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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HQ!!

[리에야쿠] Give Love 01



*소꿉친구 AU







Give Love 01

하이바 리에프 X 야쿠 모리스케





w.비누꽃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두 살 연상,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건 고작 일년뿐이다. 그가 없는 중학교에서의 2년은 너무나 지루하고 길었다. 야쿠 모리스케의 사생활, 그러니까 학교 생활을 낱낱이 알아낼 수 없다는 점이 미치도록 답답했었다. 이제 겨우 같은 교복을 입고, 그보다 30센티 가까이 큰 멋진 남자가 되었으니 사랑을 독차지하는 일만 남았나 싶었는데. 


그러나 나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으로 하고 싶은 그는 내가 없는 동안 내 상상과는 전혀 딴판의 연애관을 가진 인간이 되어있었다.





리에프의 원망스러운 눈빛이 야쿠에게로 향했다. 입학하고 벌써 몇 달 동안 그를 집요하게 쫓았으므로, 이 시간대에 어디에 있는지쯤은 훤하게 알고 있었다. 그가 휘적휘적 걸어가 야쿠의 어깨를 짚자 동그란 눈이 그를 돌아본다. 야쿠는 두 살 차이나지만 세 살 이후로는 항상 자신보다 컸던 소꿉친구를 올려다보며 당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리에프?"


"그 새끼 만나지 마... 모리스케."



이름을 부르자 조금 떨어져서 담배를 피우던 야쿠의 친구들이 이쪽을 쳐다본다. 아, 쟤구나, 하는 시선. 리에프는 마음 아픈 와중에도 조금 으쓱한 얼굴을 했다. 영락없는 어린애다, 생각하며 야쿠는 피식 웃었다.



"야, 학교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애들이 놀리잖아."


"야쿠 선배, 그 새끼 좋아하지 마요."


"......어이구."



야쿠는 더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리에프를 외면하고 재킷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입에 한 대를 물고 막 불을 붙이려는데 리에프의 손이 야쿠의 입술에 아슬아슬하게 닿으며 담배를 채갔다.



"야...!"



입에 물었던 것이 빠져나간 자리에 리에프의 입술이 치고 들어왔다. 야쿠보다 한참 큰 리에프의 몸이 야쿠의 어깨를 빈틈없이 감싸고 담벼락으로 밀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던 리에프의 눈이 감기고 비스듬히 고개를 틀며 벌려진 입 안으로 혀가 들어왔다. 야쿠는 크게 뜨인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곧 체념한 듯 위를 올려다보았다. 옆에 모여있던 야쿠의 친구들은 저마다 굳어서 담배를 떨어뜨리거나 멍하니 뻐끔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곧 그들은 짝짝짝, 손뼉을 치며 바닥에 내려놓았던 가방을 둘러메고 골목을 빠져나가 주었다.



"쟤 뭐야? 누구야?"


"야쿠 따라다니는 1학년. 소꿉친구래. 너 첨보냐? 그러니까 학교 좀 나와."


"워... 근데 야쿠 애인 있잖아."


"몰라, 야쿠는 원래 그런 개념 별로 없어."


"너네 야쿠 애인 봤냐? 걔는 2학년이잖아."


"떡쳤대?"


"야, 당연한 걸 물어."



주절주절 얘기하며 무리가 지나간 골목에는 야쿠와 리에프 둘만 남았다. 리에프의 혀가 자꾸만 밀어내려는 야쿠의 혀를 집요하게 따라오며 휘감았다. 위험하다, 야쿠는 문득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생각했다. 이대로 가다간 리에프의 페이스에 휘말려 어디까지 갈 지 모를 것 같았다. 떼어내기가 아쉽다는 마음까지 들었지만 야쿠는 리에프의 어깨를 탁탁 치며 밀어냈다.



"...아, 그만해, 리에프."



이름을 부르자 잠시 떨어졌던 입술이 다시 맞붙는다. 야쿠의 입에서 한숨같은 신음이 흘렀다. 젠장, 너무 좋아. 계속 키스하고 싶다. 자신을 보이지 않을 만큼 껴안고도 남는 넓은 품에서, 너무 사랑해서 죽을 것 같다는 마음이 절절하게 전해지는 키스를 받는 건, 정말 뿌리치기 어려웠다.



"리에, 프... 너도, 너도 나랑... 자고싶어?"



다급하게 섞이는 숨 사이로 간신히 한 문장을 연결하자 끈질기게 파고들던 입술이 바로 떨어졌다. 허전한 느낌에 야쿠는 혀로 입술을 쓸었다. 



"그런 말 해도 소용없어."



근데 벌써 상처받은 얼굴이잖아. 야쿠는 소매로 가볍게 입술을 닦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여전히 리에프는 그를 단단히 껴안고 있었다.



"다 알잖아. 내가 너 좋아하는거. 자고 싶냐고 물으면 당연 그러고 싶지. 근데 나는 너랑 사랑하고 싶어. 다른 새끼들 말고 나만 너랑."


"어... 미안."


"걔 안 좋아하지? 다 알아. 맨날 아무나 만나고 헤어지고... 내가 있는데 대체 왜그래?"


"잘 사귀고 있는데..."


"좋아해, 모리스케. 좋아해, 야쿠 선배. 아님 네 친구들처럼 얏쿵이라고 부를까? 뭐가 됐든 난 너 좋아해."


"못 들은걸로 하면 안될까?"



리에프는 야쿠의 팔을 붙들고 품에서 확 떼어냈다.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맞춰오는 야쿠의 눈은 어떤 동요도 없었다. 



"아무도 거절 안하면서 왜 맨날 나는 시작도 못하게 해."


"넌 내 동생이잖아."


"동생 아니야! 친구잖아! 그리고 이제 친구도 아니야!"


"너 말하는 거 어릴 때랑 똑같아. 그래서 귀여워."



야쿠는 리에프를 가볍게 밀어내고 가방을 집어들었다. 일그러진 얼굴을 외면하고 발걸음을 옮기자 리에프가 더 빨리 걸어 야쿠의 앞을 막아섰다.



"왜 나랑은 안 만나? 넌 내가 그렇게 싫어? 하찮아?"


"아니, 넌 너무 소중해."


"근데 왜...!"


"소중한 건 소중하게 다뤄야지."



리에프는 잠시 말문이 막혀 서 있었다. 곧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그런 말로 내 입 막지 마... 나 안 속아..."


"왜 또 울어. 울지 마, 리에프."


"다정한 척 하지 마......"



리에프는 눈앞에 서 있는 야쿠를 다시 껴안고 엉엉 울었다. 자신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은 그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야쿠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왜 나는 안 돼? 내가 널 제일 잘 알잖아... 나 좀 봐 줘. 나 너무 마음 아파. 왜 날 안 좋아해줘... 끅끅대는 울음소리에 섞이는 말들이 너무 알아듣기 쉬워서 마음이 쓰렸다.



"그만 울어, 나중에 머리 아파."


"애새끼 취급하지 마."


"애처럼 굴고 있잖아. 지금도 봐, 바로 욕하지."


"진짜 냉정해......"



허리를 잔뜩 수그린 채 어깨에 묻었던 고개만 든 리에프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야쿠는 볼에 가득 흐른 눈물을 양손으로 닦아주다 무심코 입을 맞췄다. 짧게 맞닿고 떨어지는 입술에 놀란 리에프는 그대로 굳어 있었다.



"가, 그만. 나 누구 기다리고 있어."


"누구 기다리는데? 방금은 뭐야? 우리 오늘부터 사귀는거야?"


"......리에프."


"너 방금 나한테 키스했잖아."


"그냥 울지 말라고 뽀뽀한거야. 어릴 때처럼."



야쿠는 리에프를 외면하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리에프는 잠시 서 있다가 싹 굳은 표정으로 야쿠의 턱을 들어올렸다. 상처받은 눈이 화가 나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걸 알면서도 야쿠는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우리가 지금 어려? 너는 왜 항상 이렇게 날 맘대로 다뤄?"


"너는 어려. 아직도."


"그렇다면서 왜 밀어내지도 않아."



야쿠의 얼굴이 처음으로 찡그려졌다. 그는 핸드폰 액정을 끄고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리에프에게 차갑게 대꾸했다.



"계속 밀어내고 있잖아. 그럼 뭐 핸드폰 차단하고 말 걸면 씹고, 그렇게까지 해야 알아들을 거야? 나 지금 여기서 애인 기다리고 있고, 네가 싫은 게 아니라 나한텐 그냥 동생인 거야. 알겠어?"


"난 모르겠어..."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가! 가, 리에프."



야쿠가 작게 소리치자 리에프는 상처 받은 강아지처럼 축 늘어진 채 돌아섰다. 구부정한 자세로 몇 걸음 옮기던 그는 곧 제자리에 멈춰 섰다.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다시 야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동생이었던 기억은 다 지워.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래. 너도 나 좋아하게 될거야."


"......"



야쿠는 고개를 비스듬히 꺾은 채로 한숨만 쉴 뿐이었다. 그의 입술에서 담배연기가 빠져나오는 걸 마지막으로 눈에 담으며 리에프는 골목을 빠져나갔다. 허리를 쭉 펴고 긴 다리로 저벅저벅 걸어 모퉁이를 돈 그는 야쿠가 자신의 등을 볼 수 없게 되자마자 전속력으로 뛰었다. 이를 꾹 깨물고 뛰며 리에프는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흐르는 걸 느꼈다. 잔뜩 다문 잇새로 신음 같은 서러운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으흑, 흑. 


주먹을 꾹 쥔 채 그대로 집까지 달렸다. 다른 놈이랑 만나는 야쿠 같은 거, 상상도 하기 싫었다. 계속 아무렇지 않은 척 애인 얘기를 하는 것도 너무 마음 아팠다. 모리스케, 너 왜 그렇게 커버렸어? 내가 너보다 어려서 이해 못하는 거야? 하지만 두고 봐... 너도 결국엔 나를 보게 될 거야... 방문을 열고 들어와 침대에 풀썩 쓰러진 그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더 크게 울음을 터뜨리며 베갯잇을 찢어질 듯 움켜쥐었다. 이렇게 마음이 아파도 그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오늘도 철저히 어린애 취급 받으면서 그는 깨달았다. 사랑을 이루려면 조금 더 냉정해져야 했다. 리에프는 곧 일어나 앉아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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