데 못 앉으면 엄청 성질 부려서.”


쿠니미의 말에 야쿠는 무심코 리에프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야쿠가 알기로 이 무리는 이렇게 셋이었다. 그럼, 남는 자리는.


형은 내 옆에 앉아요.”


한 줄 앞에서 자리까지 빼 주며 리에프는 다정하게 권했다. 처음부터 같이 앉을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미 자기 자리에 앉아 야쿠를 돌아보는 얼굴에 그렇다고 전부 쓰여 있었으니까. 야쿠는 어쩐지 그 웃는 얼굴이 조금 마주보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별 생각 없이 봤지만, 앞으로는 그럴 것 같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시선을 피하고 싶어졌다. 왠지 부끄럽기도 하고, 얼굴이 너무 빛나는 것 같기도 하고. 저를 뚫어져라 보는 눈길이 따갑기도 해서.


저 작년에 본 적 없어요?”

.”


야쿠는 리에프를 어떻게 알았는지, 첫인상은 어땠는지 길게 설명하게 되는 상황이 민망해 그냥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미안. 작년엔 좀 정신없었네!”


하하하. 그냥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 웃느라 눈이 평소와 다르게 휘어졌다. , 방금 분명 엄청 못생기고 가식적인 얼굴이었을 거 같아. 야쿠는 아차 하는 눈으로 웃음을 거두고 리에프의 얼굴을 살폈다.


……내일부터 같이 점심 먹어요.”


그러나 리에프는 한 마디만 던지듯이 내놓고는 그냥 얼굴을 돌려 버렸다. 왼쪽 손으로 턱을 괴고, 야쿠에게 완전히 보이지 않도록.


! 안녕! 너 왜 이렇게 얼굴이 시뻘개?”


어색해질 뻔 했던 기류는 뒷문을 걷어차듯 열며 등장한 테루시마 때문에 끊어졌다. 테루시마는 금발로 탈색한 머리를 한 손으로 대충 흩뜨리며 쿠니미 옆의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러고는 리에프의 등을 손으로 쿡쿡 찔렀다. 그러나 리에프가 대답하지 않자 테루시마는 그 옆에 멀뚱히 앉은 야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누구?”


말하고 나서 습관처럼 혀를 낼름 내미는 통에 그 가운데 꽂힌 동그란 피어스가 반짝였다.


너 야쿠 몰라? 원래 우리 선배였는데 유급했잖아.”


쿠니미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설명했다. 테루시마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분위기가 산만해졌다. 그는 신기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고 야쿠를 뜯어보았고, 야쿠는 가까이 다가온 그 얼굴이 부담스러워 로봇 같은 웃음을 지었다. 리에프는 다정한 건지, 차가운 건지. 방금은 왜 그렇게 확 대화를 끊었던 걸까. 이 조합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마냥 단순하지만은 않은 애들 같았다.


, 그럼 형이라고 불러야 돼?”

, 아니. 그냥 편한 대로 해.”


야쿠가 손사래를 치자 등을 돌리고 있던 리에프가 야쿠 쪽으로 몸을 반쯤 돌려 앉았다. 대화에 끼려는 듯 리에프는 꼬고 앉은 무릎 위에 턱을 괴며 뒷자리의 두 명을 응시했다. 쿠니미는 핸드폰을 책상 위에 뒤집어 놓으며 살짝 웃었다.


유우지, 너 야쿠 마음에 들었지?”

. 형인데 귀엽네? , 내 동생이 돼라!”

헛소리 하지 마.”


팔을 뻗어 야쿠의 머리에 손을 대려던 테루시마의 손을 탁 쳐낸 건 리에프였다. 단호하지 않은, 장난기 가득한 동작이었지만 테루시마는 순순히 손을 거두었다. 대신 어깨를 으쓱하며 쿠니미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키, 너 여친이랑 헤어졌어?”

헤어진 게 언젠데.”


관심은 순식간에 옮겨갔다. 테루시마는 꼭 시끄러운 폭풍 같았다. 그러나 리에프의 손은 아직도 어정쩡하게 야쿠의 얼굴 앞에 멈춰 있었다. 그걸 의식한 야쿠가 눈을 들어 리에프를 올려다보자,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쟤 조심해요, .”


고개를 돌린 적도 없다는 듯이 리에프는 웃었다. , 내가 뭘! 쿠니미와 다른 이야기를 하다 말고 귀신처럼 알아듣고 발끈하는 테루시마가 웃겨서, 야쿠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사실은 이 상황 속에 자신이 있는 게 좋았다. 무리를 이루지 않으면 결국 불안한 게 고등학생들이었다. 야쿠는 역시 혼자 있는 것보다 녹아드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거, 아닌 척해도 긴장되는 일이었지만 앞으로는 이대로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치고 있던 벽을 무너뜨리며 야쿠는 계속 웃었다. 한 번 크게 터진 웃음소리에 다른 셋의 시선이 자연스레 야쿠에게 집중되었고, 웃음은 곧 전염되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웃은 뒤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야쿠와 리에프는 집에 가는 방향도 같았다. 학교 정문에서 오 분을 걸으면 나오는 버스 정류장에서 쿠니미와 테루시마와는 헤어진다. 그리고 다시 십 분 정도를 걸으면 나오는 골목길에서 둘은 각자 가야하는 방향으로 갈라졌다. 버스로 가기에는 애매하고, 자전거를 가지고 나오기도 귀찮은 거리. 리에프와 야쿠는 건강한 다리와 마를 틈 없는 체력을 활용해 그냥 걸어 다니는 쪽을 택했다.


리에프는 큰 키만큼 보폭이 컸다. 걸음도 빠른 편이어서, 그 정 반대인 야쿠는 그에 맞추기 위해 저도 모르게 빠르게 걷고 있었다. 그러나 헤어질 때쯤에는, 야쿠는 자신이 평소처럼, 아니 그보다 더 슬슬 걸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길의 가게들에 눈길을 주고,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고, 아파트 단지를 지나 주택가로 오는 동안 쭉 그렇게 어슬렁어슬렁 걸은 것 같았다. 야쿠는 인사 외에 별 말 없이 손을 흔들어 보이고 사라지는 리에프를 바라보며 잠시 서 있었다.


걸음 맞춰 줬네.


별것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 새삼스러웠다.


야쿠는 괜히 발로 돌을 툭툭 차며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꾸만 리에프를 떠올렸다. 딱 맞게 교복을 입은 긴 팔다리도, 색 연한 머리카락과 높은 콧대,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빈틈없이 들어찬 잘생긴 얼굴도, 테루시마의 손을 쳐낼 때 제 얼굴 앞에 자리했던 큰 손바닥도. 차가운 얼굴이 웃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충격적일 만큼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사랑을 나눠주러 빠져나온 그림 속의 큐피드가 그렇게 다정한 얼굴일까?


리에프가 함께 앉자고 잡아끌었던 손목의 존재감이 자꾸만 느껴졌다. 그 따뜻한 손가락이 닿았던 건 아주 잠시였는데도.

 





 

모리스케, 도시락 안 싸왔어?”


지금은 삼학년에 가 있는 오래된 친구들과도 간지럽다며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다. 그래서 야쿠는 잠시 테루시마가 자신을 불렀다는 걸 알아채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 네가 야쿠 이름을 왜 불러.”


대신 대꾸한 건 리에프였다. 목소리가 꽤 불만스러웠다.


리에프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야쿠를 형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존댓말도, 반말도 아닌 애매한 말투를 썼다. 야쿠는 딱히 그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럴 때마다 조금 궁금해지기는 했다. 그냥 친해지는 과정인건가? 그렇다 하기엔 둘만 얘기할 때는 칼같이 존댓말을 쓰는 리에프였다. 그럴 때는 말투도 더 다정해졌다. 남들에게는 그 모습을 들키면 안 되는 것처럼. 야쿠는 부루퉁한 목소리를 꾸며 내는 테루시마 때문에 생각에서 깨어났다.


친군데 이름을 왜 못 불러?”

얘 또 불쌍한 척 한다.”

어제도 담임 앞에서 그러다가 머리 밀릴 뻔 했잖아.”


, 안 속네, 이제. 테루시마가 혓바닥을 장난스럽게 내미는 것을 끝으로 이름 이야기는 흐지부지 지나갔다. 야쿠는 조금 서운했다. 이름 불러도 괜찮은데. 리에프는 왜 뭐라고 했을까. 질투하는 말투 같다고 느꼈던 건 착각이려나?


나도 아직 이름 못 불렀는데. , 나랑 제일 먼저 친구 됐잖아요.”


그러나 리에프는 테루시마와 쿠니미가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는 틈을 타 재빨리 야쿠의 귀에 속삭였다.


쟤한테 이름 부르게 하면, 나 진짜 질투할거예요.”


야쿠는 그 순간 시간이 잠시 멈춰버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리에프가 귓가에서 입술을 떼고 언제나처럼 웃어 보이는 그 순간이, 야쿠의 눈에는 정지했다가 아주 느리게 재생되는 장면처럼 보였다. 꼭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원래원래 저렇게 애교가 많은 성격이겠지.

그리고 난 원래 애교 많은 애들 좋아하잖아.


무심코 마음속으로 변명하면서 야쿠는 조금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합리화한 것도 소용없게, 마음이 이상하게 움직였다. 자꾸만 간질거리며 코를 시큰하게 잡아당기더니, 이제는 쿵쿵 뛰기 시작했다.


너는 웃고 있는데 왜 나는 좀 울고 싶지?


나 빵 사러 갔다 올게.”


야쿠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나도 같이 가요!”

, 너는 왜!”

……가면 안 돼요?”


당연한 듯 따라 일어서는 리에프 때문에 야쿠는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꽤 높게 갈라진 목소리 때문에 리에프는 조금 서운한 표정이었다. 남의 생각도 모르고, 왜 그런 얼굴을 하는 거야. 야쿠는 그냥 등을 돌려 앞장서서 걸었다.





야쿠 형, 주말에 뭐해요?”

주말에? 숙제하고, 친구들 만나고…….”


매점으로 가는 길에 여상하게 물어 오는 리에프에게 생각나는 대로 대꾸하며 야쿠는 아까 스쳐갔던 찰나의 순간을 떠올리고 있었다. 앞으로 계속, 그 장면이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누군가의 얼굴을 보며 시간이 멈추는 경험. 사실 나는 판타지 세계에 살고 있었던 건가.


그럼 우리 주말에,”


리에프의 말은 복도 여기저기에서 그에게 인사를 건네는 학생들 때문에 끊어졌다. 야쿠는 그 애들에게 밝게 인사를 건네는 리에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저 웃는 얼굴.


누굴 만나도 저렇게 웃잖아.’


잠시 바보 같은 생각에 사로잡혔던 제가 우스워졌다. 야쿠는 단지 그 예쁘장하게 잘생긴 얼굴 때문에, 연예인을 보듯 한 순간 감탄했었던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야쿠!”


그 때, 야쿠의 등 뒤에서 누군가 나타나 그를 덮쳤다. 야쿠는 영문도 모르고 헤드락을 당하며 저를 짓누른 사람이 누군지 보려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 아아. 코노하. 깜짝 놀랐잖아!”

넌 이제 우리 같은 건 잊었지? 보쿠토는 배신감에 잠도 못 잔대.”

뻥치지 마.”


장난스러움이 뚝뚝 떨어지는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코노하를 보며 야쿠도 씩 웃었다. 일학년 때는 얼마 함께하지 못했지만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뭘 해도 웃기고 편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머리를 북북 쓰다듬는 걸 놔두자 리에프의 눈이 가늘어졌다.


옆에는?”


코노하가 리에프에게 관심을 보이자 야쿠는 조금 기뻤다. 내가 이런 애랑 다닌다고! 리에프 앞에서 대놓고 자랑은 못 하겠지만 분명 나중에 라인이 난리가 날 것 같았다. 코노하에게 소개해 주려 돌아본 리에프는 어느 새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얜 하이바. 같은 반이야.”

야쿠……. 새 친구 생겼다는 거 진짜였냐…….”


부러 슬픈 목소리를 내며 코노하는 리에프를 슥 훑었다. 야쿠랑 어울린다는 애가 어떤 놈인지 좀 볼까. 리에프는 그 은근한 시선에 지지 않고 턱을 더 치켜들었다. 선배면 다야? 그리고 가운데 낀 야쿠는 저는 보이지 않는 높이에서 이루어지는 둘의 묘한 신경전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코노하와 헤어져 매점에 들렀다 교실로 올라가는 길에 리에프는 별 말이 없었다. 그러다 두 걸음 쯤 앞서 계단을 올라가던 리에프는 갑자기 뒤따라오는 야쿠를 향해 몸을 홱 돌렸다.


주말에 아까 본 그 선배 만나는 거예요?”

? , 걔네 곧 입시 때문에 바빠질 거라, 그 전에 얼굴 좀 자주 봐두려고. 학교에서는 보기도 힘들어서.”

…….”

?”


리에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나 곧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나랑은그니까 우리랑은 주말에 논 적 없잖아요.”

우리 주중에도 논 적 없어.”

, 형은 진짜! 지금 그런 사실을 알려달라는 게 아니라고요.”


야쿠는 리에프의 살짝 샐쭉해진 얼굴을 보는 게 재밌어 일부러 장난을 쳤다. , 질투 많이 하는 것 같아. 친구 뺏긴다고 잘 생각하는 타입인가? , 그래서그래서 테루시마한테도 뭐라고 했던 건가?


습관처럼 하는 질투가 아니라, 진짜 내가 특별히 좋아서 그러는 거였으면 좋겠다.


무심코 그런 생각을 떠올리면서 야쿠는 자기도 꽤 친구에게 집착하는 타입이었구나, 처음 알았네, 하고 단정 지어 버렸다. 그 편이 쉽고 편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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