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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쩜디

[미생][원인터X장그래] 미생 오메가버스 14


미생 오메가버스 14


원인터내셔널X장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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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는 도대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어 미치겠는 채로 시간을 보냈다. 너무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하는지를 몰랐다. 

화장실에서 얼굴에 찬물을 잔뜩 끼얹고 세면대에서 고개를 들자 거울에 보이는 건 뒤에 서있는 백기였다. 그래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그냥 그래를 덤덤히 바라보며 옆 세면대 앞에 섰다.


꽤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세면대에 올려둔 그래의 핸드폰이 대리석 위에서 크게 진동했다. 반사적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밝게 켜진 핸드폰 액정으로 향했다.


[성준식대리님 : 그래야. 오늘 저녁에 뭐해?(뽀뽀)(뽀뽀)]


두 사람 사이에 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남의 문자를 봐버린 것도 잊고 액정을 보던 백기는 하, 하고 헛웃음을 웃었다. 그래가 얼른 핸드폰을 낚아챘다.


"장그래씨."

"예?"

"섬유팀 성대리님이랑 친합니까?"

"아뇨... 아니, 그런 걸 왜 물어보세요?"


백기는 잠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아니면 장그래씨가 성대리님하고 딱히 연락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남의 문자를 봐놓고 무슨 참견인가 싶었는데, 정말로 백기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는 눈만 깜빡이면서 서 있었다. 말을 기다리던 백기는 처음으로 그래 앞에서 씩 웃어 보였다.


"진짜 장그래씨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해지네요."

"왜요..."

"오메가가 느끼기에 성대리님의 냄새는 어때요? 지독합니까?"

"음, 그냥 보통이에요."


아, 보통이구나... 하면서 백기는 또 웃었다.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는 화장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백기 옆을 지나치는 그의 팔을 백기가 턱, 붙잡았다.


"장그래씨는 알파랑 베타도 구별 못합니까."


옆눈질하는 백기의 시선과 당황한 그래의 시선이 얽혔다. 잡은 팔을 놓지 않고 끌어당겨 앞에 세웠다.


"성대리님은 베타예요. 장그래씨가 바보인 걸 알고 알파인 척 하셨나본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애들 장난 수준인데 속는 게 말이 됩니까."

"베타... 베타요? 그분이 왜 굳이 그러시는데요?"

"그분이 왜 그러시겠어요..." 


말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다정하게 느껴졌다. 순간 '마음이 바뀌었어요. 신경이 쓰이거든요,' 하고 말하던 그가 떠올라 갑자기 얼굴을 마주보기 부끄러워졌다.


"페로몬을 느끼지 못하는 베타의 눈에도 장그래씨 당신이 예쁘니까요."


성대리님은 커밍아웃한 게이거든요, 하고 백기가 말을 끝맺자 그래는 그가 한 말 중에 뭐부터 놀라야 할 지 모른 채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잡은 팔을 놓지 않은 채로, 백기가 다른 쪽 손으로 꺼낸 손수건이 빨개진 얼굴을 가린 그래의 손을 치우고 얼굴에 남은 물기를 닦았다.












누구의 연락도 받고 있지 않았던 요즘이라, 집 앞에서 기다리는 익숙한 차를 발견하자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래가 머뭇거리는 사이 어느새 석율의 차는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얼굴 보기 힘드네."


그래를 태운 석율의 차는 한강변으로 향했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인적은 드물었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앉은 둘은 앞에 까맣게 펼쳐진 한강을 응시했다. 둘 다 어쩐지 계속되는 말다툼에서 해탈한 듯 보였다.


"이 얘기도 이제 지겹다, 그치."

"...저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진짜 솔직하게 말하는 거예요."

"너, 좀 더 편하게 살아도 돼. 내가 그렇게 해줄 수 있어. 나도 진짜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내 힘으로는 하나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이 세상에 내가 있는 게 잘못같아요."

"그래야."

"계속 들어줘요. 석율씨를 보면, 너무 좋았고 지금도 사실 좋은데 그거랑은 별개로 너무 속상하고 힘들어요. 나랑 너무 비교되니까, 나도 진짜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공부했고 그랬는데 그냥 잘못 태어났으니까 아무 것도 못 하고. 내가 가졌던 꿈, 그 꿈 생각하면서 열심히 살았던 날들 그게 다 헛짓이었던 거잖아요. 나는 누군가한테 기대지 않으면 제대로 인간처럼 살지도 못하는 거잖아요. 결국 나는 나를 비싸게 주고 사갈 사람을 만나려고 지금까지-"


그래는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어린애처럼 그에게 징징거린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우스워 보일까, 자괴감에 울컥해 잠시 말을 멈췄다.


"아니라고는 말 못해, 나도. 하지만 그렇게 너를 비하하지 마, 이 세상이 그냥 그런거야. 그러니까 내가,"

"......결국 제대로 사랑받지도 못하잖아요. 다른 회사 사람들 누구보다 석율씨가 나한테 그거 뼈저리게 가르쳐줬어요."


눈물보다 먼저 콧물이 난다. 자신이 구질구질해 보이는 게 진절머리가 나서 그래는 차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석율은 그래를 붙잡는 대신 다급히 차에서 따라내렸다. 



그래는 서류가방을 둘러메고 한강공원을 빠져나가는 돌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뒤를 따라 달려온 석율이 한 계단 아래에서 겨우 그를 붙잡아 돌렸다. 


"서 봐, 좀. 내 말 좀 들어줘."

"놔요, 나 진짜 내가 싫어요. 징징거리기나 하고,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안 나오고 울기나 하고, 진짜... 좀 놔요! 이쯤했으면 다른 오메가 찾아요! 나한테 왜 이래요, 진짜!"

"그래, 내가 유치했어! 처음이야. 너한텐 어떻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난 이런 식으로 자라왔고 내가 오메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 


거센 강바람에 둘의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휘날렸다. 그 바람을 등으로 고스란히 맞으며 석율은 잔뜩 격앙되어 있었다. 그가 그래 앞에서 처음으로 감정을 아무렇게나 내보이기 시작하자 그래는 집에 가려던 것도 잊고 멍하니 서서 그의 말을 들었다.


"이제 알겠다고... 내가 잘못했어. 나 좋을 대로 너한테 했던 짓들, 그래서 너한테 상처 줬던 거, 전부 후회해."

"석율씨,"

"좋아해. 너 사랑해, 그래야. 용서해 줘, 제발."


장그래의 세상이 하얘졌다. 처음으로 들어보는 말이 안 믿겨 놀란 숨을 헉, 하고 들이켰다. 그런 반응에도 석율은 웃지 않았다. 한 계단 아래 선 채로 그는 그래의 팔을 잡았던 손을 놓고 허리를 껴안았다. 그리고 그래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목에 닿아오는 얼굴이 뜨거웠다.


"그리고 부탁할게. 너도 네 스스로 잘 살아보겠다고 하면서 너자신을 학대하는 일 그만해. 네가 오메가로 태어난 거, 네 잘못 아냐. 그러니까 네가 갖고 싶은 거, 못 가진 거, 내가 다 주는것도 당연해. 나랑 같이 살기 싫으면 살지 마. 그냥 내가 너 좋아하는, 아니 사랑하는 만큼 다 해 줄 테니까 나만 만나고 나만 좋아하면서 살아줘."


석율은 그래 자신과는 다르게 말했다. 오메가로 태어난 게 너의 잘못이 아니다, 너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 이렇게 태어난 나에게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라. 그는 그래가 혼란스러움과 자괴감을 느끼던 최근의 정신상태가 무엇 때문이었는지도 알려주었다. 애초에 자신이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에서 나를 찾겠다고 해왔던 일들이 나를 더욱 망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 거다.


장그래는 이 사회에서 철저한 약자였고 약자 혼자서는 아무리 발버둥치고 외쳐도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래는 자신을 대하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혐오하고 자조해야 했다. 


왜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해 주는 사람이 한석율인 건지... 


그래는 고개를 돌리고 울었다. 석율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는 게 창피해서 그냥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어 숨겼다. 석율은 그래의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 정말 생각 많이 했어. 얼마전까지도 결국 네 앞에서 고집부리고 미친놈처럼 굴었던 거 알아. 아닌 줄 알면서도, 네가 바라는 게 뭔지 나 다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객기부렸어. 우성알파인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살아온 게 너무 오래돼서, 인정하기가 싫었어. 고집부리고 다른 사람 손 타는 널 보는 거 열받으면서도, 네가 어디까지 가는지 두고 보자고, 언젠간 나한테 와서 숙이겠지 했어. 너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앤데... 혼자 상처받지 않게 옆에서 잡아주고 내 마음 인정했어야 했는데 쓰레기처럼 굴었어. 그 시간들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내가 잘못했어. 나 좀 봐봐..."


그래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을 들었다. 눈 앞에 어느 때보다 애절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석율의 얼굴이 있었다.


"......한석율씨 그 결혼 안할 수 없는 거 알아요... 근데 아무리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해도 나는 결혼한 석율씨랑 사랑이라는 걸 하고 있을 내가 상상이 안돼요..."

"나도... 나도 집안을 포기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아무런 힘이 없어. 너도 행복하게 해 줄 수가 없어...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제발 나를 이해해 줘..." 


그래의 눈물로 축축해진 무릎 위로 석율의 눈물이 젖어들어갔다. 그래도 석율도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는 마음이 후련해짐을 느끼며 석율이 자신에게 했듯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장그래 내 거야. 너랑 결혼해도 못 나눠 가져. 그러니까 양보해, 너는 걔 아니어도 되잖아."

"아니 갑자기 찾아와선... 뭐야? 얼굴이 왜 그모양이야? 너 울었니?"

"신경 꺼. 생각이 바뀌었어. 아니, 나 다른 인간이 된 것 같아. 아무튼 너랑 같이 살 집에도 못 데려가. 너나 나나 곧 회사 그만두고 그 결혼 해야되니까 그냥 빨리 알았다고만 말해."

"야, 나가. 나 내일 일찍 출근해야돼. 한밤중에 머리를 산발을 하고선 문을 두들기고 있어. 가, 빨리."


석율은 그래를 집에 데려다주자마자 영이가 가끔 들르는 오피스텔로 차를 몰았다. 출입구에서부터 인터폰으로 빨리 열라고 재촉한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쿵쿵거리며 문을 두드린 것이다.


"회사 그만두면 너 다시 외국 나가고 싶어하는 거 아니었어? 아예 거기서 자리를 잡는 거 어때? 삼정물산 미국지사 좋잖아, 그거 너 달라고 해."


지겨운 야근 끝에 돌아와 이제 막 잘 준비를 마친 영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로 석율을 바라보았다. 쟤가 저렇지 않았는데...


"날더러 결혼이나 해주고 미국으로 꺼지란 소리야? 무슨 일인데 그래?"

"약속해, 아니 맹세해라 너. 장그래는 나랑만 있을 거야."


하, 영이는 코웃음을 쳤다. 그 한석율이 갑자기 찾아와서, 어느날 문득 사랑에 눈뜬, 근데 반쯤 정신이 나간 것 같은 로맨티스트처럼 우기는 모습이 혼자서는 보기 아까운 광경이었다.


"한석율, 이건 말이 너무 다르잖아. 나도 장그래씨가 갖고 싶다고 그랬잖아? 어떻게 하루아침에 포기해, 내가 확 손대 버릴거야."


그녀가 장난처럼 웃으며 말해도 장난이라고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석율은 알았다. 그는 정색하고 영이를 내려다보며 말을 띄웠다.


"그건 우리 결혼해서 장그래를 나누자고 너를 꼬셔서 설득해도 별 생각이 없던 시절 얘기지. 내가 장그래를 감춘다고 네가 이 결혼 안 할 수 있어? 너나 나나 회사 가진 부모님 밑에서 별 수 없잖아? 너 장그래랑 아무 것도 없잖아. 걔 건드리지 마. 나 분명히 말했어."

"한석율,"

"그 외에 아무것도 너한테 터치할 생각 없어. 미국에 가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나 걔한테 더 상처주고 싶지 않아. 아직도 날 완전히 못 믿는 애야. 그러니까 네가 다 없던 일로 해줘."

"너 걔랑 진짜 사랑한다고 생각하는거야?"

"착각 아니야. 너는 모르겠지만. 나도 너처럼 알고 싶지 않아해서 몰랐어. 나 장그래 사랑해."


이건 무슨... 하고 중얼거리는 영이의 앞에서 다시 문이 닫혔다. 할 말이 끝나자 망설임없이 돌아선 석율은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엘리베이터에 다시 올라탔다.
















조바심을 내며 회사에 왔는데 석율은 외근을 나가고 없었다.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 읽지 못했던 문자를 보며 그래는 얼마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당분간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좀 쉴 생각이었다. 없는 듯이 그림자처럼 앉아서 일을 하고, 생각도 없지만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일어섰다.


"그래씨. 저 좀 봐요."


며칠만에 제대로 얼굴을 마주하는 영이였다. 안영이를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는 일어서서 그녀를 따라 나갔다.









"그래씨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나오자고 했어요. 시간 괜찮은거죠?"

"네. 무슨 얘긴데요?"


아...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돼. 영이는 잠시 고민했다. 그래의 하얀 얼굴, 이마 위에 흩어진 검은 머리칼, 그 밑의 동그란 검은 눈, 빨간 입술. 애처롭게 꼬리를 흔드는 하얀 강아지같은 저 얼굴을 보고 있으면 하려던 말도 못 할 것만 같다. 영이는 뒤돌아 난간을 짚었다.


"갑작스럽겠지만 본론부터 바로 말할게요."

"네, 말씀하세요."

"한석율씨가 나랑 장그래씨 나눠갖자고 한 거 알아요? 내가 결혼하는 걸 너무 싫어하니까, 좋은 미끼를 줘서 순순히 따라오게 설득하려고. 물론 내가 힘으로 진작에 그래씨를 가질 수도 있었겠지만, 계약을 하면 평생 질릴 때까지 가질 수 있으니까. 그걸 알고 나한테 말한 거예요."

"예? 무슨 말인지... 영이씨가 왜, 아니 결혼이라뇨?"

"한석율씨한테 못 들었어요? 그사람이랑 결혼하는 알파가 나예요."

"석율씨랑 결혼하는... 우성알파가,"


머리가 멍해졌다. 그래는 순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인가 생각했다. 이게 무슨 말이지...


"나라구요. 안영이요."


옥상에 처음 맡아보는 들장미의 진한 향기가 퍼졌다. 그래는 눈앞에 서 있는 여자가 우성알파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어찔한 충격에 그래는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아무렇게나 털썩 앉은 채로 올려다보는 영이의 얼굴은 전과 다르게 위압감을 주었다. 지금 안영이는 심기가 아주 불편했다. 몇 년 전 자신이 사랑한다고 생각했었던 삼정물산의 말단 오메가 직원이 그래의 얼굴에 겹쳐 보였다. 


"장그래씨한테 한석율이 그래요?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그를 짓누르는 향기를 견디기도 힘든데 갑자기 말투까지 바뀐 영이를 보면서 그래는 말을 더듬었다.


"영, 영이씨. 저는 영이씨가 알파, 알파인 줄 몰랐어요. 석율씨도 그런 말이 없어서,"

"한석율이 장그래씨 당신한테 한 말을 믿어요?"

"전... 믿는 것 같아요... 죄송한데 저 코 좀 막을게요..."


급하게 손수건을 꺼내드는 그래를 내려다보며 영이는 전에 없이 차갑게 말을 이었다.


"한석율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그저 욕망할 뿐이야."


영이 역시 한때는 낭만적인 사랑을 믿던 아가씨였다. 시작은 본능적 욕망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 오메가가 자신을 실컷 이용하다가 들켜서 떠난 이후로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 틀렸다고 믿는 채로 살아왔다.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풀냄새를 풍기는 장그래라는 오메가를 어쩐지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떻게 되나 지켜보자는 마음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웃는 얼굴을 볼 때는 어쩐지 기분이 좋았고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세상에 더럽혀지는 얼굴을 보면서는 역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끝날 줄 알았는데 자신보다 더하다고 생각했던 한석율이 이 오메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다니. 


"우성알파의 본능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면 곤란해. 우리가 알파중에서 우수한 개체들로 분류된 건 사실이지만 머리로 생각도 하기 전에 페로몬에 반응부터 하도록 만들어진 건 똑같으니까. 아무리 아닌 척, 귀족인 척 하고 앉아 있어도 당신이 누구건간에 그 냄새만으로 이미 그쪽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리고 싶어지는 짐승들일 뿐이야. 본능을 억누르며 고상한 척 해 봤자 결국 정해진 대로 이끌리고 있는 거라고. 장그래씨 당신 같은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난 아냐. 한석율은 단지 처음으로 쉽게 손에 들어오지 않는 당신이 신기해서 착각하고 있을 뿐이지. 우리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어. 사랑인지 욕망인지 구별할 능력조차 없으니까."


왜 자신이 품고 있던 분노를 눈앞에 주저앉은 오메가에게 쏟아내는지 영이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 장그래는 지금 당장 망가뜨리고 싶을 만큼 너무 예뻤다. 그래, 이 본능만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감정이잖아. 영이는 허리를 숙여 그래의 팔을 잡아올렸다.



"따라와, 장그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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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비축분의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