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른 전력 60분, 주제 '장마'
장마는 이용당했군요
사와무라 다이치 X 스가와라 코우시
w.비누꽃
장맛비는 말 그대로 억수같이 쏟아졌다. 장마때인 걸 알면서도 이른아침 아주 살짝 개인 하늘만 보고 우산을 챙겨나오지 않은 게 실수였다. 편의점에서 급하게 집어든 투명한 비닐 우산은 세차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 스가와라는 우산을 어떻게 해 보려는 시도마저 포기하고 그대로 빗속을 달렸다. 익숙한 길을 망설임 없이 철벅철벅 내달리면서 그는 이상하게 들뜨는 마음에 조금 웃었다.
"다 젖었네."
다이치는 자기 집인마냥 들어와 물을 뚝뚝 흘리고 서있는 스가와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모처럼 연습이 없는 주말이었다. 그럼에도 이 날씨에 당연한 것처럼 런닝을 했는지 스가와라는 트레이닝 반바지 차림이었다.
"어머니, 코우시 왔어요!"
"안 계시는데."
대답해줄 사람이 없는 인사를 건넨 스가와라는 멋쩍은 듯 웃었다. 다이치는 마주 웃으며 스가와라에게 수건을 건넸다. 스가와라가 수건을 받아들고 급한 대로 뚝뚝 떨어지는 물을 툭툭 닦는동안 그는 욕실 문을 열고 비켜 섰다.
"다이치, 미안. 런닝하는데 비가 너무 쏟아져서..."
"그런 것 같다. 씻고 나와."
"그럼 실례 좀 할게."
스가와라가 서 있던 현관에는 어느새 빗물이 고여 있었다. 그가 욕실까지 걸어간 길을 따라 축축한 발자국이 남았다. 다이치는 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닦으며 집에 먹을 게 뭐가 있었나 고민했다.
스가와라는 문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다이치의 옷을 입고 욕실 밖으로 나왔다. 벗어 내놓은 그의 옷이 건조되고 있는지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이치는 아까와는 달리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거실에 펴 놓은 상 위에 편의점 도시락 두 개를 펼쳐놓고 있었다.
"아, 맛있는 냄새 난다."
"점심 안 먹었지? 밥 먹고 비 그치면 가."
"설마 방금 나가서 사온거야?"
"응. 왜?"
"......비가 이렇게 오는데."
"아, 오늘 부모님 놀러가셔서. 먹을게 없더라."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스가와라는 거실로 들어서다 말고 잠시 멈춰 서 팔짱을 꼈다. 그렇단 말이지...
"다이치, 밥 생각은 잠깐 하지 말아봐."
의아한 얼굴을 하며 돌아본 곳엔 헐렁헐렁한 바지를 손도 안 대고 벗어버리는 스가와라가 있었다.
"스, 스가?!"
"어때? 네 팬티 입은거. 어울려?"
스가와라는 빌려 입은 드로즈를 입은 채로 그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섰다. 그리고 당황해서 올려다보는 다이치의 옆에 주저앉아 몸을 가까이 했다. 늘씬하게 뻗은 하얀 허벅지를 드러내며 그는 다이치의 얼굴을 붙잡아 당겼다.
"밥 이따가 먹고 우리 다른 거 하자... 어때?"
그리고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입술을 맞댔다. 다이치가 키스를 받아주며 슬슬 리드하기 시작하자 스가와라는 드디어 역사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에 차 웃으며 슬쩍 바닥에 누울 타이밍을 엿보았다. 그러나 다이치는 곧 입술을 떼고 스가와라의 덜 마른 머리를 목에 걸린 수건으로 탈탈 털어주며 웃었다.
"밥 식어."
후우. 스가와라는 일단 차오르려는 분노를 식히며 수건을 움켜쥐었다. 지금 밥이 중허냐? 다이치가 이런 식으로 웃을 때마다 주먹이 불끈 쥐어지곤 했지만 차마 평소처럼 옆구리를 가격하며 덮쳐달라고 협박할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겠는 다이치의 욕구가 더 바닥을 칠까봐... 대신 그는 다이치의 팔에 찰싹 붙어 은근한 눈빛으로 다시 말을 붙였다.
"다이치. 그러지 말고... 지금 뭐 갖고싶은 거 없어? 내가 다 줄 수 있는데..."
다이치의 손이 스가와라의 얼굴을 다정하게 쓸었다. 내려다보는 눈빛에 사랑이 가득 담겨 있어서 스가와라는 순간 가슴이 찡했다.
"없어. 난 스가만 있으면 돼."
후... 스가와라는 잠시 찡했던 마음이 산산조각 나려는 걸 두 번째 한숨으로 애써 다잡았다.
"그럼 난 지금 하던거 계속 하고싶은데... 밥 먹으면 계속할래? 그럼 나 먹여줘."
스가와라는 할 수 있는한 가장 상큼한 웃음을 지으며 다이치의 무릎에 올라앉았다. 다이치는 잠시 당황한 듯 굳더니 곧 스가와라의 등 뒤로 손을 뻗어 젓가락을 뜯었다. 거기까지 지켜본 스가와라는 다이치의 품을 박차고 일어나 소리를 빽 질렀다.
"야, 야! 안 먹어! 밥 안먹어!"
그리고 쿵쿵거리며 다이치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로 뛰어들었다. 짜증나서 눈물이 다 나려고 했다. 곧바로 따라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은 다이치는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베개에 얼굴을 묻어버린 스가와라의 등에 손을 얹었다.
"스가, 내가 뭐 잘못했어...? 미안해."
그 말을 듣고 스가와라는 고개를 확 치켜들었다.
"다이치, 섹스하자."
"예?"
"섹스하자고! 섹! 스!"
스가와라는 그 말을 하며 살짝 품이 큰 다이치의 티셔츠도 위로 벗어 던져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다이치의 팔을 끌어당겼다. 얼결에 스가와라의 위로 몸을 겹친 다이치는 곤란한 표정으로 몸을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스가와라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대놓고 말했으니까 알아들었지? 우리 이제 제발 진도 좀 빼자... 다이치 너는 나랑 하기 싫어?"
마음이 상하다 못해 서러워보이기까지 하는 얼굴로 스가와라는 다이치를 올려다보았다.
"빨리 대답해.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너는 안 서?"
안 서냐고!!!!! 마음 속으로 천번은 더 지른 비명을 삼키며 스가와라는 맨 다리를 들어 다이치의 다리를 슥 훑었다. 발이 고간으로 향하려는 순간 다이치는 몸을 빠르게 일으켜 돌아섰다. 스가와라는 그만 울컥해 벌떡 일어나 앉았다. 다이치의 등을 노려보는 눈에 분노의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는 옆에 널린 셔츠를 주워들어 얼굴을 비벼 닦으며 중얼거렸다.
"나 집에 간다."
침대에서 일어나 나가려는 순간, 한 발 먼저 내딛은 다이치에 의해 방문이 탕 닫혔다. 일어섰던 몸이 그의 손에 슬쩍 밀려 다시 침대로 주저앉았다. 다이치는 대낮인데도 먹구름이 잔뜩 껴 어두운 창 밖을 힐끔 내다보며 스가와라의 위로 올라탔다.
"입시 끝날 때까지는 참으려고 했는데."
그가 침대 옆 협탁 서랍에서 콘돔과 젤을 꺼내드는 걸 스가와라는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다이치의 손에 의해 스가와라의 가슴팍에 쥐어져 있던 티셔츠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가 아니고 네가 힘들까봐..."
"야, 다이치..."
"모른 척도 못하게 그렇게 대놓고 말하면 어떡해. 하긴 너 답다, 스가."
"너 고자 아니었어...?"
다이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스가와라의 손을 끌어당겨 아까 발이 닿으려 했던 고간으로 가져갔다.
"억."
딱딱한 것이 손에 느껴지자마자 다이치의 입술이 스가와라의 입술로 다급하게 겹쳐왔다. 스가와라의 다리가 허공에서 신나게 달랑거렸다. 곧 그 다리는 다이치의 허리를 감싸 끌어당겼다. 거실에서 식어가는 도시락은 더이상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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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이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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