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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쩜디

[미생][원인터X장그래] 미생 오메가버스 11


미생 오메가버스 11


원인터내셔널X장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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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길티 플레져









자원2팀 정과장, 하대리와 영업3팀 오차장, 김대리가 함께 바이어를 접대하게 되었다. 자원팀과는 별로 사이가 좋지 못했지만 영업3팀이 단독으로 진행하던 프로젝트에 자원부 마부장이 숟가락을 얹으면서 자원2팀이 합류하게 된 것이다. 영업부 김부장 역시 최전무의 압박으로 허락한 일이었고, 오차장은 이미 이렇게 된 거 실적이나 올리자고 김대리를 토닥였다. 접대 전에 있는 회의의 서기로는 그래가 따라붙었다.


"야, 여기 이 얘기가 아니었잖아. 너 똑바로 못 해?"

"죄송합니다, 대리님."


회의가 끝나고 이동하기 전 바이어들과 오차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자원팀 하대리는 그래를 매섭게 꾸짖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있던 그래는 자신의 옆에 서서 윽박지르는 하대리 앞에서 몸을 움츠렸다. 키보드를 두드려 틀린 내용을 수정하며 그래는 하대리의 잔뜩 성난 듯한 무서운 입매를 힐끔힐끔 곁눈질했다.


"뭘 봐. 너 바보냐? 멍청이야? 이런 것 하나 제대로 못해?"


충혈된 눈을 비비며 드링크 뚜껑을 돌려 따던 김대리가 입을 열었다.


"하대리, 장그래가 원래는 잘 하는데. 긴장했나봐. 장그래, 다음엔 잘 해. 내가 사수인데 뭐가 되겠어."

"죄송합니다 김대리님..."

"야 김대리, 아니 나는 너를 탓하는게 아니고. 너야 잘 가르쳤겠지. 근데 정신 빠진 게 보이잖아."


하대리는 씩 웃으며 동식에게 받아쳤다. 입사동기인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아 보였다.   


가뜩이나 알파인 하대리 앞이라 주눅들었던 그래는 노트북 너머로 눈치를 살피며 일을 마무리했다. 혼난 부분 말고는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이미 성사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건이니 오늘 접대만 별 일 없이 마무리된다면 잘 끝날 일이었다.








룸에서 술자리가 거하게 벌어졌다. 원인터에서 과장, 차장이 둘 다 나온 자리인만큼 중요한 자리라는 뜻이었다. 외국계 기업의 바이어 두 명과 원인터 사원들 옆에는 각각 텐프로들이 한 명씩 붙어앉아 연신 잔에 술을 채웠고, 양주가 몇 병이나 비워졌다. 베타인 정과장과 김대리, 바이어 한 명을 제외한 알파들의 곁에는 오메가가 앉아 있었다. 그래만이 혼자 앉아 술을 따랐다. 술자리 분위기는 익을 대로 익었고 모든 게 잘 흘러가는 듯 했다. 그래는 애써 분위기를 맞춰 웃으며 술을 마셨다.


"아이, 왜 이렇게 술을 못 따라?"


알파 바이어의 곁에 앉아 있던 아가씨가 술을 넘치게 따르자 그는 면박을 주며 손에 흐른 술을 닦았다. 테이블에 놓인 티슈를 뽑던 그의 시선이 방 끝에 찌그러져 있는 그래에게 가 닿았다. 바이어는 거하게 술이 오른 얼굴을 쓸며 그래에게 손짓했다.


"너는 왜 거기 혼자 있어? 이리 와서 앉아봐."


예? 무슨 뜻인지 몰라 쭈뼛쭈뼛 일어난 그래에 앞서 오차장이 웃으며 바이어에게 술병을 기울였다.


"하하, 최부장님 많이 드셨습니다. 저 친구는 여기 직원이 아니고 저희 사원 장그래씨입니다."

"아 그래요? 아무리 봐도 오메가처럼 보이는데, 정말 사원입니까?"


풀어진 눈으로 넥타이를 끄르며 바이어는 계속해서 그래를 곁눈질했다. 


"거기 친구가 한 잔 따라보지."


오차장이 따라준 술을 한 입에 털어넣은 그는 소파에 퍼져 앉은 채로 그래에게 손짓했다. 오차장은 애써 웃으며 그래를 돌아보았다. 그래는 얼른 상석으로 다가가 양주병을 집어들었다.


"원인터내셔널 영업3팀 장그래라고 합니다."


바이어는 공손하게 병을 잡은 그래의 두 손을 턱 움켜잡았다. 넘치듯 채워진 잔을 다른 손으로 집어들며 그는 그래의 허리를 끌어당겨 옆자리에 앉혔다.


"어, 젊은 친구가 아주 사회생활 잘 할 것 같구만. 회사에서 일은 잘 하나?"

"예, 예... 부족하지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 장그래씨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확실히 있을 것 같아."


허리를 파고드는 손 때문에 몸을 움찔하며 그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뿌리치고 일어나기라도 하면 분위기가 깨질까봐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그, 그래씨, 술 올렸으면 다시 이쪽으로 오지."


정과장이 당황한 표정을 감추며 그래를 불렀다. 일어서려고 했지만 바이어가 놓아주지 않았다.


"오차장님, 오늘 자리가 아주 훌륭합니다. 역시 원인터입니다. 특히 이 친구가... 이 쯤에서 마무리 하고 여기 젊은 친구와 술 한 잔 더 하고 싶은데요."


부정확한 발음이었지만 바이어가 원하는 바는 명확히 전달되었다. 김대리는 굳어서 잔을 내려놓았고, 정과장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오차장의 눈치를 살폈다.


"...최부장님. 장그래씨 역시 저희와 같이 일하는 사원입니다. 그리고 일개 사원을 어떻게 부장님과 따로 술자리를 하도록 하겠습니까."

"부장님, 오늘 물이 좀 안 좋은것 같지 않으십니까? 다시 초이스 하시죠."


굳은 표정의 오차장이 바이어에게 대답하자 하대리도 크게 웃으며 거들었다. 


"아아, 난 괜찮아요. 이친구도 사회생활을 좀 배워야지. 장그래라고 했나? 오메가지? 어떻게 해야 회사에서 이쁨받는지 내가 가르쳐 줄 테니까,"


그는 그래의 몸을 감싼 채로 술이 가득 채워진 스트레이트 잔을 들어 그래의 입술로 가져갔다. 자, 한 잔 해야지. 그래는 거부할 틈을 주지 않고 입 안으로 들어오는 액체를 힘겹게 받아 마셨다. 입술 밖으로 잔뜩 흘러 턱을 타고 내려오는 술방울을 최부장이 손으로 천천히 쓸었다.
















"예?"


영이는 할머니 앞에 서서 되물었다. 영이가 놀란 얼굴로 되묻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가죽소파에 편안히 몸을 기대고 있던 가족들 역시 조금은 긴장한 표정으로 몸을 바로 세웠다.


"못 들었니. 결혼하라구."

"아니... 그건 알겠는데요 할머니, 누구요?"

"그랜드호텔 외아들. 한석율이."


영이는 몸을 돌려 도와달라는 듯이 가족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그녀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삼정그룹 안회장의 말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이 집안에 없었다. 영이가 무엇을 하든 신경쓰지 않던 안회장이 갑자기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게 이상했다.


영이는 숨을 들이마시고 일단 자리에 앉았다. 


"할머니. 왜 한석율이에요?"

"한석율이 그놈은 우리 영이를 주기는 아깝지. 유학시절부터 소문난 놈이니까. 그래도 우성알파 자식이 결혼 안 하고 남아있는 집은 몇 없다."

"아니... 위에 언니 오빠들 다 우성알파들이랑 결혼했잖아요? 왜 저까지 그래야해요. 저는 싫어요. 사랑 없는 결혼은 상관 없지만, 저는 권력다툼에 끼고싶지 않아요. 오메가나 한명 데려와서 제 자식 낳고 살래요."

"내 돈 쓰면서?"

"......"


"너 언제까지 원인터내셔널 다닐 수 있을 것 같니. 우리회사에 삼정물산 있는거 뻔히 다들 아는데. 지금까지는 김회장 친분으로 거기 엉덩이 붙이고 있을 수 있었던 줄 알아라. 네가 할미한테서 벗어나면 지금처럼 살 수 있겠니? 영이 너 미국 MBA도 안 하겠다 그러고, 취미로 공부나 하면서 회사 들어가서 노는 거 다 안다. 내 밑에서 밥 얻어먹고 싶으면 너도 밥값을 해야지. 어딜 오메가 따위랑 놀면서 살 생각을 해?"

"오메가 따위니까 제가 데려와서 맘대로 살아도 집안에 해 끼칠 일 없잖아요. 저는 상사 일이 재밌어요, 할머니. 그리고 한석율이 아무리 혈통 좋은 우성알파라고 해도 걔랑 결혼하기는 제 자존심이 상해요."

"어차피 다 집안끼리 엮이는 거 뻔히 아는 일이야. 너 다시 경영 수업 받고, 삼정물산에 자리 비워 둘 테니까 들어가서 너 좋아하는 상사 일 많이 하렴. 더 할 말 없다."

"할머니! 전 나이도 아직 어리잖아요!"

"지금 우리한텐 그랜드호텔이 필요하다. 들어가마."


안회장은 금테 안경을 고쳐 쓰며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영이는 머리를 헤집으며 속으로 욕을 씹었다. 내 인생이 왜 갑자기 꼬이는거야. 누구도 내 옆에서 내인생에 관여하게 둘 수 없는데. 













그래는 그대로 스트레이트 잔을 다섯 잔 정도 받아 마시고 몸도 가누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룸은 텐프로들이 춤추며 부르는 노랫소리로 시끄러웠지만 바이어들이 있는 쪽을 빼고는 분위기가 싸늘했다. 최부장은 이미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술에 취해있었다. 


"동식아, 대리 불러라."


정과장은 겉옷을 입으며 김대리에게 지시했다. 다들 술에 취해있었지만 정신 못 차릴 정도는 아니었다. 오차장은 술에 취해 붉어진 눈으로 그래와 바이어가 앉아있는 쪽을 노려보았다. 완전히 취해 나가떨어진 최부장이 그래에게서 손을 떼자, 하대리가 일어나서 그래를 일으켜 잡아끌었다.

룸에서 멀리 떨어진 복도까지 끌려나온 그래는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정신은 아직 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하대리님..."

"야, 이 머리 텅텅 빈 새끼야. 니가 왜 거기 앉아서 술을 따라?"


아오, 이걸 그냥. 발길질이라도 할 것 같은 하대리의 기세에 그래는 머리를 감싸안으며 몸을 웅크렸다.


"누가 너한테 그딴 거 하라고 시켰어? 적당히 하고 일어나야지 왜 거기 앉아서 술을 쳐먹고 있냐고!"

"하대리님... 저, 제가 어떻게 해요..."


저도, 저도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어서 그냥 있었던건데... 횡설수설하는 그래를 하대리는 한심하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야, 멍청한 새끼야, 아 이 새끼 존나 병신이네. 니가 우리 다 병신 만든 건 아냐? 우리가 접대한다고 씨발 직원이 나서서 몸팔아야 되는 줄 알아?"


하대리는 손에 들고 있던 그래의 재킷을 머리 위로 내던졌다.


"너는 씨발, 오차장님이 포주야? 이 새끼야, 화장실을 쳐 간다고 하든 뭘 씨부리든 일어났어야지."


안 그래도 새빨개져 있던 그래의 뺨이 더 빨개졌다. 다른 곳은 핏기가 가셔 새하얘졌다. 그래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말을 더듬으며 하대리를 올려다보았다.


"대리님, 죄, 죄송합니다... 저는, 저는 제가 그래야 되는 줄 알았어요... 참아야 되는 줄 알았는데... 죄송합니다..."

"일어나."


하대리는 재킷을 껴안고 주저앉은 그래의 팔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래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대며 하대리에게 기댔다. 키가 작아서, 키도 덩치도 큰 하대리의 가슴팍에 코가 닿았다.


"너 이 새끼 나한테도 끼부리냐? 야, 정신 똑바로 못 차려?"

"대리니임... 못 걷겠어요..."

"야, 입 열지 마. 입 열지 말라고. 너한테서 존나 냄새나 지금, 알어? 너 집에 가다 어디 잡혀가고 싶냐? 입 다물어."

"제가 잘못했습니다 대리님..."

"정신줄 챙기라고! 난 너 길에 그냥 두고 갈 거니까. 새끼가 빠져가지고."

"저 일 잘 했는데요... 서기 잘 했는데... 김대리님이 잘 했다고 하셨습니다..."


술기운이 몰려와 그래는 정신을 못 차리고 횡설수설했다. 하대리는 어이가 없어 픽 웃다가 또 화가 치밀어 그래의 허리를 들어 옆구리에 꼈다. 하얀 대리석이 깔린 깔끔한 화장실로 들어선 그는 그래를 세면대에 던지듯 앉히고 찬물을 틀어 얼굴에 끼얹었다.


"야, 야! 장그래! 정신 차리고 집 주소 말해. 너 길에서 죽고싶냐?"


큰 손이 자비없이 그래의 뺨을 찰싹찰싹 내리쳤다. 그래는 고개를 휘청휘청거리며 알 수 없는 말만 중얼중얼 내뱉었다. 하대리는 동식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은 동식은 바이어들을 배웅한 뒤 이미 택시에서 정신줄을 놓은 후였다. 열불이 나서 전화를 끊는 하대리의 어깨에, 세면대에서 몸을 휘청거리던 그래가 이마를 기댔다.


"저도 싫었는데... 부장님이 저 여기랑 여기 다 막... 막 그랬는데..."


그래의 재킷이 맨질맨질한 바닥으로 떨어지고, 와이셔츠 차림을 한 팔이 하대리의 어깨 위로 툭 얹어졌다. 


"안 떨어져? 아, 씨발. 아오 씨. 집 어디냐고!"


아 이 새끼를 어떻게 혼자 모텔에 두고 가. 존나 누가 갖다 팔면 어떡해. 하대리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헤집다가 자신의 어깨에 기대 흑흑대기 시작한 그래를 내려다보았다.


"아 존나 골때리네. 너 우냐? 아 축축해. 아."


하대리는 손을 들어 자신의 코를 틀어막았다. 강한 향이 그래가 어깨를 들썩일 때마다 밀려들어오려 했다.


"대리님이, 화, 무서운, 회의, 그때부터, 끅, 끅, 끕, 끄읍, 흑, 제가 싫, 싫어서,"


그래는 그 상태로 10분 넘게 정신줄도 놓지 않고 진상을 부렸다. 하대리는 한 손을 허리에 얹은 채로, 코를 막고 그 시간 동안 그래 앞에 멀뚱히 서 있었다. 하대리의 어깨에 둘러진 그래의 팔이 스르륵 떨어져 세면대에 부딪치자 하대리는 천장을 올려다다보며 숨 쉬던 것을 멈추고 그래를 확 떼어냈다. 거울에 그래의 등이 부딪히고, 곧바로 코 안 가득 풀냄새가 들어찼다. 눈물길이 여러 개 생긴 채로 눈을 반쯤 감고 있는 그래를 마주하자마자 하대리는 그대로 그래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하얀 전등빛이 비추는 조용한 화장실에 입술과 혀가 질척하게 얽히는 소리만 가득했다.
















석율은 이미 아버지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후였다. 그가 앉아있는 고급 다이닝 레스토랑의 룸으로 들어온 영이는 석율의 뒷통수를 한껏 노려보며 문을 쾅 닫았다.


"살살좀 해. 내가 다 아프다."

"농담이 나와?"

"못할 게 뭐가 있어..."

"넌 나랑 결혼하고 싶니?"

"우성알파끼리 결혼하는 게 뭐가 대수라고. 그냥 평소처럼 살면 되는 거 아냐? 난 그럴 생각이고, 너도 같은 생각일거고."


석율은 영이에게 눈웃음을 치며 얼음물을 들이켰다.


"난 그렇게 살기 싫어. 아무리 우리가 영혼없이 페로몬에 취해 살도록 태어났을지언정 내 인생까지 그걸로 방해받긴 싫다고."


얼음만 남은 잔이 탕, 하며 테이블에 내려놓이고, 석율은 눈썹을 잠시 찡그렸다 영이와 눈을 맞췄다.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넌 니가 고귀한 우성알파라고 생각하잖아. 그럼 베타인 척 살던가. 그러고 싶긴 해?"

"나는,"

"가만보면 넌, 세상 일에 통달한 것처럼 쿨한 척 말하는데 정작 넌 그렇게 하질 못해서 안달이더라? 대체 뭐가 방해인데? 오히려 다른 인간들보다 더 좋은 거 아냐? 우성알파끼린데 누가 진짜 부부관계를 강요해. 그냥 서로 이익만 취하고 살고 싶은대로 살면 그만이야."

"......"

"그것도 싫으면 니가 가진 것 버리고 장그래랑 장그래처럼 밑바닥에서 살면 돼."


영이가 석율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고귀한 태생인 그녀는 그 자부심으로 인해 아무도 자신의 옆에 동등하게 서 있길 바라지 않았다. 우성알파로서 세상에 나서서 경쟁하고 싶어하지도 않았지만 자신의 남다른 존재를 부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진정한 사랑 같은 건 알지도 못하고 하지도 못한다고 냉소하면서 그에서 벗어나고 싶지는 않은 것, 그게 영이가 가진 모순이었다.


"안영이, 넌 내가 쉽게쉽게 막 사는 것처럼 보이지. 그래 사실이야. 근데 이렇게 사는 게 우성알파로서 제일 잘 사는 방법이기도 하거든."


여긴 동화속이 아니잖아. 너는 혼자만 아련한 소설 주인공도 아니고. 석율의 말을 마지막으로, 룸으로 들어온 서버 때문에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다. 테이블에 놓이는 접시들을 내려다보는 영이는 말이 없었다.


"볼수록 너랑 장그래랑 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니가 장그래를 원하는 건 사랑해서가 아니라는 것 정도? 이제 너도 걔도 꿈 좀 깨."


서버가 허리를 숙여 보이고 나가자 석율은 식사를 시작했다. 영이는 팔짱을 낀 채로 와인잔을 노려보았다.


"결혼 하겠다고 해. 그리고 장그래는 우리 소유로 붙잡아 둬. 장그래 부모 설득해서 계약서에 도장 찍는 건 일도 아니야. 누가 마다하겠어?"

"...넌 니 꺼 나누는 거 싫어하잖아. 나도 그렇고."

"그럼 다른 방법이 있어? 너도 걔 갖고 싶잖아. 나는 장그래를 물론 나혼자 갖고 싶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걸 버리진 않을거야. 싫으면 니가 건드리지 마."

"내가 장그래를 원하는 건 나를 방해하지 않을 배우자로서야."

"예쁜 시다바리가 필요한 결혼이랑 우리가 하는 정략결혼이랑 뭐가 달라? 너 되게 웃긴다."


석율은 포크를 던지다시피 내려놓고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처음으로 짜증난다는 기색이 드러났다.


"우리가 결혼해도 난 니가 하는 일에 관여 안 해, 하고 싶지도 않고. 넌 안회장님 소유의 삼정물산을 가져가면 되는거고, 나는 호텔 경영권만 무사히 받으면 되니까. 아버진 애초에 이렇게 될 걸 알고 계셨어. 삼정물산과 그랜드호텔이 함께하게 되면 여러 가지로 좋겠지. 내가 원인터에서 간보고 있던 것도 그래서고."

"아, 정말 짜증나게."

"아, 그럼 다 나 주고 가라고. 나랑 결혼 안 하면 니가 삼정물산 받을 수 있을것 같아? 다른 지사들 다 네 형제들 손에 들어가고 나면 니가 밥은 먹고 살 것 같냐? 왜이러세요 안영이씨 정말."


영이는 신경질적으로 와인을 들이켰다. 이미 서로를 드러낸 상태에서 교양이고 매너고 지키고 싶지도 않았다.


"당연히 장그래가 모르게 진행하겠지만, 나중에라도 허튼 짓 못하게 네가 잘 설득해줘. 니 말이라면 철썩같이 믿는 거 알아. 그러면 나도 네가 삼정물산 온전히 네 걸로 받을 수 있게 조력할테니까. 그걸 확실히 틀어쥐면 네 잘난 인생 다른 사람들이 방해 안 할거야. 그거 말곤 더 좋은 방법 없어."

"너 장그래를 정말 좋아하기라도 해? 왜 이렇게 안달이야."

"너 오늘 진짜 웃긴다. 아버지는 오메가 한 명 이외에는 더 못 들이게 하실거고, 걘 내가 본 오메가 중에 제일 예쁘고 순진해. 그리고 걔를 본 사람들은 다 갖고 싶어하잖아? 너도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런 건 내가 갖는게 맞지."

"장그래 정말 불쌍하다."

"장그래를 가장 불쌍하게 만드는 건 너야."


나는 걔가 너무 이뻐서 나만 걔랑 섹스하고 싶다고 인정이라도 하지.

다시 서버가 들어와 대화는 거기서 다시 중단되었다. 잔을 손에서 빙글빙글 돌리며 영이는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