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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쩜디

[미생][원인터X장그래] 미생 오메가버스 04



미생 오메가버스 01


원인터내셔널X장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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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길티 플레져











석율이 운전하는 벤츠가 그래의 빌라 앞에 부드럽게 멈춰 섰다.



"좀 진정됐어?"



오른손을 들어 그래의 어깨를 짚는 손길은 다정했다. 그가 손에 쥐어 준 뜨거운 커피는 어느새 식어 있었다. 고개를 들어 얌전히 석율과 눈을 맞춘 그래는 조용한 차 안에서 새삼스레 그와 자신의 격차를 실감했다. 일반적인 사회 초년생이라면 꿈도 꿀 수 없는 고급 외제차, 잘은 모르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무렇지 않게 두른 명품들, 타고난 듯 흐르는 귀티와 자신감 넘치는 태도. 지난 일주일 동안 석율은 마치 그래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강아지처럼 굴었지만 애초부터 우위는 석율에게 있었던 거다. 그것은 그래도 이미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쉽게, 가볍게 다가와도 그를 대하는 것은 결코 쉽거나 가볍게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는 언제 꼬리를 흔들었냐는 듯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위를 점령하고 그래를 다루고 있었다. 조금 전 사무실에서 자신을 가볍게 패닉에 빠지게 했던 석율의 힘이 다시 생생하게 떠올랐다.



"오늘...실례했습니다."


"즐기는 데 방해했다면 미안해."



그래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진다. 그, 그런거 아닙니다! 절 도, 도와주신 거예요. 한석율씨가...

석율은 작게 웃으며 그래의 머리칼을 흩뜨렸다. 농담이야.



"그래는 아직 안 해봤지?"


"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렇게 그래씨 주변을 맴도는데 어떤 뜻으로 그러는지는 알겠지."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랑 재미보면 안 돼. 석율은 흘리듯이 중얼거리며 그래에게 다가왔다. 직접 그래의 안전벨트를 풀어주며 귓가에 코를 대고 숨을 들이마셨다. 잔뜩 긴장해 솜털이 일어난 볼을 따라 입술을 내리다 입맞췄다. 


온 세상의 꽃이 다 모여 핀 온실에 들어온 것처럼, 입안에 꽃이 한가득 들어찬 것처럼, 머릿속에 꽃 한 다발이 피어난 것처럼 온통 석율의 향기가 그래를 지배했다. 내가 지금 이렇게 확실하게 표현을 하잖아... 조용하지만 강하게 부딪치던 입술과 엉키던 혀를 떼내고 가볍게 신음하듯이 내뱉은 석율은 그대로 입술을 목으로 내렸다. 천과장이 잔뜩 물어뜯어 놓은 목 위를 입술과 혀가 쓸었다. 꽃 냄새 때문에 그대로 끌어안고 싶어지다가도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에 그래의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자꾸만 몸을 움츠리는 그래를 느끼며 석율은 픽 웃었다. 입술을 떼고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빨리... 내려서 들어가."



뒷말은 허둥지둥 내려 차 문을 닫고 뛰어가는 그래의 등에 가서 달라붙었다.



"페로몬 안 뿌리느라 고생해보긴 처음이다."










현관으로 뛰어들어와 구두를 벗어던지던 그래의 눈에 신발장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들어왔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려 차가운 거울에 볼을 갖다대고 추욱 늘어졌다. 하얗게 핏기가 가신 얼굴과 온통 붉어진 입술과 목덜미가 눈에 들어온다. 소매를 거울에 대고 휙휙 문질러버렸지만 거울 속의 장그래는 사라지지도 않고 흐트러진 모습 그대로 입을 삐죽거렸다. 작은 원룸은 캄캄했다. 불을 켜도 차가웠다. 그래를 낳은 알파 부부는 자식이 부끄러워 외면하다시피하며 이민을 떠난 지 오래였다. 


혼자 냉장고를 열고 캔맥주를 손에 잡았다. 늘 혼자 보내는 밤이 외로워 스무 살 때 처음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맥주 한 캔 이상은 마셔본 적도 없었지만 그에게는 적당히 열에 취해 잠들기에 적당했다. 조용한 집에 덩그러니 놓인 침대 위에 엉덩이를 붙이자 오늘 저녁 있었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토록 알파에게 취해 본 건 처음이었다. 너무나 익숙하게 억눌려 살아온지라 알파는 다가가기도 어려울 만큼 무서웠고 천과장이 자신을 끌어안던 팔은 너무 강했다. 하지만 곧 그 역시 페로몬에 취해 이성을 잃고 매달리려 했던 건 사실이었다. 석율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관웅에게 뜯기고 석율에게 집어삼켜졌던 입술에 아직도 감각이 생생했다. 알파들의 먹이싸움에서 바로 그 먹이가 된 기분은 여전히 두려웠지만 그럼에도 아랫도리가 묵직해지고 턱이 저려오는 쾌감은 짜릿했던 것 같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오메가구나...




"천과장님 얼굴을 어떻게 보지..."




무섭게 자신을 압박하고 달려들었던 천과장에 대한 고민 위로 석율의 얼굴이 겹쳐졌다. 늘 능글맞게 눈웃음치던 그가 자신을 두려움에 엉엉 울게 만들었다. 지난 며칠간 외면했지만 그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오늘 명백해졌다. 어깨를 감싸던 손길, 입맞추다 말고 짓던 웃음은 섹시했다. 오메가인 그래가 우성알파인 석율에게 굴복하게 될 것은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래는 자신이 고민할 권리조차 없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한석율씨는 나를 좋아하는 거구나.


입 밖으로 흘러나온 말에 놀라 입을 헙! 틀어막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지난 주 수요일에 입사했으니 오늘이 꼭 일주일째였다. 조금 두려운 마음으로 엘리베이터 앞에서 심호흡을 한 그래는 발을 내딛었다. 그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두 사람은 영이와 백기였다.




"장그래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래는 미소지으며 인사하는 영이와 무뚝뚝하게 고개만 숙이는 백기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먼저 말을 걸어 준 사람들이다. 그 후에도 팀원들과 석율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인사를 받아주던 사람들이었다.



"장그래씨도 S대 나왔다면서요? 저도 그 학교 정치외교학과 출신이에요."


"아...정말이세요? 네, 저 국제통상학과 나왔습니다."


"장백기씨도 같은 학교 독문과예요. 원인터에 워낙 S대가 많은데 장그래씨도 같은 학교라니 반갑네요."



남자 오메가는 군 면제였기 때문에, 휴학 없이 졸업하고 반 년 뒤에 바로 입사한 그래는 아직 스물 넷이었다. 군복무를 했을 백기와 유학생활 덕분에 러시아에 능통한 것으로 사내에서 유명한 영이의 나이를 대충 헤아려보며, 그래는 의지할 학교 선배가 생긴 것 같아 조금 기뻐졌다.  



"그럼 먼저 들어가볼게요."



15층에 멈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영이는 인사를 남기고 자원팀 팀원들에게로 걸어갔다. 내내 한 마디 말도 없던 백기의 시선은 그래의 목 언저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 사실 학교에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반갑습니다."



"장그래씨는 동문 찾을 생각하지 말고 본인 처신이나 잘하시죠. 목에 그런 거 드러내고 회사에 오는 건 사원들에게 제발 잡아먹어 달라고 매달리는 행동 아닙니까?"



"아..."



용기내 백기에게 말을 건넸던 그래는 돌아오는 날카로운 지적에 얼른 목덜미를 가렸다. 말이 심하다고 느낄 새도 없이 어제의 일이 떠올라 정말 백기의 말처럼 행동한 것 같아 두려워졌다. '자기한테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모르나보지?' 천과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오늘은 냄새도 더 심합니다. 먼저 갈게요."



백기는 그래의 시선을 피하며 가볍게 코를 감싸고 멀어져갔다.
















다행히 천과장은 이란으로 출장을 떠난 덕에 그래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단 며칠만이라도 모면할 수 있게 되었다. 사무실 바닥에 널려있는 깨진 향수병 조각들 때문에 오차장에게 온갖 면박을 당한 그래는 새 향수병을 뜯어 책상에 올려놓으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런 그래의 등뒤에서 오차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장그래! 딴짓하지 말고 성원실업 사무실로 출장가니까 따라와."








서기로 따라간 출장은 금방 끝났다. 성원실업 영업부장과 친한 사이라며 동행한 박과장을 흘끔거리며 그래는 노트북을 정리했다.



"오차장님, 다른 일 없으시면 회사 돌아가지 마시고 오랜만에 한 잔 하시죠."



"죄송합니다, 김부장님. 다른 미팅이 또 잡혀 있습니다. 이거 괜히 바쁜 척 하는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성원실업 김부장과 오차장은 허허 웃으며 회의실에서 나왔다. 악수를 나누고 오차장은 그래에게 바로 회사로 복귀하라고 명령하고 혼자 다른 미팅장소로 떠났다. 박과장은 보이지 않았다.






오차장이 택시비로 건네 준 만원짜리 두 장을 정장 재킷 안쪽에 찔러넣고 터덜터덜 대로변으로 나왔다. 그 때, 어디론가 가버렸던 박과장이 뒤에서 그래를 불렀다.



"과장님."


"장그래, 너 할 일 없지."


"아니요... 오차장님께서 바로 회사 복귀해서 김대리님이 시키시는 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할 일 없다는 거야. 잔말 말고 따라와."



하지만... 주저하는 그래의 귀를 확 잡아당기며 박과장은 욕을 내뱉었다.




"이 새끼가... 너 지금 나 무시해? 다른 팀이라고 과장 말이 말 같지 않지?"









박과장은 그래를 옆에 세워두고 두 시간 동안 당구를 쳤다. 당구장에 있던 넥타이에 셔츠차림의 남자들과 박과장은 잘 아는 사이인 듯 했다. 그는 연신 상스런 말을 내뱉으며 남자들과 당구를 쳤고, 내기당구로 장그래를 건다는 농담에 남자들은 왁자하게 웃었다. 알파인 박과장과 남자 무리들 중 몇 명은 연신 끈적한 눈길로 그래를 훑었다. 페로몬 억제 향수를 쏟아붓다시피 하고 나와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당구장의 알파들은 혈통이 별로인지 예민하게 그래의 냄새를 잡아내지는 못했다. 김대리에게 계속 전화가 와서 받고 싶었지만 박과장은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핸드폰을 가져가 버렸다.




"장그래는 여기 앉아서 나 좀 먹여줘봐."



회사로 복귀하겠다는 말을 꺼낼 때마다 때릴 듯이 무섭게 구는 박과장의 시선을 피해, 당구장에서 점심으로 시켜 놓은 짜장면 그릇들의 랩을 뜯는 중이었다. 소파에 앉아 지켜보던 박과장이 그래의 허리를 잡아채 자신의 무릎에 억지로 앉혔고 둘러앉은 남자들은 조롱했다. 



"과, 과장님! 왜이러십니까 정말!"



야, 너 지금 나한테 소리지르냐? 박과장은 그래가 비명처럼 터뜨린 분노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그래의 셔츠 사이를 벌렸다.



"너 여기 이런 쪼가리를 달고서, 순진한 얼굴로 순진한 척 한다고 누가 들어줄 것 같아?"



지난 며칠간 마주칠 때마다 주물럭댔던 그래의 엉덩이를 박과장은 익숙하게 한 손에 잡았다. 



"너같은 계약직을 왜 뽑는건데. 부서마다 한명씩 놔두고 재미 보라고 뽑는 거잖아."



놀리듯이 말꼬리를 늘이며 그래를 앉혀둔 채로 박과장은 사람들과 떠들며 짬뽕을 먹었다. 너 한번만 더 집에 가네 마네 왜이러시네 마네 하면, 이 사람들이랑 다같이 너 집까지 기어가게 만들 거야. 귓가에 대고 협박하듯 그래를 조롱하며 박과장은 낮게 웃었다. 그래는 그 말에 얼어붙은 듯 두려워져 꼼짝할 수도 없었고 식사 중간중간에도 박과장은 그래의 몸을 더듬었다.








그래를 옆구리에 끼다시피 한 박과장의 발이 향한 곳은 회사 앞 찜질방이었다. 그래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인 채였다.



"과장님, 저 좀 보내주세요..."



몸에서 손을 떼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회사로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출장을 나와서 땀을 흘렸으면 땀을 닦고 회사로 들어가야 할 것 아냐."



"그럼 과장님은 들렀다 오십시오. 저는 오, 오메가라서 출입이 금진데요..."



그 말에 박과장은 그래를 보며 비웃었다. 지금 사람 하나도 없을 시간이거든. 잔말 말고 따라 들어와.


그래는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절대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 박과장의 눈빛은 지금까지 그래를 향해 욕망을 드러내던 알파들의 눈빛과 똑같았다. 앞서 가던 박과장은 문득 뒤를 돌아보고 제자리에 못박힌 듯 서 있는 그래를 발견했다.



"이 썅년이, 진짜."



철썩, 하는 소리와 함께 그래의 얼굴이 돌아갔다. 박과장이 큰 손바닥을 들어 그래의 뺨을 내리쳤다. 어제 터졌던 입술이 순식간에 다시 터지고 그래는 너무 놀라고 아파서 고개도 들지 못했다.



"너 재계약 하고 싶지. 내가 재계약 어떻게 하는지 알려 줄 건데 너 그래도 안 들어갈래?"


"......"


"직장 상사가 호의를 베푼다는데 내가 널 어쩐다고 말을 안 들어?"





씹어뱉듯이 말을 마친 뒤 그는 정신이 나가 서 있는 그래를 잡아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