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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쩜디

[미생][원인터X장그래] 미생 오메가버스 12


미생 오메가버스 12


원인터내셔널X장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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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길티 플레져











"아무...일도 없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머리를 산발한 두 남자가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방금 잠에서 깬 그래는 상황 파악이 덜 돼서 얼떨떨한 상태였고, 역시 조금 전 일어난 것처럼 얼굴이 퉁퉁 부은 하대리는 걸터앉은 채로 그래에게 물 한 잔을 내밀었다.


"하대리님... 여기 어디예요?... 제가 왜..."

"야, 너는 정신이 있냐?"


갑자기 그가 그래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래는 놀라서 입에 있던 물을 삼키다 사레가 들려 켁켁거렸다. 하대리는 큰 손으로 기침하는 그래의 등을 퍽퍽 내려치며 말을 이었다.


"어디서 정신빠져가지고 술을 있는대로 쳐마시고 주정을 부려? 야 너 내가 길바닥에 두고왔으면 지금 무사히 눈 떴을거 같아?"


여기 우리집이야! 하대리의 말에 그래는 눈만 슬쩍 들어 방 안을 둘러보았다. 혼자 사는 것 같은 아담한 아파트. 그래는 속옷 한 장만 입고 이불에 묻혀 있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대리님... 근데 저는 왜 옷을..."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니가 집이 어딘지도 모르고 나자빠졌고, 김동식은 전화도 안 받아서 내가 들쳐메고 왔다고!"

"감사합니다... 혹시 제가 토했나요? 너무 죄송해서... 어젠 제가 진짜 죄송했습니다."


하대리는 그래에게 몸을 홱 돌려 일어났다. 옷장으로 걸어가 옷걸이에 곱게 걸린 그래의 옷을 빼내 침대 위로 던지는 그의 귀가 붉어져 있었다.


"미안하다."

"네?"

"사실 내가 나쁜 놈이야. 너... 안 토했어. 옷은 내가... 너랑 집에 왔는데. 내가 못 참겠어서. 근데 진짜 그... 안 했으니까."


그래도 덩달아 얼굴이 빨개져 재빨리 이불로 몸을 가렸다. 


"하나도 기억 안 나냐?"


그의 말에 그래는 기억을 더듬었다. 접대를 하고, 하대리에게 끌려나오고, 혼나고, 그리고...


"히익."


이불을 더 올려 입술까지 덮어버렸다. 화장실에서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무튼... 내가 못 참았다. 사실 집에 데려와서는 너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잘 보니까 넌 그냥 정신줄을 놨더라고. 미안하게 됐으니까... 근데 내가 너 재워줬잖아 그래도. 그러니까 너도 그냥 잊어주라."


평소에 그래가 겪은 무섭던 하대리가 아니었다. 진심어린 미안하다는 말을 들은 것도 처음이었다. 반팔티와 추리닝 바지를 입고 선 채로 하대리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중얼중얼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눈길을 피하지는 않았지만 부딪치는 시선에는 그래를 향한 어떤 경멸이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무책임함 같은 건 담겨있지 않았다. 


하대리는 그래가 대충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포장된 속옷을 던져 주었다. 


"셔츠는 회사 가서 갈아입어. 내 꺼 줘봤자 맞지도 않고, 지금 너네 집이 어디든 들렀다 갈 시간 없으니까. 그리고 오차장님께 출근하자마자 죄송하다고 꼭 얘기해라."

"감사합니다."


며칠 전까지도 알파들과는 속상한 일만 있었던 그래는 오늘은 왠지 평범한 베타라도 된 기분이었다. 바보처럼 미소지으며 그대로 일어서려다 자신이 팬티 한 장만 달랑 입은 걸 깨닫고 이불로 몸을 둘둘 말았다. 그래가 하는 양을 빤히 지켜보던 하대리는 피식피식 웃으며 방 밖으로 먼저 나갔다.









"내 동생이 오메가야."


두 사람 모두 씻고 정장을 제대로 입은 채였다. 거울 앞에서 괜히 긴장해서 넥타이를 매려던 그래의 손에서 타이를 가져간 하대리는 그대로 그래의 목에 매주며 말을 꺼냈다.


"뭐... 꼭 가족에 오메가가 없더라도, 너네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는데. 어제 그렇게 내가 화낸것도, 우리 입장이 어떻게 되어서 그랬다기 보다는 그냥 내 동생도 밖에서 어쩔 수 없이 그러고 다니겠지 싶어서. 그래서 그런 것 같다."


그래는 하대리의 가슴팍만 쳐다보며 눈을 내리깔았다. 타이를 다 맨 하대리의 손이 아직 물기가 촉촉한 그래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마음 같아선 그런 데 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안 되나요."


하대리는 대답 대신 씁쓸하게 웃었다.


"너네 팀 천과장님이 최전무 라인이야. 그분한테 잘 하면 득되는 게 있을거다. 그리고 철강팀 강대리는 윗사람들 인맥도 짱짱할 뿐더러 회사 내 신뢰도도 엄청나니까,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네, 압니다."

"그냥 동생 보듯이 봤는데. 너 냄새 맡을 때마다 못 참겠어서 더 화 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알파야."


한 번만 키스하면 안 되냐. 조용히 물어오는 말에 그래는 눈을 감았다. 닿아오는 입술이 너무 따뜻해서 마음이 아파졌다.











"정말 죄송합니다 차장님. 제가 적당히 일어섰어야 됐는데... 차장님, 김대리님, 정과장님, 하대리님... 다 힘들게 고생하신 일에 제가 먹칠했습니다."


출근하자마자 그래는 오차장의 책상 앞에 서서 사죄했다. 한없이 쭈그러든 그래를 빤히 바라보던 오차장은 한숨을 쉬었다.


"다음부턴 그러지 마. 네가 나설 자리도 아니었고, 최부장이 무식한 짓 한 것도 맞아. 그리고 너! 네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그냥 주는 일이나 잘 끝내. 그게 니가 여기서 할 일이다."


그래를 다그치듯 혼낸 오차장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김대리와 천과장도 긴장한 듯 표정을 굳혔다.


"이번 건만 끝나면 회식하자! 넌 빨리 자리 가서 일 해."


싱겁게 끝난 오차장의 말에 그래를 뺀 팀원들은 씩 웃으며 등을 돌렸다. 그래 역시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제가 잘못했으니까 커피 돌리겠습니다... 목소리가 꾸물꾸물 기어나왔다.

 









"장그래, 오랜만이야."


저 눈웃음을 상대할 기분이 아니었다. 말없이 커피를 타는 그래의 등 뒤에서 얼쩡거리며 석율은 그래의 기색을 살폈다.


"나 장그래한테 할 말 있는데."

"하세요..."

"여기서 할 얘긴 아니고. 이따 저녁때-"

"한석율씨 집 안 가요."

그래와 탁자 사이로 기어이 비집고 들어온 석율이 웃으며 그래의 양 볼을 손으로 감싸 눌렀다.

"집 말고. 밖에서 맛있는 거 먹자."


볼에서 손이 떨어져 나가자 그래는 잠시 생각하다 석율의 시선을 피하며 작게 말했다.


"...대신 집에 일찍 갈 거예요."

"네, 네, 장그래씨. 그럼 열심히 일 해."


석율이 나가고 그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대화만 나누는 건데도 항상 지는 기분이 들었다. 애써 계산해서 대답을 해도 여유 넘치게 받아치는 태도가 얄미웠다. 손자국이라도 남은 것처럼, 큰 손이 한가득 쥐었다 놓은 양 볼이 화끈거렸다.











"...한 대 필래요?"

"아니요."


셔츠를 갈아입고 잠시 바람을 쐬러 벤치가 있는 곳으로 나오자마자 그래는 불편한 사람을 또 마주쳤다. 아 진짜 회사가 무슨 정글같아... 담배를 물고 있던 백기는 그래를 향해 떠보듯이 담배 케이스를 내밀었다. 며칠만에 제대로 마주하는 얼굴이었다.


"장그래씨 얼굴이 까칠하네요. 일이 많은가봐요?"

"......"


입술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기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백기는 이익을 위해 몸을 섞은 사람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처음으로 자신이 철저히 욕망만으로도 누군가와 잘 수 있다는, 오메가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게 한 사람이었다.


"그... 너무 어색해 말죠 우리. 사실 요 며칠동안 좀 지켜봤는데, 장그래씨 안색이 너무 안좋아서요. 혹시 나때문에 마음이 안좋은가 해서..."

"그런거 아니에요. 장백기씨는, 장백기씨는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전 그냥,"

"없었던 일로 하고 싶은 거 아닌가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저한테 신경 써주지 마세요."


백기는 그래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연기를 내뿜었다. 그래 쪽으로 흘러가는 연기는 손을 휘휘 저어 쫓아버렸다.


"저번에 그렇게 말해서 미안합니다, 장그래씨."

"네?"

"마음이 바뀌었어요. 신경이 쓰이거든요."


그래는 잠시동안 백기의 눈을 마주하며 서 있었다. 그래와 계속 눈을 맞추며 담배를 피우는 백기의 시선은 흔들림이 없었다. 먼저 눈길을 피한 것은 그래였다.


"죄송하지만 저는 그런 말 들으면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음... 장그래씨가 꼭 뭘 어떻게 해야하는 건 아닙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제가 착각하게 놔두지 마세요."


백기는 그냥 웃었다. 어딘지 모르게 예전보다 가볍고 솔직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백기는 재떨이에 담배를 던져 넣고 회사로 통하는 유리문을 당겨 열었다. 그리고 그래가 먼저 들어가도록 비켜 섰다.


"들어가죠. 날도 추운데."












점심시간이 되자 그래는 어김없이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 화장실 칸 안으로 몸을 숨겼다. 같이 먹을 사람도 없는데 팀원들이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싫었다. 나가서 뭘 사먹을지 고민하며 사람들이 전부 식당으로 내려가길 기다렸다. 변기 뚜껑을 내리고 앉아서 핸드폰만 이리저리 만지는데 조용해진 화장실 안으로 익숙한 목소리의 두 사람이 들어왔다.


"차장님, 장그래 말이에요. 어제 집에 잘 들어갔는지 모르겠어요."

"무슨 소리야. 직접 물어보지, 왜."


김대리가 망설이듯 말을 꺼내자 그래는 입을 틀어막고 변기 발이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치켜들었다.


"그... 어제 자리 파하고 곧바로 하대리가 데리고 나갔거든요. 그러고서 둘이 안 돌아왔어요. 하대리가... 알파잖아요."


오차장은 말없이 김대리를 쳐다보았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단번에 눈치챈 듯 했다.


"...잘 들어갔겠지. 장그래가 어린애도 아니고."

"장그래는 꼭 어린애 같잖아요. 저한테 하대리가 몇 번이나 전화를 했었는데 제가 못받아서... 아, 제가 집에 보냈어야 했는데. 오늘 아침에 다시 전화를 했는데 장그래 집을 몰라서 전화했었다고 그러더라구요. 집에 데려다줬냐니까 대충 얼버무리구요. 그럴 성격이 아닌데."

"넌 뭘 그런 걸 신경써. 걔가 알아서 할 일이야."


오차장의 냉정한 말에 그래의 코끝이 시큰거렸다.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입술은 이미 삐죽삐죽 튀어나왔다.


"그건 그런데... 장그래가 세상 물정도 모르고 물러 터져서, 약아빠지지도 못해서 이리저리 치이다가 맘다칠까봐 그러죠. 지금까지 봐온 오메가들이랑은 좀 다르잖아요."

"장그래도 오메가야. 세상 무서운 건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래도요. 하필 한석율을... 한석율 뿐만이 아니라... 좀 얘기 나눈다 싶은 신입들은 다 알파고. 그리고 차장님, 차장님만 알고 계셔야 돼요... 저희 팀이 걱정돼서 그러는데..."

"뭔데, 빨리 말해."


두 사람이 손을 씻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물소리가 나는 동안 김대리는 말을 어떻게 할 지 고심하는 듯 했다.


"유대리가 저한테만 말한건데, 퇴근하면서 주차장에서, 천과장님이랑 장그래가 같이 차 타고 나가는 걸 봤대요."

"...차 태워줬나보지. 같이 야근했잖아."

"차장님... 뭔지 아시잖아요."

"동식이 넌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건데."


그래는 너무 놀라 가슴이 쿵쿵 뛰었다. 역시 회사에는 비밀이 없었나보다.


"저는 걱정돼요. 장그래가."

"넌 니 걱정이나 해. 가자, 오늘 참치김치찌개라고 아까 고과장이 그러던데."

"차장님은 장그래한테는 참 냉정하세요. 혹시... 아직도 은지씨 때문에 그러세요?"

"아, 거 참! 왜 그 얘긴 꺼내?"


화를 버럭 내는 오차장의 발소리가 뒤를 쫓아가는 김대리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멀어졌다. 그래는 변기 위에 멍하니 앉아 방금 본의아니게 엿들은 대화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은지씨? 은지씨가 누구야.


"아아아...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회사에 보는 눈이 많다는 걸 왜 신중히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래는 사무실에서 나름대로 아무렇지 않게 천과장을 대해왔지만 앞으로는 더 신경쓰일 것이 뻔했다. 흔히 있는 일이라고 해도 동식과 오차장이 자신에게 실망할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 길이 없는데도.













석율의 차가 바뀌었다. 그래에게 조수석 문을 열어주며 석율은 눈을 찡긋했다.


"우리 장그래 때문에 내가 차도 바꿨잖아."


그렇게 차를 걷어차도록 화나게 만든 건 니가 처음이야. 장난스럽게 덧붙이는 말에 그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무언가 자포자기하듯 살아온 요즘이었다. 하지만 직접 안전벨트를 매어주는 손길에는 몸을 움찔거리거나 어색하게 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애를 써야 했다.



횟집 룸에 앉아 차례로 나오는 코스 요리를 먹는 중이었다. 계속 음식을 집어주며 중요한 얘기는 꺼내지 않는 석율 때문에 초조해진 그래는 결국 먼저 말을 꺼냈다.


"할 이야기가 뭔데요."


석율은 참치회 한 조각과 무순을 지극히 올바른 젓가락질로 집어 그래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나 결혼해."


입 안에서 물컹거리는 무언가가 씹히는 듯 했지만 그래는 맛을 느끼지 못했다. 씹는 걸 멈추고 그냥 멍하니 입을 다물었다. 빨간 입술 밖으로 초록색 무순이 삐져나온 걸 쳐다보며 석율은 말을 이었다.


"당장은 아니고, 약혼 먼저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적어도 몇 달은 걸릴 건데, 아무튼 그렇다. 집안끼리 정해서 하는 결혼이야."

"......"


저보고 어떻게 하라구요? 머릿속에 생기는 물음을 입 밖으로 내지도 못하고 애써 입을 움직여 음식을 씹었다. 겨우 음식을 꿀떡 삼키고 가슴이 답답해 찻잔을 집어들었다.


"나랑 같이 살자. 나 결혼하면."


풉-! 진짜로 놀라 입안에 든 차가 잘못 넘어가 버렸다. 사레가 들려 콜록대는 그래의 옆자리로 급히 다가와 앉은 석율이 그래의 등을 두드렸다. 그가 건네준 물수건으로 입을 닦은 그래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석율에게 물었다.


"석율씨가 결혼하는데 왜 저랑 같이 살아요."

"무슨 뜻인지 몰라? 나 우성알파랑 결혼하는 거야."

"그러면..."

"계약서는 최대한 너에게 맞춰서 잘 써줄게. 평생 힘들지 않게 살 수 있게 해줄테니까, 나랑 같이 살면서 내 아이는 그래 네가 낳아줘."


그래는 눈앞이 뿌얘지는 걸 느끼며, 울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눈에 힘을 주었다. 석율의 시선을 피하자 상 위에 놓인 도미탕수가 눈에 들어왔다. 노랗게 튀겨진 도미 눈알과 눈이 빨개지도록 눈씨름을 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석율이 손으로 닦았다.


"왜 울어. 좋아서? 나도 좋다, 너 평생 내 옆에 데리고 살 생각하니까."


고귀하신 분들이 결혼할 때는 으레 그렇게 한다. 그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일이 되어 다가오니 참을 수 없이 비참한 기분이었다. 다른 오메가들은 안 그럴텐데, 다들 평생 없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좋아할텐데 왜 자신은 이렇게도 세상 물정을 모르는 별종이어서 서러움에 눈물이 나는지 참 스스로가 한심했다. 혼인신고서가 아닌 계약서를 쓰고 물건처럼 골라져서 팔려가는 거였다. 아무리 좋게 포장하려 해도 그랬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부부는 석율과 우성알파 배우자일 것이고, 자신은 모두가 그 존재를 알겠지만 그럼에도 공공연히 나설 수 없이, 바깥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살면서 씨받이나 되는 것이다. 성욕을 채워주는 것도 맡아서 하겠지. 물론 석율이 밖에서 다른 오메가들을 만나 욕정을 채워도 자신은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입장일 것이다.


"왜...왜 저를 데려가고 싶어요?"

"넌 예쁘고 순진하니까."


석율의 손에 뜨거운 눈물이 묻었다. 석율은 그래가 보이지 않게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그래가 진짜 내 애인이겠네. 네가 하고 싶어했던 거잖아. 그래, 내가 널 좋아하니까 데려가는 거야. 그렇지?"


달래는 듯한 말투에 그래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몸이 떨렸다. 웃음이 나와 울면서 피식피식 웃었다. 와, 저 그럼 진짜 행복하겠네요? 비꼬는 말투에도 석율은 웃음을 잃지 않고 대꾸했다.


"그럼. 나랑 이렇게 살지 않으면 네가 밖에서는 행복할 수 있으려고?"


그래의 몸이 석율을 향해 돌려지고, 벽에 등이 닿았다. 힘없이 몸을 늘어뜨린 그래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석율의 입술이 닦았다. 입술이 입술을 감싸며 조용히 시간이 흐르고, 그래의 붉어진 눈가를 내려다보며 석율이 속삭였다. 부탁이니까 지금 당장 거절하지 마.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한 뒤에 말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