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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HQ!!

[리에야쿠] Give Love 11






Give Love

하이바 리에프 X 야쿠 모리스케



w. 비누꽃







 

내 사랑은 가장 크고 환한 길로 왔다. 외면할 생각 같은 건 해 볼 수도 없게. 야쿠가 내게 걸어올 때는 빛, 바람, 그림자 같은 자연마저 뒤바뀌는 것처럼 느껴졌다. 전부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모든 감정을 함께 겪고 싶었고, 함께 자라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너무 행복하다.



 

여행 이야기를 꺼낸 건 야쿠였지만, 당장 다음 날 여행지 정보를 수십 장 프린트해 내민 건 리에프였다. 분명 둘은 같은 집에서 같이 잠들었는데, 어느새 준비한 건지.


새벽에 안 잤어?”

. 빨리 골라.”


졸린 눈을 비비는 야쿠의 옆으로 리에프가 파고들었다. 그 어느 날, 공부하다 잠든 야쿠의 옆에서 제멋대로 잠들었던 때처럼. 종이를 넘기는 야쿠의 손을 채간 리에프는 손등에서부터 팔까지를 천천히 매만졌다. 구석구석을 제가 다 알고 있다는 행복한 자만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는 그만 이불에 얼굴을 묻고 킥킥 웃었다. 의아한 시선이 느껴져도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웃기는. 근데 왜 여행지가 전부 홋카이도야?”

…….”


리에프의 미소가 더 진해졌다. 엎드려 누운 채로 고개만 쳐든 리에프는 야쿠의 허벅지에 뾰족한 턱을 괴며 작게 중얼거렸다.


삿포로 가서 아줌마한테 인사드리려고. 아니, 이제 어머니? 뭐라고 불러야 돼?”


야쿠는 가만히 리에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볍게 비비적거리듯 몸을 돌려 제대로 다리를 베고 누운 리에프는 그 얼굴을 마주 올려다보며 야쿠의 손에 들린 종이 뭉치를 가져갔다.


사실, 이런 건 다 있으나 마나한 거야. 나는 너랑 삿포로 가고 싶으니까. 그래도 가까운 덴 들렀다가 갈 수 있겠지? 오타루, 노보리베츠, 어디가 좋아?”


갑자기 야쿠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통에 리에프의 머리가 푹신한 침대 매트리스에 떨어졌다. 리에프는 반쯤 허리를 일으키며 야쿠가 침대 밖으로 나가 바닥에 떨어진 바지를 주워 입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야쿠는 흘끗 고개를 돌려 리에프를 한 번 봤을 뿐, 곧 책상 위에 놓인 담배케이스를 집어 들었다.


모리스케. 방에 냄새 배는 거 싫다며.”

가끔은 괜찮아. 너도 하나 줄까?”

……됐어.”


야쿠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처럼 길게 연기를 뱉어냈다. 그리고 다시 한 모금을 더 들이마시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미안. 나는 엄마한테너랑 어떤 사이라고 말할 준비는 안 됐어. 이제 시작하기도 했고, 엄마가 걱정되기도 하고, 그러니까 아마 앞으로도


리에프의 긴 다리가 순식간에 침대 밖으로 빠져나와 바닥을 딛고 섰다. 성큼, 야쿠의 앞으로 다가선 리에프는 야쿠의 입술에 물린 담배를 낚아채며 말을 끊었다.


그냥, 장난이야! 장난! 나라고 정말, 가서 갑자기 아줌마, 우리 사귀어요! 그럴 줄 알았어?”


책상 위에 놓인 음료수 캔에 비벼 꺼진 담뱃불은 순간 반짝였다 이내 사그라졌다.


마음으론 이미 그렇게 말하고도 남았어. 아직 어리지만, 나한텐 너밖에 없고, 죽을 때까지 너랑 같이 살 거라고. 하지만, 나도 앞을 볼 줄 알아! 생각할 줄 안다고. 다른 건 몰라도, 너에 관한 일이라면.”


리에프는 한참 동안 야쿠를 응시하며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 양 손으로 야쿠의 어깨를 움켜잡고 얼굴을 가까이 했다.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도 알겠어. 앞으로도 천천히 할게. 그러니까방금처럼은.”


말을 하다 멈추었다. 리에프도, 야쿠가 일부러 의도하고 가시를 세우는 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그래도 뾰족한 마음에 찔리면 아팠다. 아마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야쿠가 노력하고 있는 것도 알았고, 같은 마음인 것도 알았지만. 리에프는 그에게서 손을 떼고 몸을 돌리려 했다. 못나 보일까봐.


……오타루로 가자. 겨울이니까.”


그러나 따뜻한 손이 다가와 리에프의 손을 붙잡았다. 살짝 벌어진 입술로 아침이라 까슬하게 메마른 입술이 와 닿는다. 짧게 리에프의 입술을 머금고 떨어진 야쿠는 미안함을 감추지 않고 웃었다.


미안. 담배냄새 나지.”


분명히 마음은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리에프에게도 그것으로 충분했다.

 






-미안! 반장이 일 좀 도와달래서, 점심 같이 못 먹을 것 같아T.T


애교 섞인 메시지를 확인하고 야쿠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리에프가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 반장,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그 긴 머리 예쁜 애. 친한 친구인 걸 알고 있으니까 뭐라 할 말은 없으면서도, 그러니까 질투가 나는 것도 아닌데. 그냥 궁금해졌다. 리에프가 또 어떤 얼굴을 하는지. 도서실에서와 같은 전율을 느끼고 싶었다. 그 애가 내 앞에서만 나만 볼 수 있는 얼굴을 한다는 걸,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나도 진짜 유치하지, 생각하며 야쿠는 피식 웃었다.

 




너 때문에 내가 반장 같은 걸 하고 있잖아.”

장난으로 민 건데 진짜 될 줄 몰랐지. 그러게, 평소에 좀 막 살지 그랬냐.”


그래서 지금 도와주잖아. 산더미처럼 쌓인 유인물을 담임이 지시한 대로 분류하며 리에프는 별로 미안하지도 않은 투로 소곤거렸다. 미야자키 유이는 그런 리에프를 한 번 노려보고는 더 빠르게 손을 놀렸다.


시끄러운 교실 대신 찾아온 도서실은 1학년 교무실과 가까웠다. 최대한 빨리 이 귀찮은 일을 끝내고 밥을 먹으러 가고 싶은 건 둘 다 마찬가지였다. 젠장, 배고파, 같은 말을 중얼거리던 유이는 문득 고개를 들어 리에프의 무상한 얼굴을 훑었다.


.”

.”

밥 안사냐? 내가 저번에 여기서 너 도와줬잖아.”

꼭 안 사줘도 넌 맨날 나한테 몇백 엔씩 뜯어가잖아. 그리고 뭘 도와줘. 너랑 친구인 거 모리스케가 다 알더만.”


리에프는 고개도 들지 않고 프린트 뭉치를 탁탁 정리했다.


그래도 잘 됐으니까 좀 사라고!”

, 다 쳐다보잖아. 조용히 좀 해.”


리에프가 교실에서 턱을 괴고 상념에 빠져 있을 때는 야쿠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걸, 유이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 때 다가가서 매점 가게 돈 좀 빌려줘, 하면 리에프는 멍하니 가방을 손으로 가리키곤 했다. 그렇게 뜯어 먹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젠 저 멀쩡한 정신머리라니. 전처럼 죽상을 하고 다니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유이는 어딘지 모르게 친구를 약올리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그 때, 마침 문을 등지고 앉은 리에프의 뒤로 도서실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녀는 리에프가 보지 못하게 씩 웃었다. 한 번에 두 명이나?


, 하이바. 지금 도서실에 누가 들어온 거 같냐?”

야쿠 모리스케 아니면 그냥 말 하지 마.”

하시모토 유카리야. 쟤가 너 보려고 왔다, 에 건다.”

아닐걸? 전에 한 번 대충거절한 것 같은데. 그럼 난 아니다, 에 걸래.”


고개도 들지 않고 리에프는 대충 대꾸했다. 그러나 곧 리에프가 들여다보고 있던 종이 위로 그림자가 졌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들자 그것 보라는 듯 웃고 있는 유이의 얼굴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이바.”

안녕, 하시모토.”

미야자키가 알려줘서, 저기, 점심도 못 먹은 것 같길래. 힘내.”


리에프는 손을 내밀어 유카리가 건넨 초콜릿을 받아들었다. 고맙다고 말하며 웃는 리에프의 얼굴을 본 단발머리의 소녀는 부끄러운 듯 웃고는 책장 사이로 총총 사라졌다. 리에프가 추궁하는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유이는 그를 외면하고 있었다.


, 또 나 팔았지.”

아닌데? 누구랑 같이 하냐고 물어봐서 너라고 말한 것뿐이야. 이야, 역시 소녀의 순정!”

그냥 나 사귀는 사람 있다고 소문내고 다녀야겠다. 고백도 안 했는데 거절하면 이상하잖아.”

내가 소문내줄게. 화장실에서 너랑 전화하는 척 한 번만 하면 끝나.”


그럼 진작 좀 해주지하며 고개를 숙이는 순간 다시 프린트 위로 그림자가 졌다. 이번에는 유이가 먼저 볼펜으로 리에프의 팔을 툭툭 치는 통에 그는 조금 짜증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뭔데, .”


이번에 눈앞에 서있는 건 야쿠였다. 리에프가 친구들과 있는데 먼저 다가온 건, 그의 평생을 통틀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순간 리에프는 제가 오늘 하루 동안 한 일 중에 뭔가 잘못한 게 있는지 빠르게 고민했다. 그러나 야쿠의 목소리가 그 생각을 끊었다.


리에프, 바빠?”

모리스케!”


사서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리에프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세상에. 중얼거리는 유이는 신경도 쓰지 않고 리에프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책상 위로 내던졌다.


하나도 안 바빠. 밥도 안 먹고 온 거야? 지금 먹으러 가자. 내가 미안하니까 맛있는 거 사줄게! 유이, 거의 다 끝났으니까 나머지 알아서 해.”

, 잠깐만! 이걸 내가 어떻게 혼자 들고 가!”


유이는 마지막에 제게 한 말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온도차에 몸을 떨었다. 어우. 선배는 바쁘냐고 딱 한 마디 했는데, 쟤는 일어나서 아주 꼬리를 흔들고 있네! 리에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들며 조금 전의 유이처럼 씩 웃었다.


널 좋아하는 오카자키를 불러줄게. 그럼 됐지?”

혼자 하고 말지. 넌 진짜 치사한 놈이야. 빨리 가.”


리에프에게 짜증을 내던 유이는 그 옆에 서 있는 야쿠와 눈이 마주치고는 피식 웃었다. 저 선배도 많이 변했네. 이번엔 내가 봐주지 뭐. 얼른 가라는 듯 휙휙 손을 휘젓는 그녀에게 야쿠도 살짝 웃어보였다. 리에프가 잊고 간 초콜릿은 유이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그 친구, 이름으로 부르네?”


도서실을 나와 복도를 걸어 몰래 교문까지 빠져나왔다. 학교 앞 돈까스 집으로 가면서 야쿠는 슬쩍 말을 꺼냈다.


누나가. 여자애들한테는 이름도 불러주고 잘 해주는 거라고 해서, 어릴 때 멋모르고 이름으로 부르던 거야. 쟤는 나 하이바라고 불러.”


으응. 대답하는 야쿠의 옆얼굴을 바라보던 리에프는 야쿠의 볼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질투도 하네.”

그냥. 그럼 그 단발머리 애는 누구야?”

? . 봤어?”

걔 처음 본 거 아니야. 저번에도 너랑 같이 있는 거 봤어, 우연히.”


리에프는 그게 대체 언제였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복도에서 날 봤다면, 내가 모리스케를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걔가 너 좋아하지?”

. 몰라. 나한텐 너밖에 없어.”


당연하다 못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말하는 거, 바로 이걸 듣고 싶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마음이구나 생각했다. 야쿠는 고개를 돌리고 빙긋 웃었다.


예쁘던데.”

, ! 난 너한테 떳떳하다고! 아까부터 그러니까 무섭잖아.”


리에프의 얼굴이 처량하게 구겨지고 나서야 야쿠는 장난을 멈췄다. 사실은 아까부터 가슴이 너무 뛰어서, 목소리가 흔들리고 얼굴에 티가 날까봐. 제일 어리고 유치한 건 나야. 하지만 야쿠는 리에프에게만은 그런 모습을 보여도 괜찮겠지, 싶었다. 아니, 사실은 한 번씩 자꾸만 그렇게 유치하게 굴고 싶어졌다. 예전이라면 생각도 할 수 없을 일이었다. 자신을 보며 웃는 야쿠의 어깨를 리에프가 끌어당겨 감쌌다.


그만 놀려.”


색깔만 다르고 디자인은 같은 목도리를 나란히 두르고 리에프와 야쿠는 눈이 질척거리는 학교 앞 보도블록을 같은 보폭으로 걸었다.







-

여유롭게 사랑을 확인하는 화입니다!

본문에 등장한 하시모토 유카리는 연재 중에 등장시키지를 못했는데, 소장본 작업을 하면서 한 번 등장시켰습니다... 

읽으시는 데는 지장 없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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